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자가용 또 타요
어머니는 구순을 바라보는데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거동이 불편하다. 며칠 전, 장어집에 들러 장어를 사서 어머니가 계시는 동생 집으로 갔다.
“어머니, 장어 드시고 바람 쐬러 밖에 나갈까요?”
“싫다.”
“왜요?”
“늙은이 초라한 모습을 동네 사람한테 보이기 싫어!”
“사람이 나이 들면 누구나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몸이 불편한 건 당연한데, 쇳덩어리도 그만한 세월이 흘렀으면 녹이 슬었겄네. 엄니 안 그려.”
“그래도 싫어!”
어머니가 밖에 나가는 게 싫다는데 내 맘대로 우길 수 없었다. 평소에 장어를 사드리면 맛있게 드셨는데 그날따라 입맛이 없다며 장어 몇 점 드시고 상을 물렸다. 잘 잡숴야 또 사드린다고 엄포(?)도 놓고, 드시고 싶은 거 있냐고 물어본 뒤 한마디 덧붙였다. “엄니, 바깥 구경하고 싶으면 전화하세요!”라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가 어머니 근황을 물었다.
“어머니가 입맛이 없어서 그런지 장어도 맛이 없디야.”
“그럼, 어머니가 좋아하는 ‘짐너물’을 만들어 줄 텐게 낼 점심에 댕겨오소!”
아내가 말했다.
다음날 아내는, 들깨를 믹서기로 갈고 말린 호박을 물에 불렸다. 불린 호박을 푸라이팬에 볶은 다음에 들깨와 함께 솥에 넣고 끓이면 걸쭉한 들깨죽이 완성되는데, 우리 고향에서는‘짐너물’이라고 했다. 짐너물은 어머니 입맛에 맞는지 대체로 잘 드시는 편이다. 아내가 짐너물을 만들어주면 어머니한테 찾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엄니, 큰며느리가 만든 짐너물 배달 왔습니다. 내가 맛을 본 게 엄니가 끓여준 그 맛 그대로구먼요. 따술 때 얼른 드셔요.”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상에 올려놓고, 짐너물에 밥 한 숟갈 넣어 수저와 저분을 챙겨드렸다.
“에미한테 고맙다고 혀!”
어머니가 음식을 드시고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엄니, 오늘 기분이 어뗘? 가을 단풍이 멋져요. 엄니 자가용으로 내가 모실게. 노래방 기기도 챙겨요?”
어머니는 싫지 않은 눈치였다. 장롱문을 열고 어머니가 즐겨 입던 모자 달린 두툼한 옷을 입혀드렸다. 노래방 기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작게 해서 스웨터 주머니에 넣어드렸다.
“모자 쓴 게 엄니인지 모르겄네.”
휠체어를 꺼내서 어머니를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혔다. 전봇대 2개 정도 지나 셋째 동생이 오래 전에 살았던 아파트로 향했다.
“엄니, 운전사 맘에 들어?”
“그럼.”
휠체어를 처음 밀다 보니 한쪽으로 쏠리기도 하고 ‘방지턱’을 넘는데 뒤로 밀리기도 해서 어머니 마음을 떠봤다.
“사람이 밖에 나와서 햇빛을 봐야 한대요. 의사가 말하는데 젊은 사람도 일주일에 두세 번 운동해야 건강하대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밀고 다니면 저도 공짜로 운동하고 엄니도 건강해질 테고, 꿩 먹고 알 먹고네! 일주일에 두 번 어떠세요?”
“그려”
어머니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셋째 동생이 살았던 아파트가 보였다.
“엄니, 셋째 동생이 저기 앞에 보이는 9동에서 살다가 다른 데로 이사 갔잖여!”
동생이 살던 아파트를 손으로 가리키며 어머니한테 말했다.
“셋째가 어디 사냐?”
어머니는 엉뚱한 말을 했다. 휠체어를 밀고 몇 발자국 가다가 내가 뒤로 돌아서 또 그 아파트를 손으로 가리켰다.
“동생이 살았던 아파트가 몇 동인지 맞혀보세요?”
“셋째가 어디로 이사했어?”
“한 달 전까지 어머니가 셋째 동생 집에서 살았잖유. 지금은 둘째네 집에 계시고, 자 또 한 바퀴 돕시다.”
아파트를 여러 번 돌면서 ‘동생 살던 곳을 또 물어보면 기억이 돌아올까’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동생을 물을 때마다 ‘셋째가 어디로 이사 갔느냐며’ 같은 말만 반복했다.
한번은 어머니 혼자 집을 나선 적이 있다. 어머니가 버스 두 정거장까지 걸어서 동네 과일 집 앞에 앉아 있었다. 과일가게 주인한테 연락을 받고 집으로 모셔온 적이 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어머니한테 물었다.
“어머니 혼자 바람 쐬러 과일가게까지 갔어요? 집을 못 찾아서 누가 데려다줬다면서요?”
“유리 가게가.”
“유리 가게가 아니라, 과일가게 주인이잖아요.”
“나갈 때는 나갔는디 집이 생각이 안 나서 앉아 있었어.”
“바람 쐬고 싶으면 혼자 나가지 말고 엄니 자가용 또 타요!”
엄니를 어린아이 달래듯, 휠체어를 자가용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요즘 들어서 같은 말을 또 묻고,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신다. 휠체어를 타고 아파트를 여러 번 돌면서 동생이 살다간 집을 물어도 ‘셋째 어디로 이사 갔어’라고 같은 말을 반복했으므로. 휠체어를 세우고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다가 잠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봤다. 하늘은 푸르고 나뭇잎들은 울긋불긋 아름다운데, 어머니 얼굴엔 검버섯이 피고 잔주름이 자글자글할까, 잠시 생각에 젖어있을 때 어머니 주머니 속에 있는 노래방 기기에서, 배호의〈누가 울어〉가 흘러나왔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같은 이슬비/ 누가 울어 이 한밤/ 잊었던 추억인가/ 멀리 가버린 내 사랑은 돌아올 길 없는데/ 피가 맺히게 그 누가 울어 울어 ∼./’
수필과비평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