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쉬는 중이다
노정애
미끄러져서 왼쪽 팔목이 부러졌다. 팔꿈치 위부터 손가락 한마디만을 남기고 통으로 깁스를 했다. 첫날은 팔이 부으니 심장보다 높게 들고 있으라는 의사의 처방에 머리위로 팔을 치켜들고 있었다. 다친 팔보다 어깨가 더 아프더니 나중에는 온몸이 쑤셨다. 팔 들고 벌서는 내 꼴을 본 가족들은 더 많이 놀라고 안타까워했다. 집안일은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오른팔과 다리를 다친게 아님을 다행으로 여겼지만 일상의 모든 것이 불편했다. 샤워할 때 오른팔에 비누칠도 못한다는 것을 안 순간 바보처럼 웃고 말았다. 특히 굵은 웨이브 펌을 한 긴 머리가 내 신경을 계속 건드렸다. 목덜미에 땀이 나도 한 손으로는 핀도 꼽을 수 없고 묶는 것은 불가능 했다. 딸아이가 등교 전 묶어준 머리는 몇 시간이 안 되어서 흐트러졌고 남편은 머리를 어떻게 묶는 줄도 몰랐다. 나갈 일이 생기면 고무줄을 챙겨 다녔다. 집 앞 미장원에 가서 묶어달라고도 하고 괜히 빵집에 들러 빵을 사고 알바 학생에게 묶어달라고도 했다. 아니면 약속 장소까지 가서 만나는 사람에게 고무줄을 내밀며 부탁했다. 남에게 머리를 맡기는 것은 미안했지만 몇 년을 기른 머리라 자르기가 아까웠다. 깁스를 풀면 문제될게 없다고 나를 달래봤지만 스트레스는 갈수록 커졌다. 머리조차 묶지 못하는 내가 한심해서 더 짜증이 났다.
원하지 않은 주부휴가에 책 읽을 시간은 많아졌다. 오래전 선물 받아서 장식처럼 꽂아 두었던 책, 밀란쿤테라의 《느림》. 18세기와 오늘날의 사랑을 대비하며 현대가 상실한 느림의 미학을 강조한 장편소설이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라고 작가는 나에게 묻고 있다. 내게는 늘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움직이는 고질병이 있다. 서두르니 항상 실수투성이였다. 느림의 즐거움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사고가 난 그날도 발 앞은 안보고 서두르다가 그 일을 당했다. 자업자득이란 바로 이런 것이리라. 작가는 ‘자본주의의 기계화된 문명들이 사람들에게 속도를 강요했다.’고 한다. 나 역시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떼는 순간부터 ‘더 빨리’를 내 몸에 각인시킨 것은 아닐까?
내가 넘어진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선에 놓인 반질반질한 보도판의 경사면에서 미끄러졌었다. 잠깐 멈춰 서서 주변을 보았다. 그 경사면과 주변의 다른 경사면에 미끄럼 방지 테이프들이 붙어있었다. 그 청년이 붙이지 않았을까? 내가 넘어졌을 때 빛의 속도로 달려와서 괜찮은지 물어봐준 사람. 119를 부를까요? 라며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다친 나보다 더 안타까운 눈길을 보냈던 그는 태권도 도복을 입고 있었다. 근처 상가에 있는 태권도 학원의 사범이었으리라. 누군가 또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끄럼 방지 테이프를 붙였을 청년의 배려. 타인을 향한 고운 마음이 붙은 그 길은 아름다웠다.
‘항상 급하게 어디론가 가다 보면 진정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혜민 스님의 말이 생각났다. 바쁜 일상 속에 놓친 소중한 것들이 보였다. 집안일을 대신해주는 가족들, 스스럼없이 머리를 묶어줬던 많은 사람들, 나를 도와주기위해 두 팔을 걷어 붙였던 고마운 분들, 그 청년. 그리고 고작 머리 때문에 쩔쩔매고 있는 한심한 내 모습도 보였다.
드디어 머리를 짧게 잘랐다. 잘려나간 머리카락들이 한 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짜증과 한심함, 2주간의 미련들이 함께 잘려나갔다. 몇 년을 길렀는데 20여분 만에 머리가 짧아졌다. 홀가분했다. 목덜미에 시원한 바람이 지나갔다. 더 이상 고무줄을 챙길 필요는 없다. 가볍고 편안해서 좋았다. 진작 자를 것을, 때 늦은 후회를 했다.
부러진 팔도 짧아진 머리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혜민스님의 ‘순간순간 사랑하고, 순간순간 행복하세요. 그 순간이 모여 당신의 인생이 됩니다.’ 라는 말.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되는 이 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좀 더 느리게를 내 몸에 각인 시켜본다. 그간 달려온다고 고생했으니 잠시 쉬라는 귀한 시간. 나는 지금 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