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오길순
깔끔하다. 이토록 간결해도 가슴을 울리느니. 늘어진 책, 책장에 정리한 듯 명쾌한 시집, <<나비를 부르는 여자>>, 두 손으로 꼭 쥐어보았다.
남새밭에서 보았네/내 응뎅이 살색만큼/뽀얀 호박덩이를//살짝 살짝 건드려보는/고추들의 짓거리를//아, 저렇게 건들거리며 /고추들은 맵고 붉어진다는 것을
<연애>,윤문자
한 밤중 벌떡 일어났다. 건넌방에 쌓인 책들이 부르는 것 같아서였다. 그 동안 읽지 못한 책들, 정리하자. 우선 내 이름을 사인한 책들을 골랐다. 작가의 정성스런 마음, 문득 윤문자 시인의<<나비를 부르는 여자>>, 깜짝 놀랐다. 언제 받은 시집인데 전화도 못 드린 무례.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선배의 시집을 단숨에 읽었다.
남녀들 연애, 은근슬쩍 표현한 사랑시이다. 밉기는커녕 눈 딱 감고 말하는 익살에 웃음이 나온다. 흔하디흔한 호박과 고추가 주제인데 관찰과 묘사가 남다르다. 그렇다. 엉덩이 뽀얀 남새밭 호박에 풋풋한 풋고추가 바람결에 은근슬쩍 닿는 찰나, 운명의 옆자리 시작이기도 할 것이다.
스무 살, 라일락이 갓 핀 사월의 어느 월요일, 삼등 완행버스에 올랐다. 마침 월요일이 휴강이었기에 일요일을 쉬고는 집에서 학교로 향한 참이었다. 어떤 사나이 하나 내 옆 자리에 앉았다. 한 시간 여 자갈길, 차창너머 봄빛이 따스했다. 염치 체면도 없이 과자로 멀미를 달래느라 누구인지 바라볼 새도 없었다.
그 후 5,6년이 지나 결혼을 했다. 상대는 완행버스 옆 자리에 앉았던 사나이였다. 같은 지역 다른 대학생이었던 그가 평생 운명의 옆자리가 되었다. 비포장 자갈길에서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은근슬쩍 기댔던가, 어쨌던가. 풋풋하던 그도 서른 살 노숙해져서 넝쿨째 데려가겠다고 말했을 때, 스물다섯 살 처녀 쾌재를 불렀었다.
남새밭 채소, 소나무처럼 자라자고 약속도 했다. 시골 하천가 사글세 1500원 짜리, 부러울 게 없었다. 비 오면 비가 새고 연탄을 갈면 연탄재가 산탄처럼 부서졌다. 그래도 청국장 된장 끓는 소리에 그러려니 했다. 직장에 다니는 어미는 제대로 가꾸지도 못했는데도 아이들도 성실하게 자라주었다.
풋내기 소년 같던 사니이도 어느새 머리 하얀 할아버지가 되었다. 발갛던 두 볼도 밭고랑처럼 주름이 깊어졌다. 애통절통 50년 가까운 동안 큰 키도 어수룩하게 숙어졌다. 처녀들의 라일락 골목도, 흔들리던 빈자리도 잊었거니, 앞만 보고 달려왔나 싶어진다.
요즘 고속버스나 고속철은 참 편리하다. 그래서 아쉬워지곤 할 때가 있다. 청춘이 잠시 탈 수 있는 옆자리를 고속철이 빼앗아 간 것 같기만 하다. 예약석이 된 빈자리는 그 옛날 은근히 기웃대던 자리가 아니다. 완행버스 자갈길에 흔들리던 낭만도, 은근슬쩍 기대보던 처녀 총각의 순간도, 두꺼운 콘크리트길로 포장해 버린 것만 같다.
세상은 경직된 지 오래인 것만 같다. 편리가 위엄처럼 자리한 이 시대, 완행버스 옆자리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흔히 밀고 당긴다는 젊은이들의 은어 ‘밀당’도 필요 없고 애써 의뢰해야 할 중매장이도 가당하지 않을 그 곳이 사라진 것만 같다. 은근슬쩍 앉아볼 총각의 옆자리가 없어진 세상이 조금은 삭막해 보이기도 한다.
두 아이들이 배필을 데려왔을 때 장하게 여겨졌다. 경직된 세상 속에서 용케도 옆자리를 찾아낸 것 같아서였다. 이제 손자손녀까지 두었으니 스무 살 촌 가시나의 삼등 버스 옆자리는 오십년 전 신이 마련한 좌석이었지 싶어진다. 혹은 시할머니의 유언인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가 아직도 유효한지도 모른다.
한 밤중 옆자리를 떠올려준 윤문자 시인의 또 다른 시 <나비를 부르는 여자>로 들어가 본다. 해학적인 그의 표현에 은근슬쩍 공감이 가는 것은 아직도 나는 여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흔들리는 여자, 나는/나비를 부르는 여자/흔들리는 꽃나무/ 꽃을 피우며/ 암향을 피우는 여자/오, 노랑플라스틱 나비핀을/머리에 꽂고 팔랑팔랑/사뿐사뿐 자리를 헤매는 여자/마임같은 여자,나는
<나비를 부르는 여자>,윤문자
(마음의 양식 <<행복의 나라로 >> 국방부, 2018.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