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파크 골프
윤기정
칠십 넘어서 파크 골프(Park Golf)에 입문했다. 이웃들이 파크 골프 해보라고 권할 때 웃으면서 ‘알아보겠다, 알았다.’고 대답은 했으나, ‘노인네들이나 하는 운동에는 아직 관심 없거든’하는 속마음이었다. 파크 골프라는 게 ‘게이트볼’ 비슷한 운동이려니 짐작하면서 말이다. 여러 사람이 권하고 양평이 파크 골프 하기 좋은 여건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더 이상 관심 두지 않고 지내다가 몇 년이 더 지나서야 파크 골프에 대해서 제대로 알 기회가 왔다.
‘어르신 요리 고실’ 동기(同期) 하나가 파크 골프채까지 빌려주겠다며 적극적으로 권했다. 골프와 이름만 비슷한 게 아니라 운동도 규칙도 비슷하다는 말에 솔깃했다. 날짜를 잡아서 아내와 함께 양평 파크 골프장에서 그를 만났다. 강변에 페어웨이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작은 해머 닮은 물건을 하나씩 든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지인이 우리 내외에게 건네준 물건과 같은 모양이었다. 파크 골프채란다. 골프라는 이름 때문에 골프채와 비슷한 모양의 채를 연상했는데 뜻밖이었다. 게다가 그 채 하나만으로 플레이한다는 말에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날 파크 골프를 해봤다. 아내와 나는 골프를 오래 했기 때문에 바로 적응할 수 있었다. 아내와 동행하기를 잘한 것 같았다.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해보자’고 마음이 맞았다. 나이 들면서 골프를 계속할 것인지 망설이던 무렵이라 결정이 빨랐는지 모른다. 그때까지도 골프 모임이 여러 개 있었다.
골프를 계속하려면 운전 • 비용 • 체력이 문제였다. 양평으로 이사 온 후로는 골프 하는 날이면 새벽에 혼자 차를 몰고 나서야 했다. 어두운 시간의 장거리 운전이 부담스러웠다. 경비도 만만치 않았다. 회원제 골프장은 비용이 엄청나고, 퍼블릭 골프장이나 회원 대우를 받는 몇몇 골프장도 절대 헐하지 않아서 퇴직자 수입으로는 자주 나가기 어려웠다. 그린피(green fee), 캐디 피(caddie fee)는 자꾸 인상되었다. 장거리 운전과 한 번 나갔다 하면 하루가 가버리는 일정에 체력이 벅차다고 신음하기 시작했다. 호쾌한 타격은 사라지고 노인용 티 박스에서의 티샷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스코어도 나지 않았다. 골프가 이솝 우화의 ‘여우의 신 포도’처럼 여겨질 때가 되어서야 파크 골프에 마음이 열렸다.
파크 골프는 이름처럼 도심지의 공원에서 할 수 있는 골프형 스포츠다. 티샷, 어프로치, 퍼팅하면서 골프의 맛도 느낄 수 있었다. 36홀 라운딩이면 약 5,000보 넘게 걸을 수 있었다. 라운딩하면서 잔디밭을 걸으니 그냥 걷는 것보다 심심하지 않았다. 골프장까지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으니 운전 부담도 거의 없고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었다. 예약하지 않고 도착한 순서대로, 현장에서 모르는 이들끼리도 동반하여 시작하니 부킹하는 수고를 던 것만도 얼마나 편한가! 채 하나 공 하나면 ‘준비 끝’이니 채비도 골프에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저렴하다. 입장료인지 사용료인지는 모르겠지만 65세 이상 주민은 평일 1,000원, 주말 2,000원이면 종일 운동할 수 있다. 이만 비용으로 종일 즐기며 운동과 친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운동이나 놀이가 또 있을까 싶다. 양평 산다는 자체가 횡재한 기분이었다. 아쉬운 점 하나는 창공을 향해서 쳐대는 시원함이나 상쾌함이 없는 것인데 여러 가지 유익한 점에 비하면 참을 수 있는 아쉬움이다.
손주들이 오거나 참석해야 할 경조사가 있거나 몸이 아프지 않으면 운동 삼아 날마다 골프장에 나간다. 처음에는 주로 아내와 둘이 했으나 차차 사람들을 사귀게 되었다. 가까운 후배 내외도 파크 골프의 좋은 점을 알려서 함께 운동하기 시작했다. 좋은 일이나 정보는 나누어야 한다는 평소 생각대로 여러 사람에게 파크 골프를 홍보하여 입문하게 했다. 경기장을 익히고 먼저 시작한 이들에게 기술적인 면도 배우면서 스코어도 조금씩 좋아졌다. 동호회에 가입하여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과 관계도 생겼다. 퇴직 전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환경의 삶이다.
서드에이지(third age)도 지나 생애주기의 마지막 단계에서 수행할 업무 하나를 찾았다. 이제 생산적인 사회 활동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에 봉사할 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생애 마지막 주기에는 내 몸 하나 잘 건사하여 자식과 젊은이들에게, 사회에 짐이 되지 않게 사는 것이 중요한 과업이지 않은가? 운동할 수 있는 시간과 건강이 허락된 행운이 고맙다. 이런 일들이 내가 이루고 싶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신이건 하늘이건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누군가의 허락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파크 골프가 고맙다.
생애 마지막 주기를 두려움 없이 맞았고,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인생의 길이는 신의 영역이지만 인생의 깊이는 나 하기 나름이다. 파크 골프 하면서 건강 지키고, 파크 골프 시작하면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잘 키워가며 또 하나 삶의 깊이를 만들어 가리라. 다행히 글 쓰는 작은 재능을 받았으니, 소소한 이야기들 기록하여 삶은 살만한 것이라고 낮은 소리로 세상에 전하고 싶은 소망도 있다. 양평에 터 잡아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해졌으니 이 또한 지켜나갈 행운이다. 파크 골프의 문을 열어준 이근태 兄 고맙소.
곁에서 지켜보고 무어든 응원하고 무조건 지지해주고 격려하며 함께하는 아내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전하며…. 비바! 파크 골프.
<양평문인협회. 양평이야기 7>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