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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깍지    
글쓴이 : 이기식    19-11-27 17:26    조회 : 4,616

콩깍지

 

이기식(don320@naver.com)

 

나이 탓인가 보다. 요즈음 집사람이 달라 보일 때가 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식사 후 커피를 부탁한다. 아내가 어느새 향기 나는 커피를 가지고 옆으로 다가온다. 쟁반을 받쳐 든 손이 가볍게 떨린다. 못 본 채 한다. 나 때문에 생긴 버릇인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 커피를 놓을 때 무심코 옆얼굴을 본다. 엷은 미소라도 짓고 있으면 처음 만났을 때의 밝게 웃는 얼굴이 언뜻 스친다.

둘째 아이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곁을 떠난 지 어느새 육 년이 됐다. 큰아들은 객지에 나가 있어 집에는 둘만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무심히 천정만 바라본다. 집사람 역시 자는 척하면서 하늘에 있을 둘째의 얼굴을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윽고 소변을 참지 못하는 내가 먼저 주섬주섬 움직이면 집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주방으로 간다. 요즈음의 변함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나는 또래의 다른 친구들에 비해 직장생활을 일찍 시작했다. 1,4 후퇴 때 서울에서 강경으로 피난을 왔는데 가지고 있던 돈은 이미 바닥이 났다. 부모님들은 두 분 다 피난 생활을 견뎌내기에는 성격이 유약한 분들이었다. 수시로 싸우시기만 하셨다. 성격이 모지고 눈치 있는 사람이나 살아갈 수 있는 시절이었다.

나 역시 부모를 닮아서인지 강한 성격은 아니었으나 오 남매의 장남인지라 무얼 해서라도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할 처지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맨주먹으로 서울에 혼자 올라와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10여 년간은 동가식(東家食) 서가숙(西家宿)해가면서 학교에 다녔다. 졸업 후, 가까스로 5급 기술직 공무원(현 7급)이 되었다. 잠은 직장의 숙직실에서 끼여 잤고 끼니는 구내식당에서 해결하였다.

그 시절에 가장 바라던 것은 어떻게 하면 집에서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을까, 또 좀 편한 잠자리가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희한했던 것은 제대로 먹지를 못해 삐쩍 마른 와중에도 ‘페로몬’에는 왜 그리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카사노바나 시라노 드 벨쥬락에 관한 책을 구석방에서 탐독하곤 했다. 이 욕망은 아마 섭생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는 모양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친구와 같이 참석한 신입생 미팅에서 집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성격이 나하고 아주 달라 신기했다. 내가 소극적이고 결단력이 없는데 비해, 집사람은 적극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위로 언니들은 이미 출가했고 그즈음에는 어머님을 여의고 혼자 직장을 다니며 살고 있었다. 만둣국을 맛있게 잘 끓였다.

집에서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부모님께서는 적잖이 당황하셨다. 아직 학교에 다녀야 할 동생들도 있고, 따로 버는 사람이 없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의지를 굽히지 않자

‘눈에 콩깍지가 씐 모양이구나.’ 하시고는 더는 말씀을 안 하셨다.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결혼 후에라도 최대한 집안을 도우리라 마음먹었다.

결혼 후에는 안정된 생활을 했다. 직장도 공무원에서 연구소로 옮기면서 착실하게 경력을 쌓아갔다. 일반 대기업에서도 한번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 당시에 인기가 있었던 증권회사 CIO로 옮겼다. 강남의 큰 손들이 사윗감으로는 증권회사의 총각 직원을 최고로 쳐줄 때였다. 새로운 직장의 분위기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그 시기의 모든 증권사는 직원들의 평가를 고객약정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직원들은 고객을 증권에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했다. 고객의 돈이 깡통 계좌가 생기든 말든 상관없었다. 돈 놓고 돈 먹는, 돈이 모든 것을 말하는 분위기라 그런지, 그 속에서의 인간관계는 마치 고스톱판의 화투 꾼들 같았다.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가고 있었다.

퇴근 후에는 점차로 술 마실 궁리를 할 때가 많아졌다. 우리 나이 세대의 특징 중의 하나는 술 인심이 좋은 것이다. 만나기만 하면 술을 마셨고 어디를 가든 술이 있었다. 주머니가 변변치 못할 때는 막걸리나 소주였으나, 경제가 좋아지면서는 돈 번 친구도 많아지고 또 나름 회사 접대비도 요령껏 쓸 수 있는 위치가 되니 값비싼 룸살롱도 자주 가게 되었다. 고급 양주를 맹물처럼 마셔댔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견뎠는지 궁금하다. 취하지 않은 날을 찾기가 힘들었다. 성격도 조금씩 변해갔다. 사무실에서는 체면상 너그럽고 유머도 있는 사람으로 행세했으나 집에 들어와서는 전혀 다른 얼굴이 되었다.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도 예사로 하였다. 사무실에서 생긴 분노를 집에 와서 풀었다.

식구들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항상 불안해하고 기를 못 폈다. 내가 기분 좋을 때만 억지로 웃어주곤 했다. 이런 나를 보고 참다 참 다 못한 집사람은 화를 낼 때도 있지만 항상 먼저 수그러들었다. 쉽게 불안해하는 둘째 아들 앞이라 더욱 그랬다. 이런 불안정한 생활은 둘째 아들이 가고, 거의 같은 시기에 회사를 퇴직 하고 나서야 끝났다. 정말이지 집사람이 잘 참아주었다.

올여름은 정말 더웠다. 70년 내의 더위라고 한다. 에어컨 바람도 싫증 나 테라스에서 잠시 부는 시원한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을 때, 집사람이 차가운 맥주를 땅콩과 함께 쟁반에 들고 나온다. 사실 시원한 맥주 한잔이 그립지만 마실 엄두를 못 낸다. 당뇨나 심장에 좋은 음식, 나쁜 음식에 대하여 수시로 TV를 보면서 상식을 넓히고 있어서 부탁해도 거절당할 게 뻔하다.

맥주 캔을 기울여 거품이 나지 않도록 머그잔에 따라 준다. 예기치도 않았던 선심에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때 눈에 ‘콩깍지’ 가 끼었던 게 천만다행이었지.

이제부터라도 마누라 자랑하는 바보가 돼도 괜찮겠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맥주 맛도 한결 시원하다.

<<한국산문 2019. 12 vol.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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