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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발, 두 발, 세 발로 걷는 게 사람이라고?    
글쓴이 : 박병률    19-10-26 20:51    조회 : 5,987

                              네 발, 두 발, 세 발로 걷는 게 사람이라고?

 

 자전거를 타고 어린이 자전거 안전 체험학습장을 지날 때였다. 노란 옷을 입은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구경꾼들이 많았다. 나도 자전거를 세우고 긴 의자에 앉아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내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들이 아이들한테 물었다.

  “오매 이쁜 것 좀 봐! 병아리 같네, 니 몇 살이노?”

  “세 살이에요.”

  여자아이가 또박또박 말하면서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또 다른 할머니가 남자아이한테 말을 걸었다.

  “무슨 반이야?”

  “저는 남자반이고, 얘는 여자반이에요.”

  남자아이가 옆에 있는 여자아이를 가리키자 여자아이가 나섰다.

  “바보 멍청이, 동생은 새싹반이고 저는 장미반이에요. 제가 7살 누나거든요.”

  둘이 타시락거리는 모습이 귀여워서 애들한테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도 두 손을 흔들며 내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할아버지

  여자애는 나더러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남자애는 아저씨라고 했다. 둘이 앞다퉈가며 연달아 큰소리치는 바람에 수업 분위기가 흐려질까 봐 두 손으로 내 입을 가렸다. 아이들도 따라 했다.

  선생님 세 분이 스무 명쯤 되는 어린이들한테 헬멧을 씌우고 팔과 무릎 보호대를 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어떤 아이는 헬멧을 씌우면 울면서 벗어 버리고, 한쪽에서는 애들 서너 명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으므로. ‘안전 운행완장을 두른 교사한테 다가가 아이들 나이를 물었다.

  세 살 어린이는 의자(?)에 앉아서 발을 쭉 뻗고 양손으로 커다란 바퀴를 돌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네 살배기는 세발자전거에 앉고 일곱 살짜리가 뒤에서 밀고 다녔다.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보자 내 아이 키우던 생각이 났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느 순간 부모와 눈을 맞추며 옹알이도 하고, 때가 되면 기어 다니다가 뒤뚱뒤뚱 넘어지면서 걸었지. 지난 일을 떠올리며 목일신 선생 자전거라는 동요를 흥얼거렸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 나셔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노인 조심하셔요/ 어물어물 하다가는 큰일납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교사들은 바쁘게 돌아다녔다. 세월이 흐르면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갈 것이고 몸과 마음이 자라서 어른이 될 테지만, 선생님은 나이가 들어 곱던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둘 늘어날 것이다. 아이들과 선생님을 번갈아 가며 생각하는데. 뜬금없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가 떠올랐다.

  스핑크스는 여자 머리에 사자 몸통을 닮은 날개 달린 괴물이다. 괴물은 산에 살면서 사람을 만나면 수수께끼를 냈는데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단다. 하지만 괴물을 처치하면 여왕과 결혼한다는 말에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를 찾아갔다.

 스핑크스가 문제를 냈다.

  “아침에는 네 발, 오후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이냐?”

  “사람입니다.”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풀자 스핑크스는 수치스러워서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었단다. 정답은 사람이었다.

  ‘아기 때는 기어 다니고, 돌 무렵에 걷기 시작해서 늙고 병들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사람이 나이 들면 소심하고 모든 기능이 떨어질뿐더러 심지어 아이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일주일에 네댓 번 자전거를 타는 편이다. 집에서 출발하여 잠실철교를 건너 잠수교로 넘어온다. 2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다 보면 등 뒤에서 지나갑니다.” 라고, 큰소리를 지르며 젊은이 열댓 명이 무리지어 앞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땐 등골이 오싹하다. 자전거를 길 가장자리에 세워놓고 일행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나도 한때 저들처럼 거침없이 달렸는데.”혼잣말하며 잠시 쉬고 있을 때, 언젠가 자전거 길에서 마주쳤던 노인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흔들었다.

  자전거길 옆, 인도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걷거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노인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고, 할머니가 의자 달린 유모차를 끌고 가다가 그 의자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어떤 할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데 젊은이가 뒤에서 밀고 갔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은 한결같이 고단한 삶을 붙들고 다시 일어서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별의별 생각 끝에 스마트폰을 거울삼아 내 얼굴을 비춰봤다. “그래 남자아이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해! 여자애는 나더러 할아버지라고?” 스스로 아저씨라고 자리매김했지만, 오이디푸스가 풀었다던 수수께끼가 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아침에는 네 발, 오후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게 사람이라고?

                  

                                  제4회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회수필49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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