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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봉조목    
글쓴이 : 이성화    20-04-26 20:04    조회 : 6,046

나비 봉조목

이성화

 

내가 만약 실력이 좋은, 멋진 솜씨를 가진 화가라면 그려 보고 싶은 그림이 있다.

방바닥에 뿌리 내리고 앉은 할매의 모습이다. 할매는 바느질을 한다. 무릎덮개 위에는 그날의 일감인 완성 전 니트들이 열장정도 차곡차곡 쌓여 있고 할매는 옷의 소매를 모아 쥐고 나비봉조를 한다. 오른쪽엔 완성된 옷이 열장씩 묶음으로 개켜져 있고 왼쪽엔 다소 너저분한 미완성 옷들이 할매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 위로 바늘땀으로 만들어진 나무가 줄기를 뻗어 올라가고 매달린 가지에는 완제품들이 열매처럼 열린다. 옷들은 저마다 자태를 뽐낸다. 각종 브랜드의 택을 잎사귀처럼 대롱대롱 매달고. 방바닥 아래로 할매의 손끝, 바늘에서 시작된 알록달록 색실들이 뿌리를 내린다. 할매가 기대앉은 고목은 그대로 할매의 몸이다. 그 모습을 아름다운 풍경화나 수채화가 아닌 산업포스터처럼 그려보고 싶다. 세련되고 우아한 이미지로.

 

남편은 니트 가공 공장 사장이다. ‘인 브랜드에서 일감을 받은 프로모션을 다시 으로 모시는 제일 아래 3,40평 남짓 작은 하청공장이다. 처음 시작하던 때에는 직원만 일곱 명이었는데 몇 번 가공비를 통째로 뜯기고 나서 직원 둘, 남편과 나. 넷이 소박한 분위기에서 속된 말로 빡씨게 일한다. 그런 우리에게도 이 존재한다. 니트 가공의 특성상 지퍼, 단추, 자수, 사시, 봉조 등 밖에서 일부 만들어 와야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중 위에서 그려본 할매는 상계동 봉조할매의 모습이다.

 

남편은 자기 몸이 들어가고도 남을 커다란 봉지에 일거리를 가득 싸들고 상계동으로 갔다. 할매는 때로는 혼자, 때로는 같은 기술을 가진 다른 할매와 같이 일감을 받아 내렸다. 젊은 내가 들어도 소리가 나는 무거운 짐을 구부정한 허리로 받아 일감을 펼쳤다.

이거 A사장이 내일 아침까지 납품가야 한다고 생난리야.”

남편의 투정 섞인 재촉을 할매는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아이고, 할매들 또 밤샘 시킬라고? 늙어서 잠 없다고 아예 안 재울라는 갑네.”

헤헤, 미안혀요.”

내일 새벽에 가지러 와요.”

고마워요.”

짧은 농담과 일감을 던져 놓고 그는 나왔다.

할매는 봉지봉지 쌓인 일감을 정리해 쌓아 놓았다. 늘 하던 일이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정리가 끝나고 앉으면 손에 바늘을 들고 뿌리를 내린다. 소매 양끝, 양쪽 밑단과 애리. 천을 끊어 만드는 옷과 달리 니트는 마무리를 손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그런 옷을 사 본 적은 없지만 브랜드명을 줄줄 꿰고 있다. 비싼 브랜드 옷일수록 손봉조가 많은 까닭이다. 할매는 온종일 앉아 사면봉조와 애리봉조에 열중했다. 만들 수 있는 양은 조금씩 달랐다. 각각 사장이 주문하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꼼꼼하게 하라든지 조금 대충하더라도 빨리 해 달라든지. 그렇게 하루에 수십 장에서 수백 장을 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많은 양의 일을 하지 못한다. 나이 들어 실력이 줄어서가 아니었다. 지금도 잘난 척하는 젊은 것들보다 얼마든지 더 많이 더 오래 바느질을 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애들도 챙겨야 하고 놀러도 가야하고 피곤하고3일만 야근을 해도 힘들다고 난리들이었다. 그러나 할매는 달랐다. 젊어 한창 일을 할 때, 야근은 늘 하는 일이었고 철야도 심심찮게 했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그렇게 일해서 새끼들 키워냈으니까. 일만 가져다준다면야 몇 날밤쯤은 아직 거뜬했다. 일을 많이 못하는 건 일감이 줄어들고 있는 탓이었다. 세상 좋아져 기계가 대신 해줘서가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기계도 할매의 손바느질을 당할 수 없었다. 저임금 국가에서 일을 많이 해오기도 하지만 경기침체가 계속되어 일거리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할매가 그렇게 바느질로 사는 동안 많은 사장들이 돈을 벌어 이 바닥을 뜨기도 하고 망해 사라지기도 했다. 온종일 일해서 받은 부업비를 들고 백화점에 나가 본들 자신의 손으로 만든 니트 두 장 사기도 버겁다. 할매는 최저임금을 받았다. 때론 최저임금도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하청공장을 운영하는, 할매에게 인 우리도 할 말은 있다. 브랜드 옷이 이십구만 팔천 원이니 삼십팔만 구천 원이니, 심지어 육칠십 얼마짜리 택을 달고 나가도 우리가 받는 가공비는 기껏해야 5,6천원 많아야 1,2만원이 고작이다. 그래서 할매는 옷 한 벌에 고작 몇 백 원 받고 하루에 백여 장 꿰매어 몇 만원. 한 달 내내 일해 봐야 일없는 날을 제외하면 몇 십만 원, 혹은 백만 원 겨우 채우는 일을 말없이 해야했다. 그래야 손주 과자 값이라도 쥐어주고 쓸모없는 노친네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일하는 할매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과거 우리 엄마를 보고 내 미래를 본다. 우리 엄마는 건물 청소를 하셨더랬다. 역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받았고 우리를 키웠다.

남편은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까지 일했다. 나는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장판이 된 집을 조금 덜 난장판으로 만들고 남편을 따라 나섰다. 그러고는 이제 껍데기만 남은 친정 엄마가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돌보다 지칠 때까지 공장에서 일을 했다. 결혼 전엔 공장 근처에도 안 가봤던 내가 공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시다였다. 쪽가위질이 힘들어도 다른 일을 할 겨를도 새로운 시다에게 줄 월급도 없었다. 그래서 곁눈질로 일을 배우며 온종일 쪽가위를 들고 공장을 종종거렸다. 그리고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을 때쯤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난장판이 된 집을 조금 덜 난장판으로 만들고 아이들을 조금 안아 주고 재운 뒤, 집안일 조금, 휴식 조금, 취침 조금 후 다시 하루 시작이었다. 우리부부의 수입은 사업 시작하면서 얻은 은행 빚과 떼먹힌 가공비 때문에 생긴 지인들의 빚도 갚기 버겁고 생활수준은 최저 생계였다. 남편의 성실함과 가공실력, 젊음을 믿고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내가 할매가 되었을 때 상계 할매처럼 쪽가위 하나 들고 미싱대 앞 시다다이에 뿌리내리면 어쩌나 겁이 났다. 늘 두렵다.

 

상계 할매의 모습을 상상으로나마 그려보며 생각했다. 고목이 고목이라 불리며 울타리를 거창하게 두르고 몇 백 년 된 무슨무슨목이라 칭송받는 게 몇 그루나 되겠는가. 그렇게 굵어지도록 오래 살아남지 않은 나무일지라도 의미가 있고 눈물을 담고 있다면, 늙어 휘어진 가지 하나만 가지고 있다면, 고목으로 인정해 주어도 좋지 않겠는가. 아이들을 낳고 키우다 보니 누구의 어떤 삶이나 행동도 손가락질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어떤 모습도 그들 안에서는 나름의 의미와 이유가 있을 거니까.

봉조의 여러 이름 중 나비봉조란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소매나 밑단 안쪽 끄트머리를 나비 날개처럼 양쪽으로 갈라 단정하게 꿰매어 마무리하는 거였다. 할매의 인생이 방바닥에 뿌리내려 움직일 수 없는 것이었다면, 다음 생에는 평생 만들었던 수천수만의 아름다운 나비이길 바란다. 이번 생에는 손에서 바늘 떨어뜨리는 순간까지, 한 땀 한 땀 엮은 고목 밑에 그대로 한줌 흙이 되는 날까지 쉴 새 없이 바느질을 할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꿰매었던 양 날개가 자유로워지기를.

훗날 정말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할매의 고목그림, 산업현장에 화려한 젊음을 바친 그 그림에 나비봉조목이란 푯말 하나 세워주고 싶다. 그리고 그 옆 작은 아기나무에 시다목'이라 수줍은 푯말도 하나 세워보련다. 나의 할매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 누군가의 눈에 의미 있는 고목으로 비춰지길 소망하면서.



2014년 제 32회 마로니에백일장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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