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나비춤
딸 하나가 출가하자 홀가분했다. 이십 청춘에 생긴 자식이니 그 애착이 남달랐으나 내심 치우고 싶었다. 결혼식장에선 뭐가 그리 서글픈지 주책없이 눈물을 쏟았다. 웨딩드레스 속, 한 송이 꽃봉오리를 본 순간 이성은 꼬리를 감추어버렸다.
아깃적 그 애는 신혼의 놀이터가 돼 주었다. 자라서는 친구나 스승처럼 어미와 동행하였다. 그림에 빠져있던 아이, 자유를 갈구하던 아이는 한때 거리의 화가로 지내기도 하였다. 나의 첫 문장을 읽은 첫 번째 비평가 역시 첫딸 지혜였다.
“내가 엄마를 낳아줄게.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 마.”
아이는 내 손을 잡으며 나지막이 위로해주었다.
신혼을 충분히 즐긴 뒤에 아기를 갖겠다던 지혜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딸애는 임신테스트기 사진을 보내왔다. 선명한 줄 두 개가 찍혀있었다. 태아의 윤곽이 또렷해지자 지혜는 태명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재고의 여지도 없이 “고도리!”라고 답했다. 상대는 “오케이!”였다.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태명은 ‘도리’가 되었다. 사위는 자신의 프로필에 매화, 흑싸리, 공산명월 열 끗짜리 화투 석장을 찍어 올렸다. 참으로 절묘하였다. 연애, 결혼, 임신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으니 부모나 자식이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나는 지혜네 집에서 모자를 돌보고 있다. 말동무 말고는 어미로서 특별히 해 줄 게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건 낡은 모정밖에 없다. 아기와 함께 하는 삶의 변화는 오롯이 딸과 사위가 감당할 일이다. 아이는 그저 “엄마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라고 말한다.
나비잠을 자는 도리의 모습이 지혜의 그 시절과 꼭 닮았다. 뱅글뱅글 도는 모빌을 쳐다보며 나비춤을 춘다. 나비처럼, 나비를 흉내 내는 춤꾼처럼 나비옷을 팔랑이다 아기는 잠이 든다. 나비의 언어는 자유. 나비춤을 추다 나비꿈을 꾸고 나비를 쫓다 나비를 잃으면 아기는 꿈에서 탈피하여 울음을 터뜨리는 게 아닐까.
놀란 아기를 어미가 감싸 안는다. 심장과 심장이 교차하고 배와 배가 맞닿는다. 아기는 엄마 품에 엎드려 다리를 옹크린다. 동그란 자세를 최적화한 아기가 어미 가슴에 단단히 붙어있다. 이곳은 허허한 바깥, 차가운 공기. 아직도 자궁인 양, 아직도 한 몸인 양 고치가 되어 앉아있는 모자의 풍경이 태앗적 생애를 통째로 담아낸다.
“나비가 날아가 버렸니? 나비를 놓쳐서 속상했구나.”
엄마는 나비잠에서 깬 아기를 위로하고 아기는 엄마 목소리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아기가 보챌 때마다 스스럼없이 가슴을 여는 내 아이의 기쁨과 눈물이 육아의 서막을 암시하는 듯하다.
지혜는 아기를 ‘어렵다’라고 표현했다. 밤샘은 당혹스럽고 유축(乳畜)은 고독하다고 하였다. 시간은 백색소음처럼 하루를 압박한다고 하소연했다. 자신도 나비가 되고 싶었으나 이렇게 나비옷을 입은 아기의 엄마가 되었다고, 젖 떼는 일이 이토록 마음 아픈 건지 몰랐다고 하였다. 세상 어렵지 않은 게 어디 있으랴. 어려움 가운데 최고의 어려움이야말로 아기를 키우는 일이다. 인생은 ‘잭팟’이 아니니 이제부터가 실전일 것이다.
짙은 해 그림자가 서쪽 하늘 밑으로 기어드는 초여름 저녁이다. 곧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린다고 한다. 지혜는 신혼의 낭만을 출산의 한판승으로 갈음하였다. 어미의 자유이자 나비였던, 나의 처음이던 그 아기가 아기를 낳다니. 압통(壓痛) 같은 세월. 생모의 부재로 어엿하지 못했던 사십여 년 체증이 일시에 가라앉는다. 번잡한 청춘의 이름은 황혼녘에 날려버릴 일이다.
태어나자마자 아기는 태명 대신 제 친조부가 지어준 진짜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나도 정식으로 할머니라는 호칭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손자 때문에 내 맘대로 살긴 글렀다. 폭염이 다가오리라. 나는 딸을 낳고 딸은 엄마를 낳고 엄마는 나를 낳고 나는 또…. 허, 그것 참!
-《좋은수필》2021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