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조네스에 사는 슬픔
노정애
우리 집에는 남편만 남자다. 딸 둘과 나, 심지어 우연히 키우게된 똥개 두 마리도 여자다. 여복이 터진게 분명하다. 그대신 남성성의 위력은 대단하다. 여자들 속에서 남편은 지존이다. 우리는 한 마음이 되어 지존의 결정을 따르고 눈치를 살핀다. 그의 기분에 따라 집안 전체가 들썩인다. 다만 스포츠에 대해서는 예외다. 나는 운동경기에 열의가 없다. 가슴 짜릿한 열정과 희열을 맛보는 스포츠보다는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말들을 쏟아내는 드라마를 더 좋아한다. 훈훈하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나오면 거의 쓰러진다. 그렇다고 남편이 스포츠 광팬이냐면 그건 아니다.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필요에 의해 가끔 골프를 치는게 전부이니 숨쉬기 운동 마니아이기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걸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디서 그런 애국심이 나오는지 피곤함도 잊고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경기를 챙겨보고 스포츠뉴스를 보고 신문을 꼼꼼히 분석하며 스포츠 마니아가 된다.
나는 아쉽게도 그런 것들을 즐길 수가 없다. 무엇에 쉽게 열광하거나 빠져드는 사람이 못된다. 연예인을 광적으로 좋아해보지도 못했으며 학창시절 선생님을 짝사랑해본 기억조차 없다. 작품이 좋아 그 작가의 글만 골라 읽기는 해도 한 작가의 삶 전체를 심층 분석하거나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탐구정신 부족한 빈약한 정신세계를 가진듯하다. 실망하거나 상처 받지 않으려는 방어적 성향도 한 몫 할 것이다. 달리기조차 꼴찌를 도맡아한 둔한 운동신경 탓에 일찌감치 스포츠는 내 관심대상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크다. 이런 나에게 월드컵, 아시안게임, 올림픽등의 국제대회와 그와 관련된 많은 선수권 대회는 딴 세상 이야기다. 결과와 하이라이트만 보고 함께 박수치고 기뻐할 뿐 경기가 시작되면 간이 콩알만 해져서 볼 수 없다. 축구 같은 긴 시간 경기부터 짧은 시간에 끝나는 유도경기조차 내 간으로는 보기 힘들다.
2002년 월드컵 때는 모든 국민이 그랬듯 그도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초등학생 딸들을 데리고 작은집 식구들을 모아 광화문으로 대학로로 다니며 응원에 열을 올렸다. 식구들과 광화문 광장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붉은 악마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도 아빠와 함께 응원을 즐겼다.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남편과 아이들 성화에 먹을 것을 들고 쫓아다녔다. 핑계를 되며 요리조리 빠질 궁리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를 가장 견디지 못하게 한 것은 가슴 조마조마한 순간들이다. 모든 이들이 경기를 보며 숨죽이는 순간에도 눈을 감거나 아이들 간식을 챙기며 딴청을 부린다. 애써 경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골이 들어갔다는 함성이 울리고서야 재방영되는 화면을 보며 기뻐할 뿐이다. 함성과 열기로 가득한 사람들 속에서 혼자인 듯한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가끔은 남편과 아이들만 보내고 집에서 바느질만 했다. 덕분에 월드컵은 내게 퀼트 이불하나를 남겨주었다. 생각해 보면 경기가 끝나고 난 후의 뒤풀이만은 즐겼었다. 함께한다고 즐거워하는 남편의 행복한 얼굴을 보는 것이 득이라면 득일 것이다. 지존의 행복지주가 높아지면 집안의 행복지수도 올라간다.
지난 런던 올림픽 때의 일이다. 대부분의 경기가 새벽에 있었다. 남편은 거실에 잠자리를 깔았다. 일찍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편안하게 자리를 잡는다. TV를 틀고 여기저기 채널을 바꾸며 다양한 경기를 본다. 극적이거나 우승 장면, 억울한 장면들은 흥분을 넘어 경기장에 있는 사람처럼 온몸을 들썩거린다. 안방에서 자거나 책을 보는 나를 시도 때도 없이 불어놓고 흥분해서 말한다. 잠시 동요해주고 맞장구 쳐 주고 간식을 챙겨주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고등학생 딸들도 별 관심이 없다. 그 어미에 그 딸이다. 남편은 이럴 때 외롭다고 식구들을 불러 모은다. 함께 응원하고 흥분하면서 스포츠의 진정한 맛을 느껴보자며 옆자리를 내어준다. 지존의 명령은 먹혀들지 않는다. 공부한다고 혹은 볼 책이 있다고 각자의 방에 숨기 바쁘다. 혼자서 보는 운동경기는 재미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함께 응원하면서 으쌰으쌰 해야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데 가족이 없다고 투덜거린다. 못 들은체하고 각자의 방으로 줄행랑치는 우리에게 “아마조네스에 사는 슬픔을 너희들이 아냐?”고 절규했다. 아! 불쌍한 남편.
또 다시 월드컵이다. 이번 경기도 새벽부터 아침시간대가 많았다. 그동안 아이들은 커서 대학생이 되었다. 나에게 받은 유전적 요소 때문인지 아이들은 여전히 스포츠에 관심이 없다. 단지 순위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크고 작은 사건 탓에 예전만은 못하지만 브라질 월드컵 열기가 가득했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경기가 아닌가. 특히 축구에 죽고 못 사는 팬들이 많은 정열의 나라 브라질에서 열리니 기대도 한 몫 하게 했다. 태극전사들이 좋은 결과로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올려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졌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결승전이 열리는 그날 까지 남편의 이부자리는 거실에 깔려있었다. 고독한 섬처럼 혼자서 축구를 즐긴 지존. 여기는 아마조네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