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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기시오    
글쓴이 : 박옥희    18-04-13 13:13    조회 : 6,971

                당기시오.

                                                                        박옥희

 

  유리문에 붙어있는 당기시오라는 알림문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일단 슬그머니 문짝을 밀어봅니다. 때로는 운 좋게 힘들이지 않고 몸을 이용해서 쉽게 들어가지요.

하루에도 여러번을 만나는 유리문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가 있어요.

병뚜껑을 열지 못해서 골드미스가 느즈막히 시집을 간다지요. 나도 비슷한 사연입니다. 스스로가 손 힘이 없다고 진단을 내리고 뚜껑 닫힌 병들이 주말을 기다리게 한답니다. 애들을 기다리는 거지요.. 연약한 척 한다는 딸아이의 눈총까지 무릎쓰고요 

언젠가 주일미사에서 들은 노() 신부님의 강론에 가슴이 뜨끔 한 적이 있었어요.  신학생 선발시험 이야기였어요 1차 시험 탈락자를 가려내는 테스트의 주제는 의외였어요. 신학교 현관 유리문을 통과하라는 미션이었대요. 너무나도 엉뚱한 주제에 어안이 벙벙해진 수험생들은 대부분 당기시오라고 쓰여진 현관문을 당겨 열고 들어갔겠지요. 몇 명의 수험생이 걸려 들었다고 해요.

  신부님의 결론은 사회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규범을 지키지 못하는 정신은 성직자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어쨌거나 그런 함정이 있는줄을 꿈에도 모르고 당기시오의 문앞에서 밀고 들어간 수험생들과 나는 딱 걸려 들었지요. 나름대로 준법정신이 강하다고 자처 하지만 당기시오의 유리문 앞에서는 무너지고 말아요 

  생각해보니 인간사 역시 크게보면 밀고 당기는 기()싸움 아니겠어요살아오는 동안 나는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밀어내는 데에만 익숙했던 것 같아요.

  나는 여러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피하는 편입니다밀어내기지요,  이번에는 손 힘이 아니고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변명 합니다. 한술 더 떠 정신력까지 들먹이며 나는 기가 약해 인간관계에 서툴다고 자가진단을 내리기도 했지요. 이렇게 내가 스스로를 세뇌시키게 된 이유가 있어요, 자주는 아니지만 나도 가끔은 한의원에 가지요. 내 맥을 짚어본 한의사들은 한결같이 내 기가 약하다고 말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그 진단이 맞는 것 같기도 했지요.

학력, 재력. 거기다  명예까지 쟁쟁한 모임 자리에 끼이면 그나마 남은 기마저 죽을 것 같아서지요. 하지만 가족 안에서의 나는 시댁에서건 친정에서건 인기 이랍니다. 우리 손주들은 할머니가 최고래요, 한가지 고백하자면 우리 동서들은 내가 눈치 없다. 뒷담은 해요. 형광등이란 거지요. 그렇지만 중요한 대목에서는 나도 아가서 크리스티 (Agatha Mary Clarissa Christie 1890-1976.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못지않답니다.

  어쨌거나 나도 요즘은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합니다. 내딴에는 열심히 노력도 한답니다. 거기서 얻어낸 결과를 얘기 해 볼께요, 모임자리에서 나는 자주 삼천포로 빠지더라고요. 대화의 주제를 벗어나는 거지요. 한 마디로 분위기 깨는 여자지요. 어떤 분은 내가 까다롭다고 하더라고요.   

  얼마전 오랫동안 눈 인사만 주고 받던 동네 아줌마를 끌어 당겼어요. 그분은 주민센터 가곡교실로 나를 데리고 갔어요. 가곡교실의 수강생 대부분은 초로(初老)의 새내기 할머니들이었어요.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불러오던 노래를 강사의 피아노 소리에 맞춰 부르는 동안에는 나도 신이 났어요. 그녀들은 목소리를 높이는 부분에서는 있는대로 악을 쓰면서 젊은날의 한을 노래의 날개 위에실려 보내는 것 같았어요. 나는 학창시절에 좋아했던 노래가 나오면 조용히 따라 불렀지요,.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추억을 풀어냈답니다 

  요즘들어 알아낸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병 뚜껑을 열지 못하는 이유는 손 힘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요령이 없었던 거지요. 지금은 혼자서도 잘해요.

  가곡교실의 분위기에 익숙해 지면서 나도 요즘은 내 소리가 묻힐세라 덩달아 악을 쓰지요. 그런 나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내 기도 만만치 않구나 

  이제는 미는데만 익숙해진 습관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지금부터의 내 인생은 당기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려해요. 구경만 하다가 인생을 끝낼 수는 없잖아요.

앞으로는 계속 당길겁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요.

 

                                                                          2017.<<한국산문>>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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