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최선자
보도블록 사이에서 민들레가 꽃을 피웠다. 줄톱 같은 잎사귀들이 제발 밟고 가지 말라는 듯 호위병처럼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작은 키에 오종종한 얼굴에도 꽃을 지키겠다는 결의 때문인지 사뭇 진지한 표정이 푸르다. 그 모습에 안심한 듯 민들레꽃도 당당하다. 겁 없이 덜컥 뿌리를 내리고 앉은 자리가 하필이면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위태로운 곳이다. 처음에는 바람을 원망했겠지만 밟히고 또 밟혀도 꿋꿋이 일어났을 게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진다. 민들레 꽃송이를 가만히 만져본다.
우리도 민들레 씨앗처럼 날아왔다. 부천에 뿌리를 내린 것이 올해로 이십오 년이다. 여성 가장이었던 나는 무모하리만치 멀리 꿈의 화살을 쏘아 올렸다. 하나둘도 아니고 셋이나 되는 아이들을 짊어진 어깨가 버거웠지만, 아이들의 꿈을 향해서 앞만 보고 달렸다. 이제 아이들은 꿈을 이루어 옥토에 뿌리를 내렸다. 이사 올 때 초등학생이었던 큰딸은 교사, 작은딸과 아들도 공무원이다. 아이들 노력의 결실이고 내 눈물의 결실이다.
그동안 척박한 환경에서도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민들레처럼 꿋꿋이 일어섰다. 몇몇 업종을 전전하며 개미처럼 열심히 일했지만 가난은 곁에서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그만큼 내 눈물 항아리는 철철 넘쳤고 고생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은 그 흔한 사춘기도 없이 철이 들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약속뿐이었다.
“우리 서로 맡은 일을 열심히 하자. 엄마는 열심히 일해서 너희들 뒷바라지하고 너희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약속대로 아이들은 사교육 없이도 당당하게 명문대에 들어가 주었고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에 하나같이 척척 합격했다. 보도블럭 사이에서도 꽃을 피운 민들레처럼 꿈을 이룬 것이다.
아련한 기억 속에 묻어야 했던 꿈. 나는 이제 내 꿈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어려서는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꼭 한 편만이라도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 빈농의 딸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쳤다. 더 계속하지 못한 공부를 무서리가 흠뻑 내린 중년의 끝자락에 시작했다. 단기간에 대학까지 왔으니 주춧돌 없이 기둥을 세우는 것처럼 공부가 힘들다. 벌겋게 녹슨 기억력도 한몫하며 방해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믿었던 것처럼 나 자신을 믿는다.
화살의 과녁은 민들레꽃을 닮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 시다. 목련은 고고한 자태의 새아씨 같다. 벚꽃은 화려한 성형미인 같지만 곧 화르르 져버린다. 민들레꽃은 허리를 굽히고 찬찬히 봐야 예쁜 꽃이다. 혹독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은 엄마 같은 꽃이다. 그런 모습을 시 속에 담아보고 싶다.
민들레 씨앗이 머지않아 바람 따라 여행을 떠날 게다. 어디가 종착역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나도 남은 인생은 시를 따라 여행하리라. 내 여행의 종착역도 아무도 모른다. 비바람을 맞으며 홀로 과녁을 찾아 들판을 헤맬 수 있다. 하지만 민들레 잎사귀처럼 둘러서서 응원 중인 아이들의 바람대로 화살이 과녁에 꽂히기를 기대한다. 내 꿈이 민들레처럼 활짝 피었으면 하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