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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인원의 꿈    
글쓴이 : 김기수    21-09-01 14:35    조회 : 6,633

 홀인원의 꿈

김기수

 2020년 경자년 말,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함으로 인류를 불안하게 만들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상을 알게 해준 어처구니없는 판국이었다. ‘언젠가는 종식되겠지하는 마음조차도 예상을 뒤엎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었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코로나 시대와 함께하고 있다. 갑갑한 마음에도 지난 소소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마음까지 거리를 두게 했던 아쉬움!

 정년퇴임 2년 전부터 새로운 취미로 드럼과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퇴직한 뒤의 짐작할 수 없는 무료함을 달래보자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무려 두 가지나 시작했다. 방과 후에 방송실에서 드럼을 배우고 옥상에 있는 골프 연습장에서 스윙 연습을 했다. 후배 교사에게 기본 리듬 박자를 배우면서 드럼채로 고무패드를 두드리는 연습에 빠져들었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 옥상에 올라가 골프공을 날릴 때는 마음이 후련했다. 퇴직해서 1년여 지나는 동안 오전에는 골프 오후에는 드럼 연습을 했다. 박자 감각이 무딘 나에게 드럼은 할수록 버거웠다. 드럼은 포기하고 골프만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7, 8년이 지난 때까지 거의 매일 오전 운동으로 실내 골프장에서 연습하는 재미로 시간을 보냈다. ‘달려라 고고! 골프 연습장으로. 해보고 싶었던 공 때리기!’ 멋있어 보이는 골프 선수들의 의상과 모습에서 젊은 시절의 멋과 폼을 살려냈다. TV에서 골프 방송을 보는 것이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야구 스윙과 같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골프의 멋을 알게 되었다. 골프채에 양손을 모아 집중하여 휘두를 때 허공을 가르며 나는 작은 공에 일상의 자잘한 근심 걱정을 날려 보냈다. 세상과 천지에 내 마음을 던지면서 느끼는 후련함은 환희 그 자체였다.

 사위가 퇴직 선물로 준 골프 클럽은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고 손때 묻을수록 더 아끼고 정이 가는 애장품이다. 골프에 멋들이고 라운딩도 나갈 만큼 실력이 늘었다. 잘 치겠다는 욕심이 앞서서 연습이 지나쳤는지 갈비에 금이 갈 정도로 무리를 했다. 결국 골프 장갑을 벗었다. 그 뒤 잠시 쉰다는 것이 어느새 해마다 겨울이면 날아가는 호주에서도 골프채 한 번 잡지 못하고 돌아온 지가 2년이 되어 간다. 겨울에 호주 딸네 가서 날씨 좋은데도 골프채 한번 잡지 못했다. 거기에다가 내가 애마(쏘나타EF)를 처분하고 기동력까지 잃게 되어 골프와 멀어졌다.

 골프 가방도 내 눈에 안 띄게 오랫동안 방구석으로 치워 놓았다. 어느 날 지인이 세상에서 이런 일이!’라는 문자와 함께 사진을 보내왔다. 홀인원을 해서 환호하며 볼을 꺼내는 장면이다. 마침 짐 정리한다고 아내가 베란다에 골프 클럽을 내놓은 날이었다. 문자를 보낸 지인이 7월 오늘, 수원의 유명 갈빗집에서 저녁 식사나 하자고 아내와 나를 초대했다. 지인의 가족과 이웃 몇 사람이 함께 한 자리였다. 그날 모임은 홀인원의 축하 자리였다.

 지난 4월 코로나19 때문에 큰 걱정 속에 장녀 혼사를 잘 치르고 나서 지인의 아내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5월 초에 친구들과 골프 여행을 갔단다. 공기 좋고 물 좋은 남도의 어느 골프장에서 마음이 가벼워서인지 홀인원을 했단다. 내리막 짧은 거리의 파 3홀에서 아이언 8번을 잡을까 7번을 잡을까 망설이다가 행운의 수라는 7번 아이언을 선택해 여유 있게 티샷한 볼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갔단다. 그때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고 전하는 오늘의 주인공 표정이 한껏 들떠 보였다.

 아내가 홀인원 한 그 공으로 지인 자신도 정읍에 있는 골프장에서 6월 말에 홀인원을 했다는 것이다. 약간 긴 거리의 파 3홀에서. 그린을 떠나던 4, 다음 팀 4명이 보는 가운데 홀인원을 했으니 어안이 벙벙했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골프 인생에 홀인원은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기적 같은 일이 아니던가. 겹경사에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한턱을 낸 것이다. 식사가 끝날 무렵에 지인이 기쁨을 나누자며 참석한 사람에게 5천 원짜리 복권을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1등 당첨되면 혼자 로또 맞고 2등 이하는 함께 기쁨을 나누자면서. 즐거운 만찬을 마치고 찻집에서 여담도 가졌다. 며칠 후 누구에게도 로또까지 행운이 따르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와 베란다로 밀려난 골프 가방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잡지 않았던 골프 장갑을 껴보았다. 언제 다시 클럽을 잡고 그라운드에 나가 행운의 볼 맛을 볼까나. 은근히 희망을 품어본다. 살다 보면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듯이 골프도 잘 되는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신화 판도라의 상자에 담긴 뜻을 생각해 본다. 칠십이 넘은 나이지만 나의 상자에도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지 않을까? 클럽헤드를 만지작거리다 보니 아이언의 차가운 감촉이 알지 못할 어떤 의욕을 일깨운다. 제자에게 선물 받고 몇 번 신지 않은 골프화를 신고 끈을 질끈 조여 맨다. ‘그래 홀인원이야. 가보는 거야!’            (한국산문 2021년 09월호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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