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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여인숙 201호    
글쓴이 : 노정애    17-09-05 20:13    조회 : 4,764

나비여인숙 201

노정애

 

몇 주 전부터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를 찾아와서 언성을 높였다. 급기야 공장에서 쓰는 기계와 집안의 온갖 물건들에 빨간딱지(유체동산 압류딱지)가 붙었다. 낡은 책상이며 의자, 전기밥솥까지 안 붙은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어머니는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우리 형제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아버지는 채권자들을 피해 동네 여인숙으로 몸을 피하셨다. 어머니의 긴 한숨과 어찌할꼬라는 짧은 탄식에 어린 나도 주눅 들어 도둑고양이처럼 숨은 듯 지냈다. 70년대 중반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공장을 어슬렁거리던 내가 채권자들의 레이더망에 딱 걸려들었다. 아저씨들이 나를 불러세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어디계시니?” 가끔 도시락과 옷을 아버지에게 배달하는 심부름을 형제들이 했었다. 나도 두어번 했기에 알고 있었다. 9살 계집아이는 부모님께 배운 대로 어른들에게 예의바르게 대답했다. “나비여인숙 201호에 계세요.” 뒤에서 어머니의 짧은 신음이 들렸다. 그들은 서둘러 떠났다. 돌아보니 어머니는 자식들 입단속 못시킨 자신을 책망하여 주저앉아 울고 계셨다. 그때서야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음을 알았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나 때문이라는 자책을 했다. 사는 게 어려워서 여기저기 목매달았다는 소문이 나돌던 시절이었다. 나도 목매달아야만 할 것 같은 불안감에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더해져서 책상 밑에 몸을 숨겼다.

그날 나비여인숙 201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문을 벌컥 열었을 때 그들이 봤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도시락 배달을 갔을 때의 아버지는 풍채 좋고 당당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숨어 지낸 며칠사이에 얼굴은 홀쭉해지고 몰골은 초라해져서 병중에 있는 사람 같았다. 타는 속을 달래려고 주전자째 냉수를 들이키시곤 했다. 그들도 그것을 보았으리라.

몇 시간 뒤 아버지는 조금의 취기가 오른 얼굴로 가방을 싸서 집으로 오셨다. 내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반가웠지만 지은 죄가 있어 나가지 못했다. 형제들이 나를 찾아 끌어내다시피 해서 겨우 아버지 앞에 섰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등에는 식은땀이 나고 고개도 들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 마음고생을 다 아시는지 잘했다고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채권자들과의 일이 잘 해결되었는지 며칠 후 집안의 빨간 딱지는 모두 사라졌다. 공장도 다시 가동되어 활기를 되찾았다. 부모님은 조금 더 바빠지셨다.

우리 집은 블록공장을 했다. 대부분의 거래는 신용으로 이루어졌다. 건축업자는 집을 지어서 팔고나서 외상으로 가져간 자재비를 지불했다. 그러나 경기가 어려워지면 집을 팔고도 물건 값은 주지 않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했다. 아버지가 돈을 받겠다고 동분서주 뛰어보지만 허탕 치기 일쑤였다. 떼인 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블록을 만들기 위해 사들인 모래며 시멘트등의 재료비를 떠안아야했다.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니 부모님도 더는 버틸 여력이 없으셨던 것이다.

어린 나는 한동안 꿈속에서 아저씨들이 아버지 어디계시냐?”고 묻는 악몽에 시달렸다. 항상 말이 나오지 않아 쩔쩔매다가 깨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책상 밑에 숨어있던 몇 시간이 그때는 꽤 심각했었나보다.

우리 집 가훈은 정직과 노력이라고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잘했다는 말 속에는 차라리 잘 되었다는 자조적 탄식과 부끄러움도 담겼으리라. 암묵적 비밀을 누설한 자식에게 잘했다고 말해야하는 가장의 쓰린 속은 숯처럼 타들어갔을 것이다. 그날 이후에도 공장을 운영하면서 혹은 다른 사업을 하면서 위기는 늘 찾아왔다. 그러나 더 이상 아버지는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시간이 걸려도 정직과 노력으로 맞서서 위기를 넘기며 작은 공장을 지켰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신 부모님 덕분에 우리 사남매는 자신의 꿈을 찾아 갈 수 있었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생활고나 다른 일로 가장이 목숨을 끊거나 가족과 동반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그날의 일이 떠오른다. 45여년의 시간이 지났어도 세상은 여전히 살기가 힘들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는 헬렌켈러의 말처럼 내 아버지 같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많기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 다들 힘든 이 세상을 어떻게 이리도 잘 견디고 있는지 참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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