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의 위대함 앞에 서다
김기수
코로나 19가 세계적 유행으로 모든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하늘길도 막혀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 낼 지경이다. 몇 년 전 여름에 다녀온 카자흐스탄에서 자연의 위대함, 웅장함, 광활함에 넋을 잃을 정도로 경탄했던 마음을 잊을 수 없어 그때 그 순간들의 그곳을 더듬어 담아 본다.
첫 번째 여정: 꼭주베
새벽 5시. 이메일 확인. 오늘은 메일이 없다. 대신 우 선생 메일이 올라와 있다. 간단히 답글을 썼다. "메일 잘 받아 보았습니다. 좋은 시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한여름에 수업하느라 고생이 많죠? 여기는 30~35도 기온이지만 습기가 없어서 찜통은 아니라 견딜만하답니다. 늘 옆에서 주어진 일에 열심히 하는 우 선생 얼굴이 이제 서서히 그리워지기 시작하는군요. 여기서 하나하나 있었던 일을 일기 형식과 사진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 보여 드려야겠지요? 오늘도 밝고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먼 이국땅에서 기원할게요! 건강하기를…"
아침 산책 후 오늘은 독서만 하련다고. 마음을 다졌건만 오후쯤 제자 영훈이가 왔다. 영훈이는 수원 유신고 11회 졸업생이다. 이국에서 만남이 반가웠다. 영훈이는 카자흐스탄에 오기 전에 터기에 있다가 이곳에 온 지 4년이 됐단다.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카자흐스탄 국립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생 겸 선생이다. 또 처형 내외와는 아주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있다니 나에게는 참으로 좋은 안내자가 되었다. 이곳 지리에 익숙하고 ‘까작’ 언어도 유창한지라 첫날부터 국립 중앙 박물관, 28전승 기념관, 시내를 안내했던 제자로 지금은 한국외대에서 재직 중이다.
오늘은 ‘꼭쥬베’로 향한다. 푸른 언덕의 의미를 가진 이곳에는 우리나라 남산 타워와 같은 높이의 탑(TV 센터)이 솟아 있다. 카자흐스탄의 남(南) 수도 알마티에 위치한 아름다운 곳이다. 알마티 도시 전체가 보이고 그 주변이 공원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란다. 흔들거리는 케이블카에 올라 마음을 졸이면서 한 10여 분간을 오른다. 이곳은 알마티 시내를 한 눈으로 조망할 수 있다. 뒤편으로는 텐산산맥의 만년설이 펼쳐졌는데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잃었다.
평일인데도 많은 현지인 사람들이 관광한다. 탑 쪽으로 난 길옆에 늘어선 나뭇가지에 비닐이나 천 조각을 매다는 풍습은 우리나라의 서낭당 앞에 돌을 쌓는 것과 흡사하다. 민간신앙은 어디를 가든지 그 나라의 고유한 전통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야경이 매우 아름답다는 이곳이지만 그 야경은 아쉽게도 볼 수 없는 시간대 선택이 아쉬운 마음으로 남는다.
지금은 환한 대낮이지만 오늘은 시야가 아주 흐리고 어둡다. 이 알마티 시내도 매연, 스모그 현상이 어쩔 수 없단다. 노후한 차량이 뿜어대는 매연으로 아름답고 청정한 기후 날씨가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변하고 있단다. 참으로 아쉬운 자연의 무방비 상태가 이곳 주민들의 삶에 얼마나 더 악영향을 미칠까? 안타까운 생각을 하면서도 아름드리나무 아래에서 주어진 그늘의 혜택을 만끽하면서 한참을 머무른다.
관광을 마치고 내려오는 케이블카도 흔들림이 심하다.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로 내려서 모든 사람은 처형 차로 집으로 들어가고 영훈이와 함께 나는 시내(레닌 가)를 거닐었다. 민족시인 ‘아바이상’ 앞에서 사진 한 장을 기념으로 남긴다. 영훈이의 안내로 시내 이곳저곳을 기웃기웃했다. 낯선 시가지의 모습. 그 속에서 활동하는 이국의 인간군상들. 젊은 남녀들의 옷차림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듯 노출이 심하여 시원스러워 보인다. 뜨거운 햇살 가운데 걷는 나의 모습은 아주 피곤해 보인단다. 영훈이가 자가용 택시기사와 요금흥정을 해서 ‘카작’ 화폐 300Tenge(우리 돈으로 810원 꼴)로 귀가함. 정원에 있는 정자 팔각정에 앉아 오늘을 회상하며 저물어 가는 ‘까작의 밤’을 맞이하면서 저녁 식사를 기다린다.
- 꼭쥬베에 있는 TV센터
- 꼭쥬베로 향하는 길
두 번째 여정(침블락 = 리프트)
토요일이다. 오후 1시 반, 처형 내외와 함께 모든 가족이 모여 ‘메데우산 침블락’으로 향한다. ‘침블락’은 시내에서 한 두어 시간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 점점 고지대로 향한다. 산의 높이가 2,200m라고 한다. 내 생전에 이리 높은 곳을 디뎌 봤던가! 물음에 물음을 더해 간다. 한라산은 등정했지만, 백두산은 상상도 못 했는데 내가 지금 이러한 아름다운 장관 앞에서 산 아래를 굽어볼 수 있다니. 이런 것을 두고 선인들도 ‘어찌 말로써 필설을 다하랴’라고 하였던가. 나 또한 문장의 길이가 짧으니 더 할 말이 어디 있으랴.
1차 리프트 장소가 3,000m. 2차, 3차 리프트가 기다리고 있건만 더는 바랄 바가 없다. 이런 위치의 정상에서 나의 인생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짐은 웬일일까? 주어진 자연에 다시 묻고 싶어지는 심사만 맴돈다. ‘침블락’ 정상에 가까운 이곳에서 만족으로 흠뻑 적셔진 이 기분! 당연히 뒤따르는 하산(下山). ‘침블락’에서 한참 내려와 잠시 중간 휴게소에 머물다 멋진 말에 반해 말에 오르고 다리 왕복 1회. 말을 이끄는 사람이 잠시 손을 놓고 말고삐를 나에게 주었을 때는 몽골인의 기상이 광활하고 높고 먼 데 있었다는 실감을 느껴 본다. 아래로 멀리 넓게 펼쳐지는 산과 들. 위로 바라보는 시야에서는 넓게 멀리 들어오는 만년설의 빙하로 둘러싸인 봉우리와 계곡. 그 사이사이 구름도 달려온다. 벅찬 이 감격을 표현할 길 없어 침묵에 빠진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을 향하여 달린다. ‘침블락’의 겨울은 더 멋진 정경이라고 처형 내외는 나와 아내에게 겨울에 다시 오기를 권유한다.
- 메데우산 침블락으로 향하다
-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침블락 정상의 만년설
- 침블락으로향하는 리프트
세 번째 여정(챠린 캐니언)
정원에 나가 우선 심호흡을 하고 선선한 바람을 마시며 가볍게 전신을 풀었다. 카자흐스탄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챠린 강의 캐니언'으로 향했다.
처형 내외는 함께 가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봉고 승합차를 랜트해 주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머나먼 길. 길가 옆의 집들, 빽빽한 가로수의 행렬을 보면서 도심지를 지나 한가로운 고속도와 같은 넓은 길을 달린다. 멀리까지 뻗은 사막과 같은 평원? 고원? 구릉? 끊임없이 이어지는 풍경을 보면서 아스팔트 포장된 도로는 산등성이 굽이굽이 돌고 돌아 멈추는 듯 또 이어지고, 한 시간가량 또다시 평원을 가로지른다. 우리만 달리는 느낌이다. 간혹 만나는 차량.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목적지 협곡까지 다다르니 자연의 오묘함과 신비감에 여기서 저절로 더욱 큰 감탄과 놀라움이 나를 사로잡는다.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산 정상에 위치한 지금. 말문이 막힌다. 풀포기들만 여기저기 듬성듬성. 깎아내린 듯한 절경! 서로서로 얼기설기 파헤쳐 은하수 물결을 이룬 듯한 장관! 영화의 한 장면이 계속 활동사진처럼 돌아간다. 내 안전에 전개된 이곳에 우뚝 서 자연의 주인공이 된다. 여러 장의 사진을 찍으면서 오늘의 이 놀라움, 아름다움에 감동한 만족감을 마음 깊숙이 담아두련다. 이 대자연의 위대함, 웅장함, 광활함은 인간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천지창조다.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에 다시 머리 숙여 경건의 기도를 드린다. 한낱 작고 작은 미물에 불과한 인간임을 깨달으면서 대자연 앞에 무릎을 꿇는다.
- 차린 캐니언
(한국산문 2021년 12월호 발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