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빗물」
윤기정
초등학생 시절 통지표는 ‘…수수우…’거나 ‘…수수미…’였다. 음악 아니 노래 때문이었다. 음악 이론 시험은 잘 풀었는데 항상 노래 점수가 문제였다. ‘우, 미’는 다른 성적에 따른 동정 점수였을 것이다. 교사가 되어서 나처럼 노래 능력만 떨어지는 학생에게 곧이곧대로 ‘양’이나 ‘가’를 주지 못한 걸 보면 틀림없다.
아버지는 라디오를 즐겨 들었지만, 노래를 부르던 모습은 기억에 없다. 어머니는 가끔 흥얼거리는 것으로 노래를 대신했다. 가장 오랜 기억에 남은 노래는 「방랑시인 김삿갓」이다. 제목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학교 들어가기 전에 외할머니에게 화투 배우면서 노래도 배웠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꽃 중의 꽃」이라는 노래가 나오면 신이 났고 따라 부른 것도 같다. 학교에서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를 집에서 부르면 ‘개 끌어가는 소리’한다는 핀잔을 들었다. 가르치거나 격려하는 사람은 없고 핀잔만 들으니 노래 부를 일이 없어졌다. 노래와 가까운 집안 분위기는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음악 시간에 다 같이 노래 부를 때면 튀는 소리를 감추려고 목소리를 삼켰다. 가창시험 때 앞머리만 부르면 ‘됐다’며 선생님이 중단시켜서 끝까지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모든 동화책은 나를 붙들고 들어갔지만 그런 노래는 하나도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초등학교 시절 노래도 괜찮다는 음악 선생님 말씀에 「고향의 봄」을 열심히 연습하여 86점을 받았다. 초등학교 평가라면 ‘우’에 해당한다. 노래에 조금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고등학교는 당시 서울에서 유일한 남녀 공학에 진학했다. 기타 치면서 팝송 부르는 친구들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대단했다. 노래 실력이 나와 비슷한 녀석 몇이 한 반이 되었다. 비슷한 우리들은 퇴행적 결의를 했다. 뽕짝에서 활로를 찾기로 했다. 남진, 나훈아를 입에 올리기만 해도 조금은 내려 보던 때였다. 세월이 지나고 대중음악은 다양해졌다. 여러 가수가 많은 노래를 불렀다. 우리 음치들도 발라드, 포크송으로 조금 영역을 넓혔다.
채은옥의 「빗물」이 듣기에 좋았다. 뽕짝과는 결이 달랐다. 입술 달싹이며 따라 부르는 몇 안 되는 노래 중의 하나다. 시 같은 가사와 허스키한 가수의 음색이 새로웠다. 반주에 섞인 피아노 소리 그리고 노래 뒷부분의 허밍은 빗방울 듣는 소리와 비 오는 정경을 연상케 하는 것이 특히 좋았다. ‘빗물’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들은 것은 교사 발령을 받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때는 극장식 식당 아니면 극장식 나이트로 부르던 곳이 있었다. 넓은 식당 중앙에 무대가 있고 악단과 가수의 연주와 노래를 들으며 식사와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종로의 ‘월드컵’이 유명했고 그곳에서는 이주일 코미디도 볼 수 있었다.
강남에 비슷한 유형의 업소가 많았는데 식사보다는 술 마시는 자리였고 파격적인 눈요깃거리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1차로 선술집에서 예열을 하고 큰맘 먹고 2차로 가는 곳이었다. 안줏값 아끼려고 누런 봉지에 귤이나 땅콩을 담아 감춰서 들어갔다. 안주는 한 번만 시키고 안주 접시 바닥이 보일 때마다 가지고 간 귤이나 땅콩으로 조금씩 채웠다. 그날 갔던 업소에는 홀 이곳저곳에 서너 개의 유리 부스가 있었다. 부스는 2층에서 출입할 수 있게 되어서 높게 매달린 것처럼 보였다. 앳된 여인들이 부스마다 한 명씩 들어가더니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었다.
몇 번 음악이 바뀌더니 검은색 중절모를 쓰고 외투를 걸친 여인들로 교대했다. 음악이 나오자 걸쳤던 외투를 스르르 발밑으로 흘려 내린다. 검은색 짧은 소매, 미니스커트에 빨간색 구두가 환상처럼 나타난다. 이내 채은옥의 촉촉한 목소리가 홀을 채운다. 「빗물」이다. 굽이 높은 구두는 신은 게 아니라 올라선 것처럼 보였다. 붉은 조명으로 바뀌더니 부스 천장에서 몇 줄기 물이 쏟아진다. 여인들의 중절모 위로 내리고 부스 안벽으로 튄다. 재킷과 스커트에 맺힌 물방울이 구슬처럼 반짝인다. 재킷은 벗으려고 입었던 모양이다. 여인들은 하나같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린다는 것이 부스마다 순례를 하고 말았다. ‘어디에선가 나를 부르며’ 쯤에서 스커트가 내려갔다. 서양화 속의 이브가 부스마다 탄생했다. 모자 쓰고 구두 신은 이브였다.
오늘도 비가 내리면 「빗물」을 흥얼거린다. 그 비슷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빗속에서 옷깃을 세워주고 우산을 씌워주며 마주한 남녀의 실루엣을 떠올린다. 보석 송까지는 아니어도 고운 실루엣 하나를 잃었다. 붉은 조명과 물줄기에 젖던 이브들과 가느다란 발목 아래 달렸던 굽 높은 빨간 구두가 먼저 눈앞에 아른거린다. 어쩌랴 그도 내 젊은 날의 초상인 것을. ‘~어디에선가 나를 부르며,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 ~ 쓸쓸하게 내리는 빗물~ 빗물~. 조용히 비가 내리네. 추억을 말해주듯이~~~’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것을.
<한국산문> 202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