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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의 길, 수필의 길    
글쓴이 : 성혜영    21-12-15 21:11    조회 : 5,064

인연의 길, 수필의 

성혜영

 

연두빛이 감도는 오월의 신록이 한창일 때, 우리는 피천득 길을 걸었다.

얼마 전에 새로 들어온 내 짝, 옆자리가 비어있던 터에 채워지니 좋다. 팬데믹이 오기 전, 심산 문화센터 일본어 수업이 끝나고, 우린 같이 걸어 나왔다.

반포천 둑방길의 버드나무를 바라보며, 금세 피천득 길에 들어섰다.

돌에 새겨진 피천득의 시는 오월 햇살을 받으며 빛났다.

오월, 치옹, 장수, 종달새 등의 돌에 새긴 시를 카메라에 담으며, “나 지금 수필 공부하고 있어요.”라고 하자 그녀가 반겼다.

그래요? 우리 남편이 시인이에요. 지금 찍은 사진 이따가 좀 보내주세요.”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부드러운 그녀의 표정이나 말이 시인과 닮아있다.

어쩐지, 시인의 아내라 책을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원서로 일본소설을 읽다가 말을 해 보려고 들어 왔구나.’

처음 소개한 날을 떠올렸다. 회화반에 오는 사람치고 그녀는 좀 달랐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에게 일본소설에서 본 문어체의 표현을 물어보곤 했다.

 

일주일 후에 남편이 쓴 시집이라며 책을 한 권 가져왔다.

사랑하는 것에는 이름이 있다라는 시집이었다,

~서울공대 출신 시인이라니, 뜻밖이네요.”라고 하자 본업은 건축인데, 얼마 전 은퇴하고 좋아하는 글을 쓰는 남편이 요즘 행복해 보인단다.

그분, 김상문 시인은 문학을 전공하고 싶어 했는데, 업으로 삼기에는 마땅치 않다고 집안에서 반대를 했단다.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을 하다 은퇴한 지금, 진종일 틀어박혀 글을 쓰며 원하는 삶을 산다고 하니 뭉클했다.

 

코로나가 습격한 20201월이 지나자,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꽃소식이 들려올 즈음 문자가 왔다.

동작역 현충원에 개나리 구경 오실래요?”

현충원에는 진달래 개나리 외에도, 수양벚꽃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덕수궁만큼 큰 나무는 아니어도, 제법 예쁘게 늘어진 벚꽃 아래 사진 찍는 사람들의 얼굴도 환하다.

 

한강의 북카페에 있던 여름날에 일본어는 하고 있느냐는 등 안부 문자가 왔다.

저 건너 남산타워가 보이는 한강 사진을 찍어서 보내고, 이어서 문자를 보냈다. “어제 수필반 후기란에 김상문 시인의 시 구름차를 올렸어요. 다들 좋은 반응이었어요.

 

시원하고 상큼한 구름차 한잔 드시려오/당신은 우아하게 앉아/하얀 손에 찻잔을 받쳐 들고/향기로운 녹차를 마시는데/내 어머니는 샘가에 서서 바가지를 들고/시원한 구름차를 드셨다오/녹차에는 녹차잎이 살폿 뜨고/구름차에는 구름이 둥실 뜨지/녹차에는 노곤한 삶의 시간이 사르르 녹아들고/구름차에는 고단한 삶의 갈증이 짜르르 녹아난다오 ( 김상문, ‘구름차전부)

 

 와 반가우셔라~제가 좋아하는 이기도 해요. 밖을 바라보니 날씨 너무 좋네요. 잘 지내셨어요?”

 언젠간 삼청동의 한옥에서 갤러리를 하는 친구가 그 집을 팔려고 하는데, 그 한옥을 사고 싶단다. 고쳐서 살려면, 2억의 비용이 든다고도 했다. 그거 좋겠다고 하자 관광객으로 시끄럽다며, 시인인 남편이 반대한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친해지면, 그간의 소식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12월 해운대 동백섬의 절경에 빠져있을 때 그녀에게서 안부 전화가 왔다.

그렇게 우린 계절별로 소식을 전해, 마음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로 대면 수업이 없는 1년의 공백을 우리는 그렇게 채워가고 있다. 올봄엔 길상사의 야생화를 찍어 보냈더니 다음엔 꼭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그렇게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속마음이 있는 게다. 곧 다시 만나서 회포를 풀리라는 속마음을 서로 헤아린다. 다음에 만나서 길상사 갈 때는 수필을 써보라고 권해야겠다.

시적 수필을 쓰는 시인의 아내를 떠올려본다.

 

수필에 관심을 두는 주변 사람에게는 피천득의 인연을 선물한다.

어느 교수는 괴테는 독일 문학의 절반을 차지하며, 피천득의 수필은 한국수필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했다. 수필의 모든 것이 인연’, 그 한 권의 책에 담겨있다. 미미한 듯 강렬하다. 인연이라는 책을 읽으면, 수필과 친해진다. 피천득은 말했다. 수필은 차를 마시는 것과 같고,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다고 했다.

그 말에는 한편의 글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도, 쓰고 싶어지게 하는 친숙함이 있다.

노년의 피천득의 모습을 그리면, 소년이 떠오른다. 소년처럼 순백의 마음이 느껴진다.

소설가 장강명은 책 한 번 써봅시다란 책에서 말한다. ‘창작의 욕구라는 게 우리의 본능이다. 글쓰기는 참고 있던 욕망을 해소할 기회이고, 삶을 충만하게 한다.’라고.

발효 숙성과정을 거친 음식은 오래 기다려 곰삭아야 풍미가 더해지듯,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 숙성된 사람에게는 백과사전 하나쯤의 인연과 추억꺼리가 있다. 정갈한 마음으로 내가 만든 사전 속에서, 하나씩 꺼내어 수필을 쓰는 재미가 있는 삶.

몰랐으면 어쩔 뻔했나! 이 재미에 빠진 삶은, 꿈을 꾸듯 나날이 풍성해진다.

 

 2021. 한국산문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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