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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 사오마이    
글쓴이 : 이원예    19-08-08 13:10    조회 : 3,423

 

  2,000년 제 14호 태풍, 베트남에서 명명한 금성이란 뜻의 사오마이, 92일 발생, 916일 소멸, 경남고성군 상륙, 상륙 시 중심기압 950hpa 인명피해 사망실종12, 재산피해 .... 그때를 기억하자 잊고 있던 딸꾹질이 시작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극심한 충격이나 두려운 사건을 경험, 또는 목격하고 발생하는 심리적 반응이다.

 

  주말마다 산을 찾아다니던 청년기시절의 여름 어느 날이었다. 계곡엔 투명한 물빛이 흐르고 좌우의 청록색 풍경들은 위로 오를수록 더 푸르렀다. 날이 저물어 산중턱 평평한 곳을 찾아 텐트를 폈다. 램프 불빛이 새어 나오는 텐트는 옹기종기 작은 산골마을을 이루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잠결에 흩뿌리는 빗소리를 들었다. 점점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억수 같이 퍼부었다. 텐트 주변에 수로를 더 깊고 넓게 만들어 큰 비에 대비했지만 빗물이 텐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일행들이 모여 대책을 의논하고 있는데, 뚜두둑, 나뭇가지가 꺾이고 우레가 지축을 흔들었다. 근처 계곡의 물이 바위를 쓸어가면서 부딪히는 소리라 했는데, 산속에서는 공명이 되어 더 크고 길게 울렸다. 시간을 두고 되풀이 되는 정말 무섭고 기괴한 소리였다. 그 소리에 질려 죽을 수 도 있을 것 같았다. 춥고 길고 두려운 밤이었다.

  날이 새기를 기다리며 짐을 꾸렸다. 등정을 포기하고 질퍽거리는 산길을 걸으며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비는 그쳤지만 온통 황토로 변한 물길은 폭포소리를 내며 우악스럽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어느 지점에 닿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렸다, 주위에는 찢어진 텐트와 찌그러진 코펠, 캠핑장비 같은 것들이 널브러져 있다. 계곡에서 야영을 하던 부부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남편이 죽었다는 것이다. 잠든 새 내린 비는 손 쓸 새도 없이 그들의 단란한 휴식을 쓸어갔다. “이대로 휩쓸리면 둘 다 죽어, 당신만이라도 살아남아야 돼생사의 기로에서 남편은 사력을 다해 부인을 밀어냈다. 그것이 부부의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계곡 근처에서 야영을 했던 우리들의 어제 밤이 섬광처럼 스쳤다. 한기가 몰려왔다, 갑자기 딸꾹질이 나면서 어지러웠다. 듣지도 않은 부인의 통곡소리가 오랫동안 내 귀에 머물렀다. 사흘 뒤에 남편의 주검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황토의 강이나 폭포를 보면 바위소리의 공포와 함께 죽음을 떠올리긴 했다. 그러나 그 기억이 외상후증후군이라는 태풍의 눈이 되어 내속에 똬리를 틀고 있을 줄이야.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난 20009월이다. 오오오~

  작고 나지막한, 이상한 사이렌 소리에 잠이 깨었다. 먼데서 들린다고 생각했던 그 소리는 더 커지지도 않고 작아지지도 않으면서 잦아들었다 냉혈동물이 풀밭을 스쳐가는 듯한 오싹한 소리가 이어졌다. 공포영화에서 보았던 괴물의 촉수가 나의 주위에 서성이고 있는 것 같은 섬뜩함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괴물이 다음 행동을 생각하며 채비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잠시 정온의 상태가 유지된다고 생각한 순간, 무언지 모를 많은 것들이 깨어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뒤를 따랐다. 찰나의 시간, 퍽 소리가 나고 번개가 치듯 두 어 번 하늘이 쪼개졌다. 갑자기 암흑세계가 되고 말았다. 모두가 바람이 지나가며 부딪히는 소리였다. 몇 날을 올 것이다라고 예고만 하던 태풍은 바람에 앞서 비의 진을 치고는 막무가내 고함을 지르며 몰아쳤다.

  땅 속으로 숨는 두더지처럼 애꿎은 이불만 끌어당기며 떨고 있는데 무릎은 나도 모르게 앞가슴을 향해 움츠려들고 있다. 두려움에 대한 몸의 표현이다. 사람은 두려움을 느낄 때 자신도 모르게 태아의 자세가 된다고 하는데, 소리가 공포로 다가올 때 인간은 얼마나 나약해 지는가. 화면보다 소리로 먼저 관객을 제압하는 공포영화처럼 그 밤 내내 폭풍우는 무섭고 기괴한 소리의 재를 뿌리고 있었다.

  이미 빛을 앗겨버린 전등, 태양마저 뜨기를 주저하는 어두운 아침이다. 지난밤에 빛을 한꺼번에 터뜨려버린 변압기는 이명처럼 웅 웅 대며 후유증을 앓고 있고 본체에서 터져버린 부스러기들은 악령처럼 거리를 떠돌고 있다. 낙동강이 수위를 넘겨 범람 할 것 같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하구언이 가까운 삼락동 강나루 근처에 사업체가 있던 나로서는 불면에 더하여 한나절이 지나도록 가슴을 졸이며 어수선하고 뒤숭숭한 현실을 지켜 볼 밖에 어떤 구체도 없다. 야성을 넘어 폭군의 횡포 앞에 속수무책이다. 가끔 지나가는 여풍에도 소름이 돋았다.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모아 정찰에 나섰다. 강둑을 오르는 순간, 말로만 듣던 아수라를 보고 말았다. 떠내려가는 그 무엇도 울컥울컥 쏟아내는 붉은 황토의 물살을 거스르지 못했다. 그야말로 강물은 테러리스트였다. 뿌리째 뽑힌 고목, 농부의 피땀이 맺힌 농작물, 사람과 교감을 키웠을 가축과 야생의 동물들, 살아있어야 할 것들이 죽음의 물길에 휩쓸렸다. 도대체 유속이 얼마나 빨라서 무거운 가구와 가전들이 가라앉지 않고 떠밀려가는 것일까, 강은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나까지 빨아들이려고 했다. 지옥도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오 옹~, 예의 나지막한 사이렌이 이명인 듯 울리고 딸꾹질이 났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오랫동안 잊고 지낸 큰물의 기억, 내 속의 태풍이 기압을 낮추고 상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다는 것을 온전히 알려준 태풍 사오마이다.

  을씨년스러운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저녁 무렵에 변압기를 교체하고서야 세상이 환해졌다. 다행히 강의 수위도 더 이상 높아지지 않았다. 일상은 바빠지고 황토의 강은 다시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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