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봉혜선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ajbongs60318@hanmail.net
* 홈페이지 :
  글자 안 소회    
글쓴이 : 봉혜선    26-04-14 15:32    조회 : 116

글자 안 소회

 

 노래 경연장에 나온 참가자들이 혀와 입에서 내놓기 아깝 듯 음미하며 한 글자씩 내어 발음하는 가사가 글자로 분절되어 다가든다. 책에서 보는 글자와는 다른 맛이 난다. 여기서 나는 단어라 하지 않고 가사라 하지 않고 글자라 했다. 노래에서 단어와 문장이 전달하는 내용에 감정을 이입하거나 동감, 공감하게 되는 가사보다 다른 느낌이 나는 글자 이야기다.

 참가자들이 내는 글자마다 정을 감지할 수 있고 혼이 느껴지니 단어가 되기 전 글자가 지닌 힘이라든가 글자를 발음하는 정성과 감정을 싣는 가수 혹은 가수 지망생의 정성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 글자마다 지닌 뜻은 사전을 펴낼 만큼 많다. 가에서 하까지 400페이지에 달하는 한 글자 단어에 미혹되기도 했다. 노래에서나 생활에서 이라든가 ’  이라는 한 글자만으로도 교감을 할 수 있다. 한 글자씩 지워지며 발음하며 동시에 리듬에 실리는 노래는 과는 차별이 있다.

 노래를 할 때면 들숨과 날숨, 그리고 쉼 박자가 필수다. 한 글자를 발음하는 만큼씩 들이쉬거나 내쉬고 쉬는 박자를 맞추어야 제대로 된 노래가 된다. 편곡은 리듬을 앞세우면서도 이런 것들을 변용시켜 다른 맛을 내게 하는 것이 아닌가. 노래 경연에 참가한 가수 혹은 지망생들의 편곡 실력은 원곡을 아는 이들에게는 낯섦과 신선함을, 모르는 청중에게는 새로움으로 다가든다. 편곡은 가사를 음미하는 방식이다. 편곡이 원곡을 능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가사만 같을 뿐 가수에 따라 시대에 따라 음성에 따라 노래는 무한대로 달라진다. 노래는 높낮이도 있고 가수에 따라 미성, 탁성도 노래 분위기를 좌우하지만 리듬과 가사가 노래의 전제 조건이라고 볼 때 편곡 가능한 리듬을 빼고 늘 천착하는 것은 가사다.

 가사가 한 글자 씩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가장 절절하게 느끼게 해주는 노래 경연장은 일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장이다. 노래에 결정적인 무기인 가사를 한 글자씩 정과 성을 다해 혼을 다해 발음해내는 가수들은 글자를 사랑하는 집단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작가로 지내는, 글자로 살고 있는, 글자가 되고 싶은 나에게 가수는 새삼 자각하게 된 강력한 우군이다. 그래, 우리 편을 발견한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 펜을 들었다.

 

 옛날이야기를 해야겠다. 글자가 위안이니 말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는. 생활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책이 손에 잡혔다. 여성잡지였던가. 대학 2학년 때 마주친 아저씨였던 지금의 남편에게, 모든 걸 다 알 것 같고 세상에 어려울 게 없을 것 같은 남자에게 결혼에 대해 물어보니 사보라는 여성지가 어쩌다 바닥에 있었다. 남편이 여기 좀 들여다보고 살림 하는 걸 배우라고 집어 던졌던가. 혹 남편에게 혼나지 않는 법 같은 글을 찾고 있었던가. 동그랗게 말고 있던 몸을 점점 펴 엎드려 글자를 봤다. 글자들이 모여 있는 단어와 문장이 있었다. 내용이 들어온 건 한참이 지난 후였다.

 같은 서클이던 남편과 보던 TIME지 배달이 계속 왔고 영어사전이 있을 뿐 주변에 책이 없었던 건 왜였을까. 새 출발을 위해 책을 친정에 남겨놓고 온 우를 범했나 보다. 그 손끝에 글자가 닿았다. 조금 지나고는 결혼할 때 가져온 200편이 넘는 연극 팸플릿을 꺼내 보았다. 혼자 알아보고 찾아가고 혼자 울고 웃던 연극 무대에서의 얼굴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연극은 짧은 한두 시간 동안 한 인생이 지나가기도 한다. 모든 인생을 엿보았으니 나는 다 산 게 아니었을까.  200개의 인생 안내서면 잘 할 수 있다고 여겨 책을 두고 팸플릿만 챙긴 걸까.

 남편이 출근한 후 위축된 마음이 글자를 만나면서 조금씩 남편을 잊게 만들었다. 늘 생각뿐 무엇을 해도 불안했던 시기에 글자는 마치 친정 언니 같고 어릴 때 짝궁 같은 친근함으로 옆에 말없이 있어주었다. 내용을 가리지 않고 읽어 치우던 내용을 고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보고 싶은 책을 들이기는 더 오래 걸렸다. 책은 집어 던지면 안 되는 물건 이상이니까. 글자가 찢어지거나 물에 젖으면 안 되는 대상이니까. 내게는 책이 신(채기신)이니까.

 결혼 후에 살던 동네는 주택이던 친정과 매우 달랐다. 콘크리트뿐인 아파트 벽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듯한 창문만이 나있는 살풍경한 곳이었다. 어쩌다 나가면 거리에 가득한 간판이 마음에 들어왔다. 글자가 밖에서도 나를 맞이한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지 않고 남편 뒤만 따라 걷다가 간판에 홀려 기우뚱하면 여지없이 퉁박이 쏟아졌다. 간판이 걸린 가게의 용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글자면 되었다.

 하나의 단어가 지배하는 영역에 대해 점점 무거움과 책임감을 느끼곤 하는 요즘이다. 예를 들어보자. 그대로라는 단어는 부모 형제를 생각나게 하고 추억을 돋게 한다. 그대로 멈춰라 라고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순간이 있다. 기쁘거나 행복한 어느 때이다. 절망감이 들 때면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추스릴 수 있는 단어가 그대로이다. 이 순간 살기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미래에 매이거나 과거에 매몰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는 지금대로, 이대로 그런대로 해나가고 있는 생이다.

 글자를 놓치지 않고 견뎌온 생이다. 글자로 버티면서 작가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자판을 앞에 두면 서너 시간은 휘리릭 지나간다. 이대로 서서히 늙어가고 싶다. 이론적으로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면 세월 따라 늙지 않는다니 과학 발전에 기대를 걸어보는 건 어떨지.

 단어 하나에 딸려 나오는 수많은 상상에 나를 맡겨본다. 글자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영역이고 기록이다. 사람 외에 다른 동물이 글자를 가진 기록이 없으니 영역 표시 하는 개나, 털을 나무에 문질러 영역을 감시한다는 곰처럼 글자는 사람의 고유 영역이다. 희로애락을 노래하며 경연을 펼치는 가수의 등수는 이미 논외로 모두가 승자다.

 <<수필미학. 2025 가을>>



 
 

봉혜선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72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108888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11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