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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화 색깔    
글쓴이 : 진연후    19-11-17 15:41    조회 : 7,673

운동화 색깔

진연후

“이 운동화 무슨 색으로 보여요?”

쉬는 시간에 정선생이 조선생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묻는다. 조선생이 ‘민트색’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정말 민트색으로 보이냐고 재차 묻는 정선생 표정이 의아하다. 수업을 들어가려다가 뭔가 싶어 슬쩍 보니 운동화 사진이다. ‘어, 근데 저게 민트색이라고’. 얼핏 봐도 민트색은 아니다.

“어, 나는 분홍색으로 보이는데.”

“이게 왜 분홍색이에요? 민트색이잖아요.” 조선생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그러게. 참 이상하네. 나는 분홍색으로 보이는데 이게 민트색으로 보인다고?”

“저는 아침에 볼 땐 민트색이었는데 저녁에 다시 보니 핑크색이더라구요.”

옆에 있던 유선생의 말에 시력의 문제가 아니구나싶어 눈을 비비던 손을 내렸다.

수업에 들어갔더니 12명의 아이들이 1부 수업에서 운동화 사진을 봤는데 핑크색과 민트색이 반반이었단다. 시력, 성별 상관없이 제각각이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사진인데 사람마다 색깔이 다르게 보인단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호르몬의 문제라고 한다. 남성 호르몬이 많으면 민트색, 여성 호르몬이 많으면 핑크색으로 보인단다. 민트색으로 보였다는 여학생도 있고 핑크색으로 보였다는 남학생도 있으니 호르몬과 상관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봤어. 분명히 봤다니까.”

“설마, 네가 잘 못 본 거겠지.”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그러네.”

신문에서 봤는데 그렇게 나와 있었다니까, 인터넷에서 봤어, 내가 그 현장에 있었는데,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누군가에게 주장을 할 때 보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정말일까? 내가 본 건 확실한 걸까?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쓰고 있는데 요즘에 노안까지 와서 먼 거리에 있는 것뿐 아니라 가까이 있는 글씨도 잘 안 보인다. 숫자를 정확하게 기록해야 하는 때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렇게 눈을 크게 뜨고 정확하게 똑똑히 보았는데 그것도 믿을 수 없다니... .

빨간 안경을 쓴 사람과 파란 안경을 쓴 사람이 만나서 흰 벽을 보며 서로 자신이 본 게 맞다고 주장한다. 빨간 벽이다, 파란 벽이다, 내 눈에 무슨 색으로 보이는가, 상대방은 다른 색으로 보이는구나, 여기서 끝나야 하는데 내가 본 것이 확실하니 너는 틀렸다고 하는 순간 갈등이 생긴다. 서로 안경을 벗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 법륜 스님의 말씀 중에서.

우리는 언제부터 빨간 안경, 파란 안경을 썼을까? 어릴 때는 모른다고 했을 일들을 어른이 되면서 확신하는 경우가 많다. 더 많이 안다고, 많이 배웠다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진한 안경을 쓰고 자신이 본 것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하게 되는 걸까. 나는 네모인데 넌 왜 세모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말을 칼 삼아 휘두르며, 심지어는 생각, 느낌, 나아가 믿음의 문제까지도 내가 본 것이 맞고 내 생각이 옳고 내 믿음이 절대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 저 사람 눈에는 분홍색으로 보이는구나. 내가 파란 안경을 썼구나 하고 알면 수많은 갈등이 해결 될 텐데... . 안경을 쓰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못 벗는 걸까, 벗는 순간 패배한다고 생각해서 안 벗는 걸까?

아무튼 운동화는 내 눈엔 분홍색이다. 안경을 쓰고 봐도, 벗고 봐도 분명 분홍색인데... . 민트색으로 보인다니. 내가 본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구나, 내 눈엔 분홍색으로 보이니 나는 아직까지는 여성 호르몬이 많은가보다 생각할 뿐. 그래도 궁금하다. 운동화는 정말 무슨 색깔일까?

2019년 9-10. 87호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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