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발(?) 내밀기
아내는 ‘이야기할머니’이다. 어린이집 몇 군데를 다니면서 아이들한테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운전기사를 자청해서 어린이집까지 아내를 태워준다. 아내가 끝날 때까지 주차장에서 기다렸다가 아내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조수석에 앉는 아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여보, 아이들 반응이 어땠어?”
“오늘은 방귀쟁이 이야기인데 한 아이가 자기는 방귀를 안 뀐대요.”
어린이가 한 말이 우스워서 교재를 보여 달라고 했다.
“남자와 여자가 방귀 시합을 했어요.
남자는 절구통을 향해 방귀를 뀌었어요.
“뿌웅!”
그러자 절구통이 방구쟁이 여자 집으로 향했어요.
“흥, 보통이 아니구나.”
방귀쟁이 여자는 날아오는 절구통을 보며 힘을 줘 방귀를 뀌었어요.
“뿌웅!”
그러자 절구통은 다시 방귀쟁이 남자 쪽으로 향했어요. 절구통은 뿅뿅 뿅뿅 방귀 소리와 함께 이쪽저쪽 하늘 높이 날아다녔어요.
『2022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아내가 “어린이 여러분도 방귀 뀌지요?”라고 물었단다. 방귀를 뀐다는 아이도 있고, 어떤 아이는 “저는요, 방귀 안 뀌어요.”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내를 바라봤단다.
아내가 말하길, “할머니도 ‘뿌웅’ 소리를 내며 방귀를 뀌어요.”
라고 하자, 방귀 안 뀐다는 아이가 큰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거짓말이죠? 할머니는 방귀 안 뀌죠?”
“할머니도 뀐단다. 여러분, 친구가 방귀를 뀌면 어떻게 하나요?”
“냄새나요, 코를 막아요, 한 대 때려요.”
그러면 친구가 민망해할까 모르니까 “괜찮아, 나도 방귀 뀌어! 라고 해주세요.”
방귀 이야기 끝에 아내가 화살을 나한테 돌렸다.
“당신도 방귀 대회 한번 나가 볼란교?”
“자다가 뭔 봉창 두드리는 소리여!”
“아직도 그 일이 생생합니더.”
아내가 웃으며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방귀 이야기를 자주 들었지만 아직도 긴가민가하다. 어느 날 새벽에 집사람이 내 어깨를 흔들었다. 눈을 떴는데 방 등불은 켜져 있고 침대 옆에 아내가 서 있었다.
“여보, 자다가 방귀를 그리 크게 뀌는교? 집 무너지겠소.”
“이 사람이 생사람 잡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눈꺼풀도 무겁구먼그려.”
여름이라 더워서 방문을 열고 잤다. 아내와 입씨름하고 있는데 건넛방에서 딸들이 몰려왔다.
“방금 뭐가 터졌어요?”
딸들이 묻자, 아내가 말했다.
“너 아버지 궁둥이서 가스 샜다.”
“아부지는…. 와~천둥 치는 줄 알았네!”
딸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더니 제 방으로 갔다. 딸들 들으라고 큰소리를 했다.
“뭐 뀐 놈이 성낸다고, 네 엄니가 나한테 뒤집어씌운다.”
그날 밤 과식을 해서 속이 더부룩했는데 새벽에 일어났을 때는 편했다. 딸들이 간 뒤 이불을 머리까지 둘러쓰고 자는 시늉을 했다.
지난 일을 떠올리자, 어린이집에서 아내가 들려준 방귀 이야기가 귓전에 맴돌았다. 어떤 아이가 “할머니 방귀 안 뀌죠?”라고 능청을 떨었을 때 “할머니도 ‘뿌웅’ 하고 뀌어요” 하며 아내가 웃어넘겼다.
아내가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이 눈에는 아내가 방귀도 안 뀌는 사람처럼 고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내 어릴 적, 설날에 여자가 색동저고리에 치마 입은 모습이 아름다워 ‘여자는 방귀도 안 뀔 거야’라고 한때 묘한 느낌이 들 듯. 아내가 방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아내 얼굴을 쳐다봤다.
희고 곱던 아내 얼굴에 요즘 들어 잡티가 생기고 주름이 늘었다. 세월이 아내를 휘감고 지나갔는가. 아내와 함께 살면서 ‘여자는 방귀도 안 뀔 거라며 신비하게 바라보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가며’ 그 느낌 그대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스컹크’처럼 아내 앞에서 일부러 붕붕대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래전 잠결에 내가 방귀를 뀌었다 치더라도 나는 모르는 일로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민 꼴인가?
한국산문 202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