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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에 취하다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8:13    조회 : 5,517
 
 
                               향기에 취하다

                                                                                                              노문정(본명: 노정애)

  미국 TV 한 방송사에서 냄새에 관한 실험을 했다.  성인 여자 5명에게 똑 같은 티셔츠를 주고 일주일 동안 입고있게 한 후 그것을 병에 담았다. 남자 100명에게 그 냄새를 맡게 하여 좋은 향이 나는 곳에 표시하도록 했다.  표를 가장 많이 받은 여자는 아주 미인이었다.  미인의 냄새는 향기롭다? 아님 좋은 향을 가진 사람이 미인이다?  결론은 우리가 예쁘고 멋진 사람에게 끌리는 것도 그들이 지닌 향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 이런 글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인간의 냄새를 지니고 있었고, 사람마다 기본적인 그 냄새에다 보다 세밀한 어떤 냄새를 추가로 갖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개인적인 분위기를 좌우하는 체취(體臭)였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체취 혹은 향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난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런 시각 때문인지 사람들과의 첫 만남에서 나도 모르게 은근 슬쩍 냄새를 맡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아기에게 나는 젓 비리네 속에 숨어 있는 캐러멜 향 같은 달콤함이나, 여름 한낮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뛰어다닌 농구장의 청소년에게서 ‘후욱’ 뿜어지는 땀 냄새 뒤에 숨어있는 박하향 같은 시원함이나, 20대의 발랄한 여학생에게 비누 향과 섞여 나는 은은한 들꽃 향, 반백의 노신사에게서 나는 국화 향이 바람에 실린 듯한 연륜의 향등 일상에서 맡을 수 있는 향기는 많다.  내 기억의 샘에 뚜렷이 각인된 특별한 향은 많지 않지만 첫눈에 호감이 가거나, 볼수록 괜찮은 이들이 내가 좋아하는 향을 가진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이 버릇을 좀처럼 없애지 못한 체 습관처럼 남아있다. 
  나는 대학 때 교내 방송 반에서 동아리 활동을 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탓에 보도부에서 취재한다며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아나운서부에 있던 자그만 체구의 조용하며 고운 목소리를 가진 남자선배는 여학생 후배들을 유난히도 잘 챙겼다.  방학이면 3박4일씩 떠나는 MT에서 후배들의 무거운 가방을 대신 들어주기도 했고 텐트도  쳐주는 등 온갖 굳은 일들은 도맡아 해주었던 고마운 선배였다.  물론 난 워낙에 튼튼한 몸을 가진데다 힘도 넘쳐 호의를 거의 거절하는 편이였지만 다른 여학생들에게는 꽤 인기가 높았다.  그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다.  선택과목인 기계설계도면 그리기 과제가 나왔을 때 내가 추상화처럼 그려놓은 도면을 전공이 그쪽인 선배가 완벽하게 그려주었다. 덕분에 교수님으로부터 내 솜씨가 아니라는 것이 들통나 중간 점수를 받았는데, 잘한 것도 없는 난 그에게 으르렁거리며 도끼눈을 치 떴었다. 프로의 솜씨를 발휘한 것에 미안해하던 선배의 쩔쩔매는 모습만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었다.  
  결혼한 지 막 5년을 넘겼을 즈음 그 선배는 내가 처음 방송반 문을 열었을 때부터 좋아했었다며 뒤늦은 고백을 했다.
 “내게는 첫사랑이며 지독한 짝사랑 이였어, 그래서 지금도 가끔 네 생각이나.” 
 “지금 와서 나보고 어쩌라고, 진작 말을 하지”라는 나의 장난기 서린 대답에.
 “네 눈에 내가 남자로 보였냐?”라며 그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난 공대 생활 4년 동안 변변한 연애한번 못했다. 여성적 매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런 날 좋아했었다고?  사실은 “말이라도 해보지 이 바보야”라고 ‘톡’ 쏘아주고 싶었다.  두 아이를 가진 아줌마가 되어서야 들었지만 누군가 나를 보고 첫눈에 반했었다는 말은 두고두고 내 기분을 좋게 했다.  난 그에게서 내가 좋아하는 향기를 맡지 못했다.  만약에  맡았다면 내 인생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 뒤 “그 선배는 아이를 셋이나 둔 아빠가 됐어. 그런데 형수님(선배의 부인)을 보니 괜히 선배(나) 생각이 났어.”라는 후배 녀석의 느닷없는 전화를 받았다. 그의 용기를 불러일으킨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내게도 첫눈에 반해버린 사람이 있었다.  강한 자존심 덕에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 그 짝사랑은 내 가슴에 구멍하나 뻥 뚫어 놓고는 용기 없는 자신을 탓하며 혼자서 끝을 냈다.  지금의 남편에게서 그 사람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좋아하는 책, 저음인 목소리, 즐겨 듣는 노래, 노래방에서의 십팔번 등 생긴 것도, 성격도 완전히 다른데 참 많은 것이 닮아 있어 가끔 나를 놀라게 한다. 이렇듯 우린 자신이 좋아하는 내면의 향기를 쫓아 연을 맺어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끌리는 것도 그들이 지닌 향 때문은 아닌지? 첫눈에 반했다거나 첫 인상이 너무 좋았다는 표현 뒤에는 냄새에 너무 노출되어 무뎌져버린 코로는 맡을 수 없는, 다른 감각이 먼저 알아버린 그 향기에 취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삶이 묻어나는 독특한 내면의 향은 모두 다를 것이다.  인공적인 향수를 써 잠시나마 자신을 더 돋보이게 위장 하기는 쉽지만 그 내면의 향기는 쉽게 바꿀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인간적인 냄새라고 말하는 사람됨됨이는 생각과 행동이 함께 어우러져야 가능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향을 가지기는 힘들어도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향은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책과 인생>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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