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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대로 괜찮은 선택    
글쓴이 : 소지연    17-05-14 11:50    조회 : 5,540

  늦은 봄이 만연하던 날, 바람 타고 소식이 들려왔다. 국립오페라단이 주최하는 <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베이스 역에 지인의 아들이 낙점되었다는 낭보였다. 초대장은 보내오지 않았지만 먼발치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진솔한 우정이리라. 오늘 걸어보려던 꽃길을 미루어 둔 채 국립극장 공연장에 자리 잡는다.

  그 동안 타의에 의한 비운을 소재로 한 오페라는 하나 둘이 아니었다. 여러 번 관람했던 베르디의 오페라, < 라 트라비아타>도 그중의 하나였다. 불치의 병을 지닌 파리 사교계의 여인, ‘비올레타와 귀족 청년 알프레도의 사랑도 아버지 제르망의 각본에 의한 오해와 배신으로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다 한쪽이 죽음으로 끝을 맺는 허망한 것일 따름이었다. 비극 오페라의 이런 상투적 맥락에서 소프라노와 테너의 아리아만 좆아 갔더라면 오늘도 애상 한 자락만 들고 왔으리라.

  2막에서 소프라노와 바리톤이 나오자 오늘 따라 상대방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노랫말에 천착하게 된다. 한사람의 이기적인 선택이 관련된 여러 사람의 선택에 조차 영향을 미치는 대목이 유난히도 거슬린다. 명문가의 명예를 택해야 하는 대단한 아버지가 마침 홀로 있는 비올레타를 방문하여 날리는 직격탄 때문이다.

  “아들과의 관계를 네 쪽에서 배신한 양 청산하라!“

  비통에 빠진 우리의 여주인공! 비정한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상을 울부짖음으로 풍자도 해 보지만, 알프레도를 향한 순수한 사랑은 결국 자신을 희생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이 때의 두 다른 인간상이 부르는 이중창은 각자의 입장을 탄원하면서도 고통을 뛰어 넘은 하모니를 보여준다.

  " 이제 막 시작한 우리들의 사랑이 소멸되어야 한다니요. 살아 있을 날이 많지 않은 불우한 이 여인의 절규가 들리지 않나요?“ ( 중략)

   "! 그리하리니 부디 이 희생을 기억해 주시오!“

  소프라노의 아리아는 끊임없는 거부와 체념의 원을 그린다.

   "그대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해도 부디 내 집안의 명예를 위해 이겨 내 주시오. 희생은 내 가슴 속 깊이 간직되오리다.”

  어처구니없는 바리톤의 궤변이 두런두런 이어진다. 남의 불행을 담보로 행복의 발판을 놓겠다니, 얼마나 기구한 운명의 선택인가! 이로 인해 희생을 강요당한 여주인공만큼이나 똑 같이 아픈 건 그 걸 구걸해야 하는 사람이다. 떨리는 그의 음성과 깊은 고뇌의 그림자는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자인하고 있었으니. 체념한 사람의 남은 생은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으나, 빼앗은 사람의 나날은 자괴감으로 얼룩지기 마련인 탓이다. 그것도 제르망 같은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라면! 비올레타의 병이 악화 된 마지막 장에서 아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밝히고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거두게 하는, 한때 어설픈 선택에 헛발을 디딘 아버지의 사죄장면은 때늦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살아 온 날들을 돌아보니 참으로 여러 번 선택의 기로에 서 왔던 것 같다. 한 고비씩 넘을 때마다 취했던 또 다른 길들은 어쩌면 그럴싸 해보였고. 때론 운명처럼 당당했다. 상황에 편승해서 하늘에 맡긴 결정들을 타당하다 믿어 마지않았다. 그렇다 한들 하나의 선택이 파생시킬 수 있는 삶의 어떤 아이러니나 손실, 가까운 이의 눈물어린 희생이나 관계의 불완전성을 피해갈 수는 없었으리라. 내 젊은 한때의 꿈과 욕망에 소리 없이 묻힌 양 가족들의 인내, 찬란한 자유를 만끽해야 할 한창 때의 아들딸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 두었던 이름 모를 책임 의식, 엄마이자 아내이기 때문에 가르치고 지켜야 했던 얄팍한 규범들이 소용돌이 되어 떠오른다. 그 모든 것 뒤 삶의 여러 가지 빛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다, 막이 내리기 전 리타르단도로 이어지던 제르망의 독백처럼.

  선택은 끝이 나지 않았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그것의 연속일 뿐이다. 누군가는 선택이란 하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하나를 버리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정말 하고 싶은 것꼭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사이에서, 어느 하나가 다른 가치를 무너뜨릴까봐 조바심하여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는 나! 자칫하면 오페라속의 늙은 아버지처럼 무심한 욕망에 사로잡혀 또 다른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과 떨어져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해 온지 어언 20년이 넘었는데도, 나는 아직 따로 살리라는 선택을 굳히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그들에게 앞으로 남은 내 거취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무엇이든 엄마에게 가장 말이 되는 걸로 선택하세요!”

  신기한 대답이 돌아왔다. 말이 되는 것? 그럼 그건 내게 있어 쉬운 것을 뜻함이던가. 어려워도 행여 내 게으름이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독려해 왔던 것이 사실인데 말이다.

  미국이 존중하는 경영 컨설턴트이자 작가인, 로버트 프리츠는 그의 저서 <창조하기(Creating)>에서 강조한다,

  "가능해 보이는 것, 타당해 보이는 것만 선택한다면 타협만 남게 된다.”

  그는 또 의식적인 창조란 꿈과 현실이 일치를 이루지 못할 때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발돋움을 뜻한다고 깨우친다. 인류는 아마도 그런 선의의 무의식 때문에 더 도전하고 진보해 나갔던 것이 아닐까. 아이들과 함께 있는 길을 선택하든 아니하든, 보다 더 공평한 의식이 깨어 있어 내게 말이 되는 것이 그들에게도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제르망같이 참아 달라고 뻔뻔해질 필요가 없는 길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나의 선택이다.

 바리톤의 모호한 음성이 집으로 오는 길을 따라오는데, 마침 주치의 역으로 단 두 장면 나오던 지인의 아들이 묵직한 베이스로 그걸 누른다, ‘ 제르망처럼 몰염치하지도 않고 비올레타처럼 희생적이지도 않은, 그런 대로의 삶이었으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나아가라! ‘

  우연히 다시 마주친 오페라의 한 장면이 진하게 마음을 휘저어 놓은 하루였다. 공연 쪽으로 꽂혔던 그런대로 괜찮은 오늘의 선택에 흡족하며 내일은 한쪽으로 비껴 놓았던 꽃길로 접어들 계획이다.

 <<시선>>  2017년 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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