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최선자
현관문을 열자 우르르 체리 향이 몰려온다. 딸이 집안에 향초를 켜 놓은 듯하다. 거실에 들어서자 추측대로 식탁 위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 유리병 안에 체리 빛 초가 가득하다. 심지에서 타오르는 불빛으로 인해 체리 빛이 매혹적이다. 촛불이 내 그리움의 현을 가만히 만진다.
촛불은 단순히 밝음이 아니다. 호롱불을 켜고 살던 시대에는 밝기로도 으뜸이었지만, 어찌 불빛만으로 촛불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초는 온몸을 태우며 불을 밝힌다. 뜨거움을 참으며 울고 있는 듯 눈물처럼 촛농이 흐른다. 한갓 소모품에 불과하지만 촛불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장남이었던 동생도 촛불 같은 존재였다. 온몸을 태워 형제들의 길을 밝혀주고 떠났다. 부모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아는 사람이기에 어린 자식들과의 이별은 더 고통이었으리라. 동생에게 장남의 멍에는 천형과도 같았다. 농사일은 팽개치고 술독에 빠진 아버지, 청각장애인이셨던 어머니. 부모님의 짐까지 짊어지고 동생들의 뒷바라지에 정작 본인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과대학교에 진학했다.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줄줄이 딸린 동생들이 고등학교 진학도 못 할 형편이니 혼자만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2학년을 끝으로 휴학했다. 그때부터 동생들의 학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형제들 앞길을 밝히는 촛불이 된 것이다.
대학교를 마친 동생들이 하나, 둘 취직했다. 동생의 짐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 틈에 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했지만, 형제들이 많아서 여전히 장남의 멍에를 벗지 못했다. 가정까지 꾸리고 나자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졌다.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했던 꿈을 접고 연탄 도매업을 시작했다. 하루에 수천 장의 연탄을 트럭에 싣고 내렸다.
연탄보일러가 기름보일러로 바뀌면서 수요가 줄어들자 다른 직업을 찾아야 했다. 직장생활의 월급은 씀씀이를 감당할 수 없었고 장사는 자본이 없었다. 화물차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짐을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녔다. 차량 정체 시간을 피하고자 차에서 새우잠을 자고 끼니도 거르기 일쑤였다. 덕분에 동생들이 다섯이나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유리병 안에 가득한 초는 촛농이 고여서 심지를 둘러싸고 있다. 동생의 가슴에도 남모르게 흘린 눈물이 흥건했을 게다. 운명이라 받아들였겠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고단한 삶이 어찌 서럽지 않았으랴. 장남의 짐을 벗어날 무렵 자식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생 자신을 위해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그 와중에도 동생들을 다독이며 형제들의 우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막내 남동생은 우리 형제들의 우애를 눈여겨보던 사람이 중매해서 결혼했을 정도다. 번듯한 집안 규수로 요즘 보기 드문 효부가 들어왔다.
가끔 친정에 다녀올 때는 동생과 함께 왔다. 일부러 도착지가 수도권인 짐을 주문 받아서 나를 태웠다. 어린 조카들과 힘겨운 누나의 차비도 아껴주고 도란도란 남매의 정을 나누고 싶었으리라. 차 안에는 운전석 옆에 늘 책이 있었다. 그 힘든 일상 속에서도 틈만 나면 독서를 했다. 그런 동생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다섯 시간이 걸리는 장거리였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시사는 물론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우리 집 앞이었다.
췌장암이라는 강풍에 촛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열하는 나를 동생은 오히려 위로하면서 말했다.
“누나, 언젠가는 떠나야 할 길 조금 일찍 간다고 생각하시오. 나는 식구들 사랑을 충분히 받으면서 자랐소. 고생만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외할머니는 나를 얼마나 사랑했소.”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타오른 촛불, 그것은 흠뻑 받고 자란 사랑의 힘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슬하에 아들이 없던 당신을 대신해서 딸이 낳아준 손자라서 끔찍이 아끼는 줄로만 알았다. 외할머니는 동생이 촛불이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아시고 안타까움에 더 사랑을 쏟았으리라.
항암 치료가 끝나고 일상생활을 해도 된다는 의사 말에 겨우 3개월 쉬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걱정하는 내 말에 일손을 놓으니까 우울증이 올 것 같다고 둘러대며 환히 웃던 동생. 어찌 쉬고 싶지 않았겠는가.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 사지로 내몰았을 게다. 무리한 탓이었는지 암이 재발했다. 수천만 장의 연탄과 짐을 오르내렸을 어깨. 평소에도 가끔 아프다고 하더니 말을 잃어버릴 정도로 병이 중해지자 심한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주 얼굴을 찡그리며 어깨를 만졌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매화도 산수유 꽃도 울고 있는 듯 꽃잎이 지던 날, 가물거리던 촛불은 강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기어이 꺼졌다. 고단한 삶을 사랑으로 상쇄하며 견디어낸 동생은 한창 공부 중인 삼 남매를 남겨두고 떠나면서 차마 눈을 감지 못했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고생했다고, 조카들은 형제들이 돕겠다고, 편히 가라고 눈을 감겨주었다. 촛불처럼 타오르던 동생의 육신은 떠났지만, 형제들 가슴에 영원한 향기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