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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기즈칸의 나라    
글쓴이 : 정민디    17-10-03 15:58    조회 : 11,106


                        칭기즈칸의 나라


                                                                    정민디


1.   길 없는 초원

반나절은 달려야 고작 게르 몇 채를 만난다. 그러나 달리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만날 수가 없다. 그 곳에 유목민 가족이 살고 있고 너른 초원에 낙타, 양, 말, 소 등이 풀을 뜯고 있다. 이것이 몽골의 길이다. 몽골은 시간 저 뒤편에 있는 나라였다.

몽골에서 가장 모욕적인 말은 ‘평생 여기에 머물러 살아라’ 라 한다. 이들에겐 고향 ,정착이란 말이 없다. 유목민에게 ‘머물러’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무덤이 정착이다.

무덤조차 남기지 않은 불멸의 신화 칭기즈칸은 과거 몽골의 주요인물이고 현대 몽골의 상징이다. 하지만 칭기즈칸의 유물이나 유적은 광대무변한 몽골의 자연 속에서 바람이 되어 사라지고 모래가 되어 부서져 가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몽골인들의 정신으로 남아있다.

울란바토르 칭기즈 칸 공항은 소박했다. 밤 10시 30분 공항에 내리니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많아서 낯설지 않았다. 먼저 와서 두 대의 지프차와 기사들과 필요할 물품들을 섭외하고 기다리던 김재홍 사진작가가 반갑게 손을 흔든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 나라 현지인 같은 다국적 외모를 가진 작가는 2000년부터 사진작업을 하러 수차례 왔고, 한 때는 2년 정도 살기도 했던 몽골 통인데 이제 작업을 마무리할 때가 되서 마지막 여행으로 우리를 불러 모았다. 서울서 부터 ‘몽골인 ’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진상현씨가 몽골사람들과 얘기를 하는 듯이 보였다. 그들의 나라 사람인줄 알고 뭘 물어보더 라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호텔에서 아침을 먹는 데 상현 씨를 보고는 ‘몽골사람이 한국음식을 잘 먹네’ 하고  얘기했다고 해서 웃었다.

수도 울란바토르를 떠나 한 시간 남짓 달렸는데 낙타가 나타났다. 차에서 내려 낙타에게 다가갔는데 아랑곳도 없이 이미 허무를 알아버린 듯 무심히 초록을 찾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초점 없는 큰 눈을 끔뻑거리며 사막의 달관자로 느릿느릿 거닐고 있었다.

이정표라곤 없는 초원은 차가 달렸던 자국이 길이다. 앞 차의 먼지가 내비게이션이 되었다. 돌무더기를 쌍아 놓고 깃발을 꽂아놓은 성황당인 ‘어워’가 초원에 나타나면 마을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어김없이 내려서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고 여행의 무사와 안녕을 빈다. 희박하게 살고 있는 사람끼리 도울 수가 없으니 신한테 밖에 도움을 청할 도리 밖에 없으리라. 언제나 전망이 좋은 곳에 있어 사진 찍는 포인트도 되었다

마을과 마을이 만나려면 적어도 250 킬로미터 정도 되는데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때문에 시속 40킬로 정도 밖에 속력을 내지 못해 6시간 정도 걸렸다. 감자 등 야채를 좀 사려면 그 만큼 달려야 하는데 그렇다고 그 마을에서 원하는 것을 꼭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경작물 없는 척박한 땅에서  여행객이 사서 먹을 수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몰라도 몽골여행은 신선한 공기밖에 먹을 게 없다고들 했다.

47세의 우리 차 기사 람바는 러시아에서 에어컨 일을 배워서 돌아 왔으나 겨울이 8개월 이상이나 되는 몽골에서는 직업을 찾기 쉽지 않아 운전을 배웠다. 기계를 좀 알아서 차가 고장 날 때 요긴한 사람이었다. 가다가 쉴 때는 바퀴의 상태는 어떤지 이곳 저곳을 살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온몸을 사용하여 현란한 동작과 얼굴 표정으로 대화를 해야 했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초원은 더욱 파릇하고 하늘은 지성적인 파란색으로 빛났고 공기에서는 허브향이 더욱 짙게 묻어났다. 앞자리에 앉아 세 시간 이상 뜨거운 햇볕을 받은 나는 남자들만 탄 앞차 뒷자리로 옮겨 얼굴을 식히려했다. 바꾸어 탄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온 후라 곳곳에 진흙 땅이 되어 차가 빠져버렸다. 체중이 꽤 나가는 상현이가 자기는 엉덩이를 얼른 들었는데, 내가 안 들어서 빠졌다고 우겼다. 앞차 기사 바이라라 영어를 곧 잘해서 이것저것 물어본 게 부정을 탄 것 같아 움찔했다. 길 떠날 때는 거리가 얼마나 되고 시간은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어 보면 부정 탄다고 질문을 못하게 한 것을 깜빡 잊고 나댔다. 샤머니즘이 그들의 신앙이었다. 징크스가 많았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며 한 시간 남짓 씨름하여 겨우 빼냈다. 나도 열심히 있는 힘을 다하여 차를 밀었다.

 나 외에 나머지6명은 간간이 같이 여행을 했던 그룹이었다. 몽골통 김작가와 부부동반 여행가자는 사람은 다시 안 만난다는 이진영씨,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의 베이스캠프를 모두 트래킹을 한 인물 김미리, 제일 나이가 어린 진상현씨는 치과 재료상, 아줌마 조영업씨는 본래 아버지가 영엽이라 이름을 지었는데 출생 신고한 사람의 실수로 일생 영업을 뛰고 있고, 사진 찍을 때 항상 뒤로 넘어가는 모델 포즈를 하는 승아씨, 두 기사이름은 바히라와 람바였다. 차주인 바이라 차에는 남자 셋이, 여자 넷은 람바 차에 나누어 탔다.

쉼 없이 달리는 차안에서 졸거나 수다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양떼가 초지를 옮기려 길을 건널 때는 차가 서서 다 지나 갈 때를 기다린다. 여기서 람바가 퀴즈를 낸다. 양을 치어 죽이면 과연 양 값을 물어내야 될까? 안 내도 될까? 의견이 분분했다. 틀리는 사람은 저녁에 ‘칭기스’ 보드카를 사기로 했다.

“ 안 낸다. 이 넓은 초원에 목격자가 어디 있어.”

“ 삐-익. 땡.”


틀렸다.세계에서 제일 밝은 눈을 갖고 있는 유목민이 망원경으로 차번호를 봤다가 신고를 해서 양 값을 받아 낸다고 한다. 두 번째 문제는 그 망원경은 어느 나라 제품일까? 러시아가 가까우니 러시아제? 미국제? 또 땡이다. 망원경만은 중요한 거라 제일 좋은 독일제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만큼 유목민들에게는 양떼가 재산목록 1호다.


2. 아! 고비

몽골 말로 사막이 고비이다. 시속 30 킬로미터의 모래 폭풍이 몰려오면 게르고 뭐고 다 날라 간다고 하는 데 일 년에 90일 정도는 이런 바람이 분다고 한다. 왼 만한 마조히즘 환자도 견디기 힘들게 모래가 온몸을 아프게 때려 게르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나갔다. 어스름해지면 거짓말같이 바람이 물러가니 그 때 고비사막 사구로 트레킹을 하기로 하고 게르에 누워 있는데, 어디서 들어오는지 침대에도, 얼굴에도, 바닥에도 모래가 계속 쌓여 방도 사막이 되어 버렸다. 바람이 잦아 사구로 향해 꼭대기로 오르니 그 뒤로 거대한 모래바다의 물결같이 모래산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었다.  

 고비사막으로 가는 길에 신기루를 보았다. 지평선 뒤에 하늘은 호수이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지열은 나무로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지고 또 지평선은 계속된다. 지평선 곳곳에서 와서 쉬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신기루는 신기루라는 허상이었다. 신기루가 허망한 과학적 현상이라는 것을 굳이 알아 버린 것이 여행의 최대 손실이었다.  사막을 떠나 다시 초원으로 나섰다. 정말 하늘이 넓다. 저 멀리에 먹구름 낀 곳은 비가 올 것이고, 곧 이어 무지개가 뜰 것이다.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기고 사는 이 나라의 특징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었다.

3. 애마부인

독수리계곡이라는 빙하계곡을 들러보는 날이다. 과연 사막지역에 만년 빙하가 있었다. 빙하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차 있는 데 까지 마 모f을 타고 가기로 했다. 모두 말에 올라앉았는데 이상하게 상현씨가 탄 말만 한참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말 주인이 “추추‘ 라고 하자 말들이 움직였다. 어느 정도 가다가 먼저 떠난 상현씨의 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온몸을 흔들어서 그를 떨어트리려했다. 신경질 난 말에 떨어져서 몸이 끌려갔다가는 큰 사고가 날 뻔 했는데 다행이도 발을 얼른 빼서 내동댕이 처졌다. 옷은 다 찢어지고 온몸에 찰과상을 입었다. 바이라가 말하기를 말들이 지고 가는 무게가 많이 나가 힘들면 광분한다고 한다. 미쳐 날뛰며 도망 다니는 말을 잡으러 말 주인은 바쁘게 되었다. 옆의 있던 말들도 덩달아 화를 내기 시작 했는데  말 안탄다고 버티다 억지로 탔던 이진영씨는 고가의 카메라를 얼른 안고 낙법으로 뛰어내려서 큰 화를 면했다. 내가 탄말은 기사 바이라가 고삐를 잡고 갔는데 내 체중이 마지노선이었는지 순하게 나를 데려다 주었다. 애마부인 처럼 교태를 부려 봤다.


4.나담축제

몽골의 짧은 여름인 7월부터 9월 까지는 야생화도 피고 날씨가 좋다. 몽골인 들의 최대행사인 나담축제는 수세기 전 부터 용기와 힘, 담대함, 유목민 정신, 사격술을 시험하기 위해 생겨난 이래로 매 년 여름 열리고 있다.

. 몽골은 말을 빼놓고 얘기 할 수 없다. 나담(Naadam)축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 말들은 큰 경기가 있기 한 달 전 선택된 후, 방목지에서 분리되어 훈련을 받는다. 말들의 나이로 5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경기를 펼친다. 규칙적으로 자라는 말의 이빨로 나이를 가늠하게 된다. 2세, 4세, 5세, 5세 이상 그리고 종마로 나뉜다. 기수들은 5세에서 12세 사이인데, 몽골의 어린이들은 훌륭한 기수이며 소년 소녀 모두 유년기부터 말을 탄다. 17 킬로미터 정도를 달린다. 사람들은 흔히 “유목민은 말안장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몽골인들에게는 최대에 축제이나 여행자들이 같이 즐기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고 게다가 그 기간 동안은 몽골 전체가 휴일이고 게르캠프도 만원이어서 사실 여행자들은 그 기간이 끝나서 여행함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게르 캠프를 밤 9시에도 못 찾아 준비해온 텐트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실종 된 별들이 다 모여 있었다. 북두칠성이 바로 머리위에 있고 은하수가 철철 흘렀다. 시인 윤동주는 그 수 많은 별들을 어떻게 구분지어 헤었는지 역시 표적을 남긴 시인이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별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려 글썽글썽 거리듯 보였다.

 5.소금 수제비 와 허르헉

양고기가 주식인 몽골의 음식은 익숙지 않은 냄새로 먹기가 힘들다 해서 갈 때 많은 양의 한국음식을 가져갔다. 지구 구석구석을 많이 여행했던 김미리는 여행음식 준비에도 노하우가 있어서 매일의 식단을 꼼꼼히 짜와서 음식 걱정을 안했다. 하지만 그 나라의 음식체험도 여행의 중요한 일부분이기 때문에 ‘허르헉’ 이라는 양고기 찜을 먹기로 한 날이 있었다. 양고기 요리는 게르 주인집에서 해주기로 했다. 숯불에 달군 돌을 양철통 맨 밑에 깔고 냄새를 없애기 위해 소금과 보드카를 조금 넣어 찌는 요리이다. 양고기를 도저히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들깨 수제비도 끓이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실수를 저질렀다. 들깨와 구운 소금에 색깔이 같아 안경을 끼지 않고 간을 보다 마지막에 들깨를 넣는 다는 게 소금을 다 넣었다. 노린내가 나는 ‘허르헉’도 바닷물 수제비도 못 먹고 칭키즈 보드카 만 마시는 밤이 되었다

6.울란바토르

몽골에서의 마지막 밤은 제2의 도시 에르데네트에서 지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구리 매장량이 많은 몽골 최대의 광산지대이다. 그곳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포장도로여서 오래간만에 편한 이동을 했다. 울란바토르는 모래 먼지로 분주했다.

울란바토르 근교 테레지 국립공원에는 몽골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초원에 게르캠프도 있고, 말도 낙타도 탈 수 있다. 흔치 않은 강도 흘렀다. 몽골을 오래  여행할 수 없는 사람들은 울란바토를 근교만 가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한국인을 ‘솔롱고스’ 라고 한다. 솔롱고스는 무지개라는 뜻인데 원나라 때 공녀로 간 한국여인들이 색동저고리를 입고 가서 유래됐다고 한다.


몽골은 친근했다. 많이 다른 풍경의 땅덩이였지만 우리나라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게 생소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어느 게르 여사장님과는 자매결연을 하고 왔다. 그녀와 나랑은 많이 닮았었다.

그것 또한 물어 보면 부정 탄다고 할까봐 끝내 물어보지 못했는데, 과연 그들의 엉덩이에도 푸른 몽고반점이 있을까 하는 것 말이다.   

                                      한국산문 <지구촌 나그네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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