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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면의 마음    
글쓴이 : 유시경    26-06-30 01:12    조회 : 70


냉면의 마음


 냉면바람이 분다. 여기 가도 냉면, 저기 가도 냉면. 오뉴월 삼복더위, 냉면손님이 면발처럼 줄을 잇는다. 웬만큼 알려진 식당 차림표엔 어김없이 냉면이란 두 글자가 떡하니 자리 잡는다. 칠월 초부터 팔월 중순이야말로 냉면의 절정기라 할 수 있다. 가장 뜨겁고 또한 차가워서 일사불란하게 만들어내야 하는 음식이 바로 냉면이다. 전통적이면서 역동적이고, 쓸쓸하면서도 끈끈하며 인간미 넘치는. 계절 없이 즐기는 음식이긴 하나, 그래도 여름 한물 장사이니 맛있고 푸지게, 아울러 너무 비싸지 않게만 판매한다면 주인장은 어지간히 수지타산이 맞을 터이다.

 스물다섯 살, 우동집 주방장이던 그이가 서른 초반에 함흥냉면을 배운 건 일생일대 최고로 잘한 일이었다. 고구마 전분을 맨손으로 익반죽하는 남편의 손은 하루도 성할 날이 없었다. 주방장에게 말을 걸지 말아야 할 때가 두 번 있는데, 갈빗대를 골절기에 대고 자를 때와 냉면 반죽할 때였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시간이 되면 그인 말 시키지 마!” 하고 단호하게 명했다.

 단단해진 반죽 덩어리는 냉면 가마(제면기)로 향한다. 냉면분창(노즐)의 미세한 구멍들은 면발의 미와 풍미風味를 좌우한다. 냉면을 뽑는 사람들은 부지런하다. 분창에 반죽 가루가 남아있으면 면을 내리기 어려워 수시로 닦아야 한다. 압력을 못 견딘 분창이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청소할 땐 물에 담그고 불려 들러붙은 녹말을 제거한다. 면이 빗물처럼 쏟아지는 분창의 구멍은 가장 작은 0.9, 1.0, 1.1밀리미터짜리를 쓴다. 반죽을 끼워 누르는 홈이 늘어나면 분창도 헐거워진다. 기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고깃집을 하며 공짜 후식냉면을 고집했던 남편 덕에 응원과 원성을 아낌없이 들었다. 분창이 깨져 난리가 나던 날, 삼십 분을 기다려도 후식냉면이 나오지 않는다며 삼십 분 넘게 설교를 하고 가신 손님이 있었다. 그 영겁의시간 동안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소리를 열 번도 넘게 하였다. 공짜냉면의 비애라고나 할까. 그니의 엄마뻘 된다는 슬픔조차도 나는 정말 죄송하였다.

 뭔 놈의 냉면이 이리도 질기냐 하던 손님, 절인 오이 고명이 시들었다며 생오이채로 바꿔달라던 이도 있었다. 비좁은 상에 반찬 한 벌 더 가져오라던 사무원 한 분은 드시고 모자라면 더 갖다드릴게요라는 대답이 언짢았는지, 다짜고짜우동 한 그릇이란 책 읽어보기나 했냐며 한번 읽어보고 마인드를 재정비하라 일렀다. 그는 나를 노랑이나 악덕 지주 정도로 여긴 건 아니었을까. 남편을 바라보며 , 나의 존경해 마지않는 지난날의 우동집 주방장이여!’ 하고 탄식했다.

 너무나 천진스러워 뭐든 다 해 주고픈 손님들도 많았다. 심신心身애로우니뜨거운 국물에 면을 말아 주면 안 될까 하시던 아기할머니, 치아가 부실하다며 푹 삶은 냉면을 부탁하던 구순의 할아버지도 계셨다. 인정사정없이 가위로 잘라 달라던 중년신사에게는 이렇게 화답했다.

 “북한 그 어디 유명식당에 가면 접대하는 여성동무들이 뭐라 하게요? 선상님, 우리 냉면은 절대 가위질하면 안 되는 기라요. 고로면 명 짧아집네다. 이백 살까지 사실라면 고저 일어나서 쭈욱 잡아댕겨 드시라요.”

 이제 와 아픈 손가락을 헤아린들 무엇하겠는가마는, 돌아보면 그분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글의 씨앗이 되어주었다. 식당을 하는 동안 나는 삶은 돼지 등골처럼 숱하게도 손님들을 뽑아 먹었다. 부모도, 친구도, 형제도 뽑아 먹었다. 두 무릎을 앙가슴에 끌어안듯 목구멍으로 질긴 면발을 욱여넣었다. 허전하니 들이켜고 답답하니 집어삼켰다. 직원들은 빨리 먹고 오래 쉴 수 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 만만하고 오래된 벗, 냉면이었다.

 뜨겁다가 차가워지는 면의 속성처럼 우린 한없이 부드러웠다가 어느새 타인처럼 돌변하기도 했다. 애주가이자 애면愛麵가이기도 한 남편은 새벽 두어 시경에나 들어와 국수 좀 삶아 줘하고 보채는 게 다반사였다. “이 시간에 면이 어디 있다고!” 나는 문설주 새로 빠끔 내다보며 그가 어서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면 그인 드렁드렁 코를 고는 척하다가 , 내가 잘 줄 알고! 없으면 반죽해서 밀면 되지. 꼭 먹고 잘 테야하곤 광대처럼 웃는 것이다.

 짓눌러 짜는 음식은 인간의 통각痛覺을 파고드는가. 간혹 냉면을 먹는 이의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면 후루룩 소리가 훌쩍훌쩍 우는 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울지 마세요하고 어깨를 다독이는 상상을 한다. 그러면 그가 너무 맛있어서요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그 추억들이 몽유병처럼 응어리져 면발 속에 돌아다니고 있는 듯하다.

 냉면의 마음도 내 맘 같을까. 남의 돈 먹기 쉽지 않고 맛있는 냉면 먹기 쉽지 않더라. 세상에 공짜는 없었으나 아낌없는 그이의 나눔은 성공하였다. 냉면 덕에 나는 더욱 단단해졌다고 위안 삼는다. 언젠가 또 다시 손님을 맞게 된다면, 기쁨이 슬픔에게 속삭이듯 따뜻한냉면을 삶아 낼 수 있을지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 2023년『좋은수필』8월호 발표, 2026년 계간현대수필여름호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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