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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시작 될 때    
글쓴이 : 진연후    19-09-08 21:49    조회 : 5,463

사랑이 시작 될 때

진연후

네 시간여를 달려 새벽 세시 반에 정동진에 도착한 버스는 다섯 시 삼십분이 되어서야 문을 열어준다. 아직 어둠이 짙은 밤하늘에 소원등이 올라가고 있다.

7시 38분, 2015년 1월 1일 정동진에 해 뜨는 시간이란다. 여섯시 반쯤 둘러본 해변가엔 체형 구분이 안 되는, 라인을 포기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160도 안 되는 키로 셀카봉과 스마트폰도 없이 사진을 찍으려던 시도에 스스로 어이없고 황당하다. 키 큰 앞사람 뒤통수만이 보일 뿐 해가 바다 위로 올라오는 모습은 보일 것 같지도 않다. 앞을 헤치고 나갈 수도 없고 올라설 곳도 없고 어정쩡한 곳에서 그냥 바다를 보고 있자니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을까싶다. 기다리지 않아도 해는 알아서 제 시간에 떠오를 것이고 내일도 모레도 어김없이 뜰 텐데... .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며 모두들 소원목록을 재점검하고 있겠지. 나는 저들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길 빈다. 남을 해하거나 잘못 되기를 바라는 소원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 소원들이 다 이루어지면 세상이 평화로울 것이니 부디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길... . 그래도 소원 한 가지쯤 생각나야 하는데 머릿속엔 지난 주말 이별한 짝사랑의 아쉬움만이 어지럽다. 학원 강사로 십육 년째에 접어드니 삼일 후에 만날 아이들은 열여섯 번째 짝사랑이 되겠지. 그런데 아직까지 열다섯 번째 짝사랑의 여운이 남아 당분간은 새로운 사랑에 몰입하기 힘들 것 같다. 어쩌면 그 아쉬움이 느닷없이 별 기대도 없는 해맞이 행사 프로그램에 신청을 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사랑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을 갖는 시간을 이렇게 만들고 싶었나보다.

지난 가을 어느 날, 학원에서 삼 년째 중학교 2학년과 3학년을 맡고 있는 정선생이 갑자기 준이가 궁금하단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인 준이가 앞으로 어떻게 클지 준이의 중3 시간이 기다려진단다. 일년 후엔 지금 중3인 시은이처럼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해질지, 폭넓은 생각을 하게 될지, 그 생각이 얼마큼 깊어질지 기대가 된단다. 문제해결을 하려는 적극적 의지를 보이는 준이가 기특하면서 그대로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기대와 그렇게 되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정선생 눈이 반짝인다.

매번 사랑을 시작하면서, 짝사랑인 줄 알면서도 이별하는 순간까지 기대를 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내 사랑의 표현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가끔은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어쩌다가 이별 후에라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경우엔 그동안의 서운함이 다 사라지는 건 물론 다시 사랑할 수 있음에 행복해했다. 사랑을 시작할 땐 모두 이 사랑이 특별하다고, 완벽한 사랑을 하리라고 기대한다. 학생들 한 명 한 명 그들의 생각과 꿈이 궁금하고, 함께 그 생각을 다듬고 꿈을 키워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궁금함이 그리 크게 나를 흔들지 않았다. 이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한 눈으로 아이를 보는 일이 뜸해졌다. 궁금하지 않으면 기대도 없고 열정도 없다. 그러다가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시간에 밀려 이별을 하고 나면 병이 난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중이었다. 특별한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여 해를 맞이하러 이곳까지 온 수많은 이들의 소원에 슬쩍 끼어들다가 깨닫는다. 새로 만날 아이들이 궁금해지고 기대를 갖는 일이 늘 내가 꿈꾸던 소원이었음을 확인한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궁금함을 안고 기다리는 일을 지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그것이 열정을 갖고 살게 하는 것임을 기억해 두려한다.

7시 36분쯤 뒤돌아 나온다. 굳이 내가 확인하지 않아도 해는 잠시 후에 틀림없이 떠오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테고 멋진 작품 사진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긴장감도 기대도 없이 해돋이를 기다리는 일은 쉽게 포기해도 아쉽지 않다. 몇 분 먼저 돌아서서인지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이 여유롭다. 버스에 올라타기 전 하늘을 보니 해가 참 따스하다. 눈이 올 수도 있다는 일기예보랑 상관없이 아직 길게 남아있는 하루가 기대된다. 새로 시작할 내 짝사랑이 궁금해진다.

한국산문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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