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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을 하고 건강하여라    
글쓴이 : 김미원    12-05-13 20:25    조회 : 4,623
이별을 하고 건강하여라
김미원
아들은 커다란 이민 가방 두개에 짐을 싸 현관에 놓고 마치 의식을 거행하듯 강아지를 목욕시킨다. 입을 굳게 다물고 샴푸를 묻혀 거품을 내 몸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닦고 물기를 수건으로 털어준다. 그 모습을 보며 강아지가 나 인양 느껴져 눈물이 난다. 그는 강아지를 씻기며 그의 부재동안 이 곳의 안녕을 빌 것이다. 그 마음을 아는 나는 눈물이 난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간 아들을 떠나보내는 일이 매번 쉽지 않았지만 이번 이별은 달랐다. 군복무를 마치고 비로소 어른이 되어 밥벌이의 무서움을 깨달은 사내답게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아는 눈빛을 품고 공항을 떠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 사라지는 아들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이제 오랫동안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진한 눈물을 흘려서인가, 몇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도 눈이 붓고 머리는 아프다. 눈물에도 급이 있다는 걸 알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며 그가 물리적으로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 다시 마음이 아파왔다.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 한참을 누워있었다. 낮에서 밤으로 가는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개와 늑대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낮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경계의 시간이 되면 사무치게 아들이 그리웠다.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를 이용해 미국에 사는 동생이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엄마는 지니고 있던 좋은 옷과 장신구 등을 정리해 싫다는 우리들에게 억지로 떠 넘기셨다. 아버지를 먼저 보낸 8순을 바라보는 엄마와 50을 바라보는 동생과 이제 50을 막 지난 나까지 세 모녀가 온천 여행을 떠났다. 목욕을 하며 나이를 고스란히 나타내는 몸을 서로 씻어 주기도 했고 아주 평범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냥,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중했다. 엄마는 동생을 떠나보내는 공항에서 “이제 나 살았을 때 너를 언제 또 보겠니?”하며 내 눈물보다 더 독한 눈물을 흘리셨다.
아들을 보낸 사흘 후 나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단지 커피와 함께 과자를 먹었을 뿐인데 배가 꼬이듯 아팠다. 소화제를 먹었는데도 낫지 않았다. 조금 지나니 어깨며 등이랑 몸살기운이 왔다. 감기인가 싶어 다시 종합감기약을 먹고 전기요를 켜고 침대에 누웠다. 남편은 저녁약속이 있다며 들어오지 않아 나 홀로 아파 누워 있으려니 눈물이 났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가뿐했다. 나는 아프고 싶었던 거 같다.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통증은 이별에 대한 통과의례였을까. 나는 다시 씩씩해져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형체도 없는 그리움은 참으로 속절없는 것이었다. 아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젊은 시절 빠져있던 헤르만 헷세의 <생의 계단>이란 시가 문득 떠올랐다. 헷세는 말한다. 삶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용감하게, 슬퍼하지 말고 새로운 단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하고, 그 단계에는 우리를 지켜주고 살아가게 하는 마력이 깃들어 있다고. 그리하여 이별을 하고 건강하라고. 나는 평소에도 ‘이별을 하고 건강하여라’라는 구절이 맘에 들어 자주 되뇌곤 했다. 그러나 아들을 멀리 떠나 보낸 지금 이 구절이 어떤 깨달음처럼 다가왔다. 이별을 하고 건강하라니...생명 있는 것들이 수많은 짧은 이별을 반복하다가 긴 이별을 하는 게 인생이 아닐까. 
남겨진 사람은 떠난 사람의 빈자리만을 바라보면 안 될 일이다. 뒤집어 아들 입장에서 보면 부모가 떠나고 형제가 떠나고 자신이 남겨진 것인지 모른다. 아들도 힘든 이별의 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에겐 그 이별이 새로운 단계를 위한 것일 게다. 나 역시 젊진 않지만 뭔가 새로운 단계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나는 내 힘으로 그 계단을 걸어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이별을 하고 건강하자고 다짐해도 아들 없는 식탁을 차리고 있는 것을 문득 의식할 때 콧등이 시큰해질 것이고, 빨래를 개면서 아들의 빨랫감이 없는 것을 깨닫는 순간 슬퍼질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내가 삶이라는 원금에 갚아 나가야할 이자 같은 것일지 모른다.
강아지가 나른한 긴 한숨을 쉰다. 나는 그를 불러 등을 쓰다듬는다. 또 아들 생각이 났다.
며칠 후 아들이 이메일을 보냈다. 이런 성경구절과 함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마음이 환해졌다.
 
월간에세이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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