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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겹살을 구우며    
글쓴이 : 백두현    16-01-12 14:12    조회 : 5,994

삼겹살을 구우며  

                                                                               백  두 현

지글지글, 삼겹살이 숯불 위에서 맛나게 익고 있다. 모처럼 휴일 하루 시간을 내 가족과 함께 근처 계곡에 갔는데 그곳에서 먹거리로 가져간 고기를 익히는 중이다. 이런 날의 메뉴는 누가 뭐래도 삼겹살이 최고다. 두런두런 쌓아둔 이야기를 풀어내며 삼겹살을 직화(直火)로 익히느라 이리 저리 뒤집는 재미가 쏠쏠해서다. 이런 맛에 사람들이 삼겹살을 즐겨 찾는 것인데 덕분에 삼겹살의 가격은 갈수록 천정부지다. 맛 뿐 아니라 가격까지 최고가 되었다.   

돼지고기의 가격은 대체적으로 가슴부위인 삼겹살이 제일 비싸고 그 다음은 목살, 앞다리 살, 뒷다리 살 순서로 가격이 매겨진다. 그런데 가장 비싼 부위와 싼 부위의 가격차가 무려 세배 이상이다. 그렇더라도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이유가 우리 몸에 좋은 순서부터라면 이해가 가는데 이상하게도 가격은 오히려 건강에 나쁜 순서부터다. 지방이 많아 갖가지 성인병을 유발시키는 삼겹살이나 목살이라야 비싸고 살코기가 대부분이라 영양식일 수 있는 뒷다리 살은 반대로 저렴하다. 사람들은 왜 싸고 몸에 이로운 고기보다 비싸고 몸에 해로운 고기를 사는데 더 많은 돈을 투자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이든 가격이 비싸지는 이유는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몸에 이롭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맛난 부위부터 찾는다. 그래서 비싸더라도 식감이 부드럽고 잘 넘어가는 삼겹살을 즐겨 찾는다. 문제는 그것이 기름 덩어리인 지방이 넘치는 부위라는 사실이다.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부위별 공급량은 일정한데 사람들이 반복해서 삼겹살을 더 찾으니 몸에 해로운 고기면서도 가격은 치솟는 것이다. 왜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먹거리가 풍부해진 것이 가장 큰 이유 같다. 한마디로 삶의 여유가 생겼다는 말이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힘든 보릿고개를 넘지 않아도 되고 오로지 배부르기 위해서 일하지는 않는다. 그런 여유가 약간의 부작용을 불러 온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어릴 적에는 상상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당시 시골마을에는 정육점이 없었다. 읍내까지 나가면 푸줏간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대부분 고기를 사러 그곳에 가는 사람이 없었으니 우리 마을에 관한 한 고기를 파는 장사는 있어도 없는 셈이었다. 집집마다 돼지를 한, 두 마리씩 키우기는 했지만 먹지는 못해서 그렇다. 그것은 팔아 목돈을 마련하기 위한 작은 사업이었지 먹으려고 식탁에 올리기 위한 재료가 절대로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몇 년에 한 번씩 기회가 오기는 했다. 전국적으로 고기 가격의 하락으로 돼지파동이 일어나 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거나 전염병의 창궐(猖獗)로 돼지가 병들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돼지를 잡았다. 시장에 팔 수 없는 처지라 사육주의 손실을 일부라도 보전해 주기 위해 싼 가격으로 품앗이처럼 사다 먹는 것인데 돌아가면서 형편을 봐주는 일종의 계(契)나 같았다.   

그런데 그때 고기를 파는 방식은 부위 구분이 없이 잡히는 대로 잘라서 팔았다. 따라서 부위별 가격 역시 일정했다. 저마다 차례를 기다려 할당량의 고기를 받았는데 받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살코기로 썰어달라는 것이었다. 요즘 가장 인기가 없어 싼 부위인 뒷다리 살을 선호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게도 당시에는 지방이 많은 삼겹살이 섞이면 볼멘소리로 바꾸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오히려 살코기만 있어 맛없는 뒷다리 살을 차지한 사람은 좋아서 싱글벙글 했다. 그때는 못살아서 그랬다. 삶이 퍽퍽해서 그랬다. 배고파서 그랬고 맛보다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살이 되는 부위가 필요했다. 그야말로 맛이란 사치에 불과했고 배부르기만 하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이제 세상이 좋아졌다. 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바뀌었다. 좋게 바뀐 것인지 나쁘게 바뀐 것인지 모르겠지만 바뀌긴 바뀌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바뀌기 마련이다. 우주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또 바뀌리라. 사람들의 형편이 바뀌고 형편은 식성을 바꾼다. 그래서 같은 돼지고기라도 시대별로 선호도가 바뀌고 가격도 바뀐다. 세월은 진리도 바꾸는 법이거늘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 정도가 뭐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변화라는 것은 양면성을 띄기 마련이다. 나의 행복은 곧 누군가의 불행으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여유롭게 돼지고기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이 돼지들의 사정은 오히려 힘들어진 모양이다. 요즘 가는 곳마다 야생 멧돼지의 출현으로 야단이다. 곳곳에서 죽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실제 죽이고 있다. 동물 간에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관계만 아니면 적의가 없는 법이거늘 사람들은 멧돼지를 잡아먹어야 사는 것도 아니면서 죽이는 것이다. 언제부터 인가 농작물을 뺏기기 시작하면서 화가 나서 그렇다.   

그들이 사는 산에 먹을 것이 부족해진 탓이리라. 먹고 살기 힘드니 먹어야 할 것,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가리지 못하고 살기 위해 내려오다 죽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처럼 그곳도 더 이상 배고픈 세상이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만 오히려 우리 형편과 반대로 변했으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비록 사람들이 식용으로 취하는 집돼지는 아니지만 멧돼지들에게 나를 위해 무엇인가 빼앗은 느낌이다.   

죽지 않으려면 먹어야 하고 먹으려면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멧돼지의 일상, 이제 인간이 호랑이 대신 그들의 상위포식자가 되었다. 배고플 때만 죽이는 게 아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이니 한 차원 더 무서운 포식자다. 항상 배부르게 먹을 수 있지만 먹는 사료 가격보다 늘어나는 고기가격이 적어지기 시작하면 도축장에 끌려가야 해 멧돼지가 부러웠을 집돼지 사정이나 비슷해졌다. 그렇다고 뭘 어쩔 것인가. 나는 미안해도 계속해서 삼겹살을 맛나게 먹을 것이고 세상의 변화에 따라 나도 그들의 운명도 계속해서 변해야하는 것을. 가난했던 어린 시절 때문에 떠오르는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그저 이렇게 곱씹어볼 뿐이다. 언젠가 다시 멧돼지는 산에서만 살고 집돼지만 집에서 사는 세상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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