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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메일이 그리워 지는 날    
글쓴이 : 노정애    17-09-05 18:35    조회 : 4,341

그의 메일이 그리워지는 날

 

노 정 애

 

, 가을 화원 앞을 지날 때면 예쁜 꽃들과 허브화분들이 유혹하듯 내 마음을 붙든다. 가까이 두고 싶은 욕심이 발동하면 꽃집주인에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물어보고 사들이곤 했었다. 화초를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는 꽃집 주인이 하는 거짓말 Best 5’가 있다. “물만 주면 아무데서나 잘 커요, 내 말대로만 하면 돼요, 얘는 원래 이래요,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식물이에요, 우리 집이 제일 싸요.” 잘 나가는 식물과 어딘지 불량해 보이는 화초들은 원래 이래요에 포장 되어 집으로 오면 결코 물만 주면 잘 자라거나 주인의 말만으로 키워지진 않았다. 날짜 맞춰 물을 주고 가끔 눈길만 주는 주인을 질책하듯 꽃은 시들고 향은 거둬들이며 말라갔다. ‘애정 없는 상차림이 독인 된다.’는 말처럼 식물도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는 안사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또 유혹에 빠져 욕심을 앞세우곤 했었다. 결과는 늘 똑 같았다. 어느 순간 식물에게 내 손은 킬링핸즈임을 절감하며 더 이상 사지 않고 있었다.

수필로 등단한지 2년쯤 되던 해였다. 다육성(밤에도 산소를 내 뿜음)식물인 산세베리아 화분을 책과 함께 선물한 독자가 있었다. 이란의 젊은 여성 7명과 금지된 작품들을 읽고 토론한 나피시 여교수의 생생한 회고담이 담긴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와 한 뼘 크기의 한 촉짜리 산세베리아가 앙증맞게 심겨진 도자기 화분이 집에 배달되었다. 지면을 빌어 내 글이 실리면 스토리가 있어 좋은 글이라며 칭찬을 하곤 했었던 사람. 졸작에 늘 숨고만 싶어 하던 내게 많이 사색하고 많이 쓰면 더 좋은 글이 나온다며 서두르지 말라고 격려의 메일을 보내오던 독자였다.

책은 잘 읽겠지만 글을 잘 쓸 자신도 화분을 잘 키울 자신도 없다고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소설은 알레고리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육감적인 경험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세계로 들어가서 등장인물들과 함께 숨을 죽이고 그들의 숙명에 연루되지 않으면 여러분의 마음으로부터 공감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감은 소설의 핵심입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은 소설을 읽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경험을 흡입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숨을 쉬세요.”

 

소설이 내가 모르는 세계의 육감적 경험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나피시 교수의 말이다. 히잡을 쓰고 억압된 욕망을 감추고 살았던 이란의 여성들이 모여서 금서를 읽고 토론하며 역경 속에서도 삶을 지탱시킬 수 있는 힘을 찾고 자신들의 꿈과 절망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하고 있다. 그녀들이 읽었던 책은 오만과 편견》 《워싱턴 광장》 《데이지 밀러》 《위대한 개츠비》 《롤리타등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서 공감하며 숨을 쉬었던 그녀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가 궁금했다. 여주인공들은 학업을 다시 시작하거나 작가가 되었으며 다른 나라로 가서 자신의 꿈을 위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척박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그녀들은 개츠비가 자아에 대한 가망성이라고 한 녹색 신호등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 책은 나를 아란이라는 몰랐던 세계로 데려가 공감하게 했다. 버려진 듯 달랑 하나만 놓인 그 화분은 책을 읽는 동안만 잠깐씩 내 눈길을 붙잡아두었다.

답장이 왔다. 산세베리아는 무관심이 키운다며 한 달에 한번만 물을 주면 된다고 했다. 물을 주면서 자신이 해준 내 글에 대한 격려를 생각하며 계속 글을 쓰라고 했다.

산세베리아의 생명은 질겼다. 잘도 자랐다. 책속 주인공인 그녀들처럼 환경에 굴하지 않고 주인의 무관심에도 의연히 버티고 있다는 듯 매년 새 싹을 키우며 식구들을 늘려 갔다. 몇 해 뒤에는 큰 화분으로 옮기는 분갈이도 했다. 그 뒤 아이들이 자신의 방에 둔다고 사들고 온 작은 산세베리아 화분이 두 개 더 늘고, 남편의 승진을 축하한다며 보내온 동양난,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선물로 받은 자신을 낮춰 땅과 최대한 가까이 붙어 있는 잔디모양의 화초, 그림 전시회에 가서 선물 받은 중국 매화등 화분 식구들이 매년 불어났다. 물론 내가 사들인 것은 없다. 여전히 화초에 관심을 두지 않는 나. 스토리가 담긴 화초들은 무관심한 주인을 탓하지도 않고 잘도 견뎌 주고 있다. 견디고 살다보면 좋은 날들도 온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는지 아님 곱씹을 추억거리만 있어도 삶이 견딜만 하다고 보여주고 싶었는지 장하기까지 하다. 산세베리아를 시작으로 더 이상 화초들은 죽지 않았다. 봄이면 보란 듯이 촉수를 늘리고 풍성해졌으며 꽃 까지 피웠다. 책속의 그녀들도 이렇게 삶에 꽃을 피웠으리라.

내 글이 지면에 실리면 잊지 않고 메일을 보내주던 그. 때때로 시집, 수필집, 신간 소설, 자기 개발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보내오곤 했었다. 다독이 글쓰기에 큰 공부라는 가르침을 그렇게 보냈으리라. 감사하다는 답장을 하며 산세베리아가 식구를 불렸다는 소식을 전하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메일이 오지 않았다. 안부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 습관처럼 화분에 물을 줄 때면 그가 궁금해지곤 했었다. 어느 날 그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50대 후반 아까운 나이였다.

내게 무관심도 생명을 거둘 수 있음을 선물해주고 내 글을 좋아하는 독자도 있음을 알고 글쓰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했던 사람. 그런 독자가 떠났다는 상실감은 오래갔다. 어쩌면 그의 격려가 힘이 되어 아직도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명을 불어넣는 그 화초 덕분에 다른 화초들도 살아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봄이면 산세베리아는 누군가의 못다 이룬 삶을 대변하듯 저 먼 곳에서 내게 포기하지 말고 글을 쓰라고 격려하듯 새로운 싹을 틔워 올릴 것이다. 새잎을 올리기 위해 추운 겨울을 견디는 나무처럼 삶 또한 인고의 시간이 자양분이 되어야 꽃 피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듯 그렇게 식구를 늘릴 것이다. 그럴 때면 그의 메일이 더 그리워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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