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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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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통신원    
글쓴이 : 정지민    15-04-29 11:03    조회 : 5,570
 
창경궁 통신원
 
 
벚꽃은 개화 후 만개까지 일주일이 가장 아름답다. 아름다운 시기를 넘겨서
나는 지금 창경궁의 뜨락에 서 있다. 늘어진 수양벚꽃을 손으로 톡톡 건드리며,
생각만으로 공간이동을 시도한다. 벚꽃이라면 제 아무리 빼어난 자태기로서니
진해의 벚꽃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데는 얼마 전,
진해에 사는 친구 초대로 군항제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진해에 가봤자 벚꽃 구경은커녕 차 밀리고 사람에 치여 고생만 한다던데?”
진해 벚꽃에 심취하다 돌아왔다고 말하면 어떤 이는 이런 식으로 슬쩍 비아냥거린다.
비아냥거림이 사실인지, 내가 그날 직접 몸을 섞어 바라본 모든 것이 진실인지
애써 규명할 생각은 없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진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보려는 노력까지 포기해선 안 된다.
세상 모든 것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어떤 가치들은 소중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날. 진해는 말 그대로 벚꽃이 주인이었다. 이곳이 고향인 친구는 작은 골목길이나
고갯길까지 훤히 알고 있었다. 구불구불 이어진 안민고개는 가장 화려한 벚꽃터널을
볼 수 있는 장소지만 버스가 다닐 수 없어서인지 의외로 조용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여좌천이나 경화역 벚꽃도 평일을 택해 간다면 고즈넉한 기분으로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리가 경화역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벚꽃을 어깨에 주렁주렁
매단 열차가 느린 속도로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저기 인파가 몰려들면서 흥분으로
술렁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굉음의 기적소리가 곧바로 내 등 뒤에서
고막을 찢을 듯 들렸다. 하마터면 열차에 내 엉덩이를 받칠 뻔했다는 걸 알고
기겁해서 달아나는 소동이 벌어졌다. 카메라 컷에 열차와 나를 가장 밀착된 상태로
찍으려는 친구의 욕심 탓이었지만 이 또한 잊지 못할 한순간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순간들이 있다. 고궁 어느 구석자리에 앉아서 농염한 봄색을
탐하고 있는 지금이야 나에게 대수롭지 않은 시간일 수 있다. 어떤 돌발만 아니라면
내일도 얼마든지 이런 한가를 누릴 테니까.
어디에 앉아있건 이 시대는 온갖 뉴스가 스마트폰으로 시시각각 전달된다.
뉴스 앱을 통해 어떤 기업인이 죽기 전에 남긴 오십 다섯 자의 다잉 메시지 소식을 듣는다.
조롱하며 헌시를 바치듯 메모쪽지에 몇 몇 이름이 나열돼 있다. 000는 십만 달러, 000는 삼천만 원... .
눈앞에서 지는 꽃잎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가, 이런 뉴스를 대하자면 왠지 모든 것이
공허해 보인다. 내가 속한 사회가 결코 정당한 절차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알지만, 목숨을 버리며 절규를 쏟아낸 한 사람과 내 옆을 지나며 행복한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들, 그 무심한 시선들의 간극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이때 다시 스마트폰이 구원의 손길처럼 문자를 실어 나른다.
당신을 생각하는 찰나 나는 서안(西安)의 거리의 먼지 속에 있습니다.
막 멀리 둔황을 향해 떠나려 합니다. 그 다음 순간 나는 벌써 가욕관(嘉?關)까지 도달하고
삼층 건물의 지붕을 우러러보고 있는데 마음은 아직 출발의 떨림 그대로입니다.”
나는 봄빛에 몸을 맡긴 채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 설핏 보아 여행자의 독백인가 했으나
자세히 보니 다른 의미인 것 같기도 하다. 헌시일 것으로 짐작하는 건 제목이
내 이름자로 돼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창경궁 벚꽃 아래에 있으니 꽃이 흐드러진 공간에서 딴은 매우 어울리는
풍경이다. 적어도 화사한 햇살을 받으며 우수에 젖을 이유는 없다고 마음을 바꿔먹는다.
글 중의 가욕관은 중국 가욕관 시 남서쪽 모퉁이에 있는 만리장성의 최서단 성곽이라고
한다. 한갓진 빈틈을 뚫고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려오는 흉노의 병사들이 두려워서
쌓아올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기업인이 남긴 다잉 메시지 이름들 위로 흉노 병사의 이름을 덧대어본다.
그러다가 이내, 꽃이나 보고 말지하고 체념한다. 간혹 사회 정의감을 느끼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정신이 평소보다 맑든지, 반대로 약간의 취기가 있을 때 그렇다.
나는 늘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
다시 생각하니, 벚꽃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수명이 다해 꽃비가 되어 떨어질 때인 것 같다.
어떤 꽃들이 죽음에 대하여 수다 떠는 것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편안할 것인가!’
마술처럼 언제나 마지막 장면전환은 위험한 법이긴 하다. 시끄러운 세상을 조망하고 가는
벚꽃의 다잉 메시지는 무엇일까를 더듬는 나는, 여전히 창경궁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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