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낙타를 사자
진연후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왜? 왜,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사는데?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그럼, 돈과 시간이 있으면 무엇을 하고 싶은데?
일을 줄이기로 했다. 수입은 줄겠지만 시간은 여유 있어지겠지. 수입이 줄어들 테니 씀씀이를 살펴봐야겠다. 의식주 기본 생활비와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물론 예금도 약간 있긴 하다. 그것을 언제 어디에 쓸 것인지 정해놓지 않아서인지 우선적으로 빼기 칸에 넣는다. 돈을 모을 때 사용할 목적이 정해져 있으면 기다림이 즐거울 수 있다는데, 때로는 계획이 없는 것도 단순해질 수 있어 마음이 가볍다. 여유 있어진 시간은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 넣을까? 갑자기 시간이 지워진 일정표를 마주한 기분이다. 바빠서 하고 싶은 걸 못 한다는 생각에 한숨을 쉴 때가 수시로 있었는데, 무엇에 속았던 듯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던가?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가는 길에 ‘낙타 트레킹’이란 표지판을 보았다. 아, 낙타를 타고 트레킹을 한다고?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엘 오르고 / 그래 그렇게 사막엘 가자
가장 멋진 내 친구야 빠뜨리지 마 / 한 다스의 연필과 노트 한권도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 이연실 노래 ‘목로주점’ 일부
주말이나 휴가 때면 배낭을 꾸리던 시절, 중국 황산 트레킹 중에 만난 이의 블로그에서 처음 이 노래를 들었다. 로프, 낙타, 산, 사막... . 마음을 들뜨게 하는 낱말에 월급이 적은 것도 시간이 없는 것도 무시하고 계획만 많았다. 히말라야에도 가야 하고 사막에서 별도 보아야 했다. 월급을 타고 적금을 들 수 있어 참 다행이라며 꿈을 꾸었다. ‘언젠가는’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적금이 만기가 되었을 때 발목을 잡은 건 따로 있었다. 그동안의 불규칙한 식사와 불편한 마음 때문인지 몸이 반란을 일으켰다. 일상 생활이 만만치 않고, 걷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밤마다 통증으로 잠을 잘 수 없었고 몸은 점점 약해져서 동네 뒷산조차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돈을 모으면, 시간이 나면, 아픈 것이 다 나으면... . 빨리 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낙타, 그 여유를 나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몸은 많이 회복되었고 시간도 가능해졌는데 낙타는 상상 속 동물이 되어 서서히 잊혀졌다. 잊은 줄 알았다.
연필과 노트를 앞에 두고 다시 낙타를 생각한다. 불쑥 나타난 낙타에 설레는 이 감정은 정체가 뭘까? 일상 밖으로 떠나고 싶은 욕망이 ‘낙타 트레킹’으로 천천히 고개를 드는 걸까?
2019년 한국산문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