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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어때    
글쓴이 : 진연후    19-11-10 21:28    조회 : 9,571

너는 어때?

진연후

“사랑으로 사는 부부가 몇이나 되겠어? 그냥 룸메일 뿐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뭐 그리 화 내고 흥분할 일도 없더라구.”

결혼한 지 20여년이 되어가는 친구들 모임에서 나온 말이다. 사랑이 식었는지 변했는지,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인지 3개월인지, 드라마 속 불륜에서 주변 누군가의 바람으로 이어진 대토론(?)에서 한숨으로 정리된 1차 결론이다.

대화에 끼지 못한 나를 느닷없이 무대에 세우며 2차가 시작된다. 본인들은 룸메에게 기대도 희망도 없다면서 내게 이제라도 짝을 구해보란다. 그러면서 어떤 짝을 원하는지 이상형을 말해보라 했다. 지금껏 이상형 같은 거 다 쓸데없다고 말한 건 뭔지... . 뛰어난 외모는 늘 불안해 지키기 어렵고, 여유있는 경제력은 생각보다 실속이 없다면서 어느 정도를 원하느냐고 묻는다. 함께 사는데 필요한 건 외모나 지위나 재산이 아니라는 걸 나보다 더 잘 아는 그들이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어, 이럴 땐 원래 없는 말주변이 더 없어진다.

학교 다닐 때 짝이 되는 친구와 한 학기 혹은 한 학년 동안 옆자리에 앉아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 때는 짝이 중요했다. 누구랑 짝이 될 것인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짝이 누구였는지, 그 짝이랑 친했는지 안 친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짝에 대한 별다른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짝과 특별한 일이 없었거나 혼자서도 잘 놀았던 모양이다.

패키지 여행에 신청을 하면 여행사에서 혼자냐고 묻는다. 그리고 방을 혼자 쓸 것인지, 다른 사람과 함께 쓸 것인지 확인하고는 방짝을 정해준다. 요즘은 ‘룸메이트’를 줄여서 ‘룸메’라고 하지만 10여 년 전 일기장을 봤더니 ‘방짝’이라고 되어있다. 방짝에 대한 사전 정보는 성별만 알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공항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정도이다. 그리고 4박 5일 혹은 9박 10일을 함께 자고 함께 움직인다. 혼자 신청한 이가 많을 때는 나름대로 나이를 고려해 짝을 정해주기도 한다. 서로 아는 이들이 함께 갈 때는 누구와 방짝을 하고 싶은지, 일방적으로 정해도 괜찮은지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먼저 누구와 해 달라고 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요구도 해 본 적이 없다. 그쪽에서 나를 안 좋아할 수도 있고, 내가 누굴 선택한다는 것이 낯설기 때문이다. 정해지는 대로 맞춰가며 지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고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설득하는 편이 마음 가볍다.

방짝 때문에 여행이 괴롭다거나 고통이었던 적은 없었다. 모이라는 시간에 서두르는 기색없이 느긋해서 약간 조바심이 난다거나 하는 아주 사소한 몇 가지가 당황스러울 때도 있긴 했다. 하지만 여행기간이 짧은, 기간이 정해져 있었으니 지나고 나면 그것도 추억으로만 기억되나 보다.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던 A.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지만 잠이 많은 나는 아침 이동시에는 자꾸만 눈꺼풀이 내려왔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B. 나에 대한 질문만 하고 자신의 이야기는 신비주의로 가다가 마지막 날에서야 나와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일을 한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걸 알게 되었다고 내가 뭔가를 하거나 누구에게 얘기할 것도 없는, 그래서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건데... . 자기애가 강하고 상대에게 직설적인 말을 거침없이 하던 C. 그녀의 직설적인 말에 크게 상처를 입지 않은 건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해서인지 아님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사랑을 꿈꾼다고 하자니 여태껏 들은 말을 이해 못 한 것 같고, 그렇다고 대놓고 이상형의‘룸메’조건을 늘어놓으면 분수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잠들고 깨는 시간, 욕실 사용 습관, 대화하고 싶을 때와 침묵하고 싶을 때의 시차 등등... . 나이가 들어가며 내 습관은 점점 더 굳어지고 상대방과 다른 부분은 더 커져 갈 테니 룸메 구하기는 포기하고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할까보다. 국가에서 혼자 사는 이들에게 싱글세를 내라고 할지라도, 평생 room charge를 내게 될지라도... .

그런데 나는 함께 했던 이들에게 어떤 방짝이었을까?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진다.


창작산맥 201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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