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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넙다리    
글쓴이 : 이기식    19-10-24 23:04    조회 : 4,296

(2017/09 수필과 비평 191호 '광어와 도다리', 수정보완)



넙다리

                       

이 기 식(don320@naver.com)

 

 

  가끔 들리는 수산시장의 횟집 앞에 설치해 놓은 수조 옆을 지나칠 때마다 삐딱하게 쳐다보고 있는 광어의 눈길과 마주친다. 헤드라이트처럼 뒤룩거리고 있는 두 눈을 볼 때마다 교활해 보일 때도 있다. ‘도다리는 좀 덜하다.

둘 다 가자미목에 속하며 옛날에는 비목어(比目漁)라고도 불렸다.

두 종류 똑같이 가자미가 조상일 텐데, 왜 한 녀석은 눈을 왼쪽으로 모아놓고 광어나 넙치라 부르고, 다른 놈은 오른쪽으로 해놓고 도다리로 부르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선조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들도 먼 옛날에 우리 민족처럼 6.25 같은 동족상잔 때문에 좌우로 갈라진 걸까.

또 어느 쪽이 정통파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왠지 오른쪽에 눈이 있는 도다리가 정통파인 것 같다. 세상만사가 오른쪽 우선이라는 통념 때문인가 보다. 광어는 자기가 정통파가 아니라는 콤플렉스가 있어서인지 굉장히 사납다. 이빨이 날카롭고 강하다. 반면에 도다리는 순하기는 하나 고집만은 보통이 아니다. 광어는 양식이 가능하나 도다리는 아직까지도 양식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며칠 전 물고기의 시각에 관한 티브이 다큐멘터리를 볼 기회가 있었다. 보통 물고기들의 눈의 특징은 오른쪽, 왼쪽의 각각의 시야는 넓으나 그 두 눈이 만들어내는 원근감은 상당히 짧다. 그래서인지 방향감각이 사람보다 나쁘고, 게다가 시력도 좋지 않다고 했다.  

생물들은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진화해 나가는 경향이 있다. 그 점에서는 광어나 도다리의 조상들은 상당히 현명했던 것 같다. 주어진 신체조건에 만족하지 않고 종족들의 존속을 위해 더 멀리 볼 수 있고, 넓은 시야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두 눈을 인간들처럼 한곳에 나란히 두어서 시각을 넓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바로 이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의 역경을 거쳐 지금의 눈으로 진화시켰다. 새롭고, 넓은 시야가 진화의 원동력이란 것을 깨닫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 같다. 이런 능력을 얻기 위하여 이들이 치렀던 괴로움이나 포기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태어났을 때는 다른 물고기처럼 얕은 물에서 세로로 서서 유영한다. 부화 된 지 열흘 후부터 혹독한 통과의례가 시작된다. 오른 눈이 왼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간이 약 40일이 걸린다. 이동통로를 만들어 주기 위해 코 언저리 뼈가 스멀스멀 녹기 시작한다. 눈 사이의 거리도 매일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모든 게 어릿어릿하게 보인다. 다른 물고기들의 밥이 되기 쉬울 때다. 이렇게 신화에나 나옴 직한 고행을 견딘 후에야 드디어 한 마리의 광어가 탄생한다. 개중에는 눈의 이동을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거나, 힘이 너무 드니까 중간에 포기하는 놈도 있는 모양이다. 또 이상한 것은 눈이 한쪽으로 몰린 상태로 DNA가 유지되면 좋을 텐데 굳이 태어날 때마다 고생을 시키는지. 유대인의 할례도 아니고.

광어는 진화된 눈으로 물 밑에 누워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집요하게 다른 물고기의 습성, 형태를 관찰하여 사냥 비법을 끊임없이 축적해왔다. 위에 떠다니는 물고기들은 노련하고 사나운 사냥꾼들이 모래에 숨어서 자기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공격패턴도 다양하다. 상대 물고기의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공격 시간에 완급을 두기도 하며, 피하는 습성에 따라 공격 방향을 선택하기도 한다. 맛도 구별하는 것처럼 보인다. 맛있게 생긴 먹이가 보이면, 전광석화처럼 상승하여 먹이를우두둑씹어버린다. 흩어진 부스러기는 도다리의 몫이 된다. 시각이 넓어진 탓에 얻을 수 있었던 상대적인 장점이다. 시각도 폭 넓넙게 변화시킬 수 있고, 거기에 따른 관점도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반면에 하는 짓이나 모습은 조금 부자연스럽다. 헤엄치는 모습이 가관이다. 가오리처럼 우아하게 양 날개를 상하로 움직이며 유영할 줄 알았는데, 누운 채로 몸 전체를 위아래로 방정맞게 퍼덕인다. 마치 사람이 개헤엄을 치는 것 같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실용적인 철학을 가진 생물이다.

  몸의 배색도 신기하다. 등과 배의 색깔이 서로 다른 물고기는 많이 봤으나, 광어나 도다리처럼 좌우의 색깔이 다른 경우는 드물다. 광어는 모래 속에서 숨어있기 위해 몸 왼쪽은 사막위장 군복색이고, 오른쪽은 희뿌옇다. 도다리는 물론 그와 반대이다. 서로 거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자기 자신들을 성찰하는 기회를 자주 갖는 모양이다.

  광어와 도다리의 미래가 궁금하다.

 플라톤이 쓴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한다. 원래, 인간은 두 사람이 등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앞쪽을 보는 얼굴, 뒤쪽을 보는 얼굴이 하나의 머리를 이루고 있고, 각각의 얼굴에 따른 손과 발이 2개씩, 도합 4개의 손과 발이 있었던 셈이다. 힘도 셀뿐더러 능력도 지금의 인간보다는 두 배여서 상당히 건방졌다고 한다. 신이 노여워서 몸을 반으로 잘랐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인간들은 지금까지도 잘린 나머지 반쪽의 이성을 만나서 완벽해지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것이  에로스라고  했다.

횟집의 수조에서 저렇게 멀뚱멀뚱하게 바보처럼 누워있는 광어와 도다리, 보기와는 달리 그들은 우리를 오히려 깔보고 있지 않을까. 녹녹치 않은 친구들이다. 언젠가 그 둘은 향연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서로가 합체하여 완벽한 생물로 진화 하려고 노력하는 중일 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수조에서 양 옆에 눈이 두 개씩 붙은 넙다리를 만날지도 모른다.  횟감으로는 좀 마음에 안 든다. 해괴한 모습의 광어가 나타나기 전에 회도 빨리 먹어둬야겠고, 소주 한잔 생각도 난다.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가는 전철역으로 향했다.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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