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손
백 춘 기
아직 어둑어둑한 11월초의 새벽바람은 차가웠다. 지방 출장길에 코트가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 그냥 나왔는데 아내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금방 후회되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출장길 내내 추위에 떨었다고 하면 “그러게, 마누라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며 한마디를 할 것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무엇보다도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후회하게 된다. 몇 명 타지 않은 시내버스에 앉아 무심코 가방에 올려놓은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느 낮선 이의 모습이 거기 떠억 버티고 있는 것이다. 손등은 상수리나무 껍질 같이 주름이 지고, 비온 뒤 나타난 지렁이처럼 파란 정맥이 튀어나와 기어 다니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불쌍해 보이는 손등에는 호수의 물비늘이 반짝거렸다.
나는 체격에 비하여 손이 크다. 주먹을 쥐면 우악스럽고 손등과 손마디도 두툼하여 마치 평생 막일하는 손 같이 투박하다. 검지에 끼어야 하는 27호 묵주반지도 약지에 겨우 끼워야 할 정도로 마디가 굵다. 그러니 손이 예쁘기는커녕 보기도 좋을 리 없다. 안경 쓴 거지는 있어도 손 도타운 거지는 없다고 하신 할머니의 말씀을 난 믿고 싶었다. 그런 손복을 타고나서 이만 큼 살아 온 것은 아닐까 위안을 삼기도 했다.
아기 때는 앙증맞은 손으로 젬젬을 하고 재롱을 떨며 귀여움을 받았을 것이다. 몽당연필을 움켜잡고 침을 바르며 1,2,3,4와 가, 나, 다. 라를 썼을 것이다. 조그만 손으로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를 하였고, 추운 겨울에 썰매를 탈 때에는 구멍 난 털실 장갑도 없어 손등이 소나무 껍질같이 쩍쩍 갈라져 피가 흐르기도 하였다. 솥에 물을 데워 한참동안 손을 담그고 때를 불리면 한 꺼풀 때가 벗겨지고 손등은 보들보들 해졌다. 어머니는 시커멓고 갈라진 손을 씻어 주시면서 까마귀가 친구하자 그러겠다고 나무라시며 글리세린이나 맨소래담을 발라주셨다. 그 때는 제대로 된 목욕시설이 없어서 몸도 제대로 씻을 수 없었으니 얼굴이나 손은 늘 꾀죄죄한 모습을 하고 살았다. 젊은 시절에는 그 손으로 샌드백을 치며 정권(正拳)을 단련하여 친구들과 주먹싸움도 하였다. 군대에서는 총도 쏘고 직장에서는 서류도 작성하고 도면을 그리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가족을 부양하였다. 이렇게 60년도 넘어 힘들게 일하며 고생한 내 손이 못생겼지만 자랑스럽다.
나는 건강해 보이는 손, 모양도 예쁘고 적당하게 오동통한 손을 좋아한다. 손가락이 유난히 길고 마른 손보다는 적당하게 도톰한 손이 건강해 보이고 바지런 해 보여서 그렇다. 손가락을 쭉 펴면 활처럼 휘어 피아도도 잘 칠 것 같은 손을 예쁘다고들 한다. 일을 많이 하여 굳은살이 박인 손은 휘기는커녕 쭉 펴도 휘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인지 사람을 만나면 손으로 눈길이 간다. 은행에서 돈을 세는 은행원의 손을 보게 되고 지하철에서 마주앉은 사람들의 손도 관찰하게 된다.
비록 손의 모양이 예쁘고 복스럽게 보이는 것보다도 자랑스럽고 훌륭한 손이 있다. 평생 구두를 깁는 구두장이의 두덕살이 박힌 손이 있다.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나이든 아주머니의 주름진 손도 있다. 누구나 지나 온 삶에 따라 손의 안과 밖이 각인 된다고 생각 된다. 나는 젊어서부터 손금 보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사람을 마주하면 손을 먼저 보는 버릇이 생겼다. 잡지나 신문에 나온 손금해설을 스크랩하고 직접 그려보기도 하였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살아 온 인생을 알 수 있다. 손금으로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 하는 것보다 손의 건강상태나 모양만 보아도 그 사람의 과거나 미래가 어떨지 짐작해 보는 것에 흥미가 있어서이다. 어릴 때 보았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은 유난히도 굵은 주름으로 참나무 등걸 같았다. 그때 무슨 화장품이 있었을까! 동백기름이나 피마자기름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동동구루무를 바른들 그때는 이미 소용없을 것이다! 어느 날 아내는 내가 쓸 화장품이라며 로션, 에센스등을 종류별로 사 왔다. 평소 손은커녕 얼굴에 바르는 로숀 하나도 없이 지냈는데. 크림을 아끼지 말고 듬뿍듬뿍 자주 발라야 주름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 자신을 건재하게 하였고, 가족을 부양한 나의 존재는 바로 손이다.
퇴행성으로 모양도 볼품없이 변하고 아픈 손이라도 자랑스럽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이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아버지 저 잘 살아 왔지예~”하며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 보여준 주름이 가득한 손이 눈에 선하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그의 삶이고 그의 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