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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장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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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한 시간    
글쓴이 : 장은아    16-03-28 19:59    조회 : 3,874
   비밀한 시간.docx (17.1K) [0] DATE : 2016-03-28 19:59:40

 

비밀한 시간


장은아


 


날이 흐리다. 낮도 밤도 아닌 애매한 시간. 창 밖을 내다보니 있지도 않은 산 그림자가 사방에 내려 앉았다. 꾸무룩한 날씨를 심란하게 내다보는데 저만치 따로 앉은 엄마가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했다. “오늘도 전화가 없네.” 엄마는 아마 며칠째 연락이 안 되는 외삼촌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들 둘을 두고 단란했던 가족이 이제 달랑 외삼촌 하나 남고 모두 떠났다. 외삼촌의 큰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 벌써 이십 년이 훌쩍 지났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서류 심부름을 나갔다가 중앙선을 넘어온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가 났던 것이다. 그 때 그 아이 나이가 만 스물이었다. 그 후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외숙모가 속병을 얻어 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제 달랑 두 식구, 부자만 남았는데 대장암 초기증세를 보인 외삼촌이 막 수술을 마친 참인데 하나 남은 둘째 아들 마저 지난 주에 내실질 뇌출혈이라는 발음조차 어려운 병명으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날씨 탓인가, 마음도 꾸물꾸물 하다. 그런데 어쩐지 이 날씨, 이 바깥풍경이 낯설지가 않다. 그 때가 내가 만 일곱 살쯤 되었던가. 독감이 걸렸었는지 온종일 끙끙 앓다가 약 기운으로 늦은 오후 까무룩 낮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얼마쯤 잤을까 부스스 잠을 깨 눈을 떴을 때 곁에 있어야 할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불을 켜지 않는 방안은 어느새 어둑해졌고 창 밖은 사방이 마치 산그늘 같은 청록색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낮도 아니고 아직 밤도 아닌 그 어스름한 시간. 시계로는 읽을 수 없지만 느낌으로 아는 시간. 마법에 걸린 모든 것들이 마법에서 깨어나고 응달에서 아무도 본 사람 없이 칠 년을 자란 비밀의 풀이 마침내 꽃을 피우는 그 시간. 살아있지 않은 것들이 살아있는 것들에게 말을 거는 그 시간. 그 시간에 나는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두려움과 서러움에 왈칵 눈물이 터졌다. 삐죽삐죽 터지는 울음을 참으며 방문을 열고 나왔더니 무심한 두 동생들이 소꿉을 놀고 있었다.


 "엄마 어딨어?" 내가 울먹거리며 물었다.


 "모르겠는데?" 동생은 나에게 무심하게 말했다. 세상에 홀로 버려진 아픈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섰다. 동네 한 바퀴를 다 돌도록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서러움이 북받쳐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안 그래도 감기 기운으로 으슬으슬 춥던 참이었는데 뺨 위에 흐르는 눈물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내 얼굴에 살얼음이 얼은 듯이 추웠다. 내가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올 때쯤엔 추워서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울며 집으로 돌아와 보니 뜻밖에도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준비 중이었다. “엄마울먹거리며 엄마를 부르자 엄마는 "너는 아픈 애가 자다 말고 어디 갔다 오니?" 하며 깜짝 놀랐다. 울며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나도 모르게 오줌을 쌌던 모양으로 바지가 차갑고 축축했다. 엄마는 나에게 오줌에 젖어 무거운 바지를 벗겨내고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새 바지로 갈아 입혀주었다. 후에 전해듣기로는 동생은 분명히 나에게 '엄마가 부엌에 있다'라고 했다는데 내 귀엔 분명히 '모른다'라고 들렸다. 그 시간은 분명 혼돈의 시간이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 내가 만 일곱 살쯤 먹은 내 아들을 데리고 피아노 학원으로 향하던 초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큰 교통사고라도 있었는지 두 시간 가까이 꽉 막힌 도로에 꼼짝없이 갇혀있게 되었다. 좁은 차 안에서 지루했던 아들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문득 잠에서 깨어난 아들이 부스스한 눈으로 차창 밖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삐죽삐죽 울음을 터뜨렸다.


 "? 왜 울어? 꿈 꿨니?" 깜짝 놀란 내가 묻자 "몰라."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그제야 나도 사방이 산 그림자처럼 청록색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는 어스름한 시간이란 걸 깨달았다. 낮도 아니고 아직 밤도 아닌 그 어스름한 시간. 시계로는 읽을 수 없지만 느낌으로 아는 시간. 마법에 걸린 모든 것들이 마법에서 깨어나고 응달에서 아무도 본 사람 없이 칠 년을 자란 비밀의 풀이 마침내 꽃을 피우는 그 시간. 살아있지 않은 것들이 살아있는 것들에게 말을 거는 그 시간. 그 시간이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아이에게 왜 우는지 묻지 않았다.


'그래 이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바로 그 시간이지. 아이야, 너도 그걸 눈치챈 것이로구나.'


  그로부터 또 오랜 세월이 흘러 그날 저녁 자다 깨서 울던 일곱 살 아들은 어느새 스무 살 청년이 되었는데 또 다시 또 그 비밀의 시간이 찾아온 모양이다. 나는 여전히 내려앉은 마음으로 창 밖을 내려다 보고 있었고 엄마는 아직도 거실 저 쪽에서 근심스런 얼굴로 외삼촌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늦은 시간에 우리는 마침내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말았다. 그것은 막내 외삼촌의 부고였다. 심신이 지쳐있던 외삼촌은 탈진해 있었던가 보다. 막내 아들을 떠나 보낸 지 꼭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그 시간이었다. 그 비밀의 시간. 살아있지 않은 것들이 살아있는 것들에게 말을 거는 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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