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노문정(본명:노 정 애)
조교 근무 3개월이 지난 늦은 봄날, 같은 과 교수님이 아직 결혼할 마음이 없다는 내 말에 은근슬쩍 묻는다. “지난 가을에 노선생 입원 시킨 사람과는 헤어졌나봐. 왜 결혼 할 생각을 안 해요?” 잠시 어리둥절했다. 나도 모르는 그 투명인간은 누구지?
고등학교 시절부터 일년에 한 두번씩 특별한 이유 없이 배가 아팠었다. 응급실을 찾을 때마다 내과 의사의 진단은 장이 나쁘다며 한 움큼의 약을 처방해 줬었다. 1주일 정도 복통과 구토로 시달리고 나면 꾀병처럼 멀쩡해져 시간이 해결해주는 병쯤으로 여기기도 했다. 열심히 찐 살들이 1주일이면 다 반납되어 가끔은 홀가분하기까지 했었다.
그날 아침도 연례행사처럼 갑자기 배가 아파왔었다.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으니 녹음기 돌리듯 같은 말만 하던 의사가 산부인과 진찰을 권했었다. 생살 도려내는 듯한 아픈 배를 움켜잡고 계속된 구역질에 휠체어를 탄채 진찰실로 가는데 산모나 보호자들이 측은한 눈길로 “입덧이 그리 심해서 어쪄냐”며 혀를 끌끌 찼었다. 어머니는 “그런 것 아니에요”라며 고함치듯 말해 제 정신이 아닌 나까지 깜짝 놀라게 했었다.
사람들을 모두 내 보낸 산부인과의 담당의사가 심각하게 묻는다. “비밀을 지켜 줄테니 혹시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으면 말하세요.” 너무 진지하게 물어 그런 일이 없다고 하자 검사를 시작했었다. 병명은 난소 종양으로 다행히 양성인 것 같다며 바로 제거수술에 들어갔었다.
멀쩡히 잘 자라던 혹이 장기를 감아 뒤엉키면 복통과 구토를 유발한다. 보통은 며칠이 지나면 꼬인 것이 저절로 풀어져서 제자리를 찾는데 이런 병의 대부분은 기혼 여성에게 발병하지만 5%정도는 유아나 성장기 청소년에게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아랫배에 생긴 한 뼘 가량의 수술자국을 영광의 상처처럼 남겨둔채 난소 하나와 테니스공만한 혹 덩어리를 함께 잘라냈다. 의사는 난소가 하나뿐이라 정상인보다 폐경이 빠르다며 결혼과 출산을 서두르라는 조언과 종양성 체질일지도 모르니 정기검진을 반드시 받으라고 강권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6년간의 고민을 한방에 해결한 것 같아 속 시원했으며 지금껏 헛배 불린 약만 처방한 의사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라도 하고픈 배짱까지 생겼었다.
제왕절개수술을 한 산모와 같은 병실에 누워서 지난 몇 년간의 고통이 끝난 것을 자축하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결석에 놀란 같은 과 동기들이 떼 지어 병문안을 왔었다. 난소 하나 없는 병신이라고 선전할 일은 아닌 것 같아 간단한 수술을 받았다며 대충 얼버무렸었는데 3주후 진단서를 들고 교수님들께 결석을 해명하러 다닐때 짜기라도 한 것처럼 눈초리가 이상했다. “내가 봐서 뭘 알겠어.” “그냥 거기 두고가지” “마음고생이 심했겠어!”등. 얼마 전까지 착실한 여학생으로 대접하던 친근한 모습들은 단체로 실종상태였다.
그랬었구나. 왜 내게 한겨울 칼바람 같은 눈빛을 보냈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남학생들 사이에서 산부인과에 떡하니 누워있더라. 아마도 어떤 놈과 사귀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혼자 잘난 척하더니 꼴좋다. 얌전한 고양이라는 등의 소문이 양은 냄비 달아오르듯 뜨겁게 달아올랐었단다. 남자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데다 선머슴 같은 내게 칼날을 들이대는 그들의 입이 참 무서웠다. 4년이나 함께 공부했는데 이렇게 사람을 모르나 하는 서운함과 소문이 진실이라면 그들이 더 배신감을 느낀 것은 아닐까하여 머리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 졌다. 얌전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적이 많았지만 항상 희망사항일 뿐이었는데 이럴 때 듣는 얌전한 고양이는 참 서글펐다.
‘사람의 소문은 길어야 한 달’이라고 했지만 나만 모른 투명인간의 소문은 반년을 훌쩍 넘겨 아마도 제일 마지막에 내 귀에 들어왔던 것 같다. 모두 다 졸업해 버렸으니 진상을 규명할 시기도 놓쳐 버렸다. 유명인사라면 기자회견이라도 할 테지만 물론 믿어 준다는 보장은 없다. 아랫배에 난 한뼘의 흉터는 N.호손의 <<주홍글씨>>속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의 가슴에 붙은 붉은 A처럼 되어버렸다. 80년대 부산의 한 공대에서 여학생이 산부인과 병동에 누웠으니 그들에게는 따끈따끈한 뉴스였을 것이다. 얼마나 씹혔던지 강산이 두 번 변한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귀부터 가렵다.
요즘은 소문난 맛집부터 명소, 병원까지 소문짜가 붙으면 귀부터 솔깃해져 찾아다니는 마니아들이 늘었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전국 대다수의 사람이 알게 되기까지 소문이든 루머든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다. 기업에서는 ‘입소문’의 특성을 이용한 마케팅(kuchi community marketing)이 비용을 최소화하고 홍보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이라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정치판에서는 소문에 대한 진상규명을 한다면 얼굴 알리기식 청문회가 열린다. 기자회견을 하는 정치인이나 연애인의 말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며 좀처럼 믿으려하지 않는다. 이런 사건을 겪은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서울 사는 남자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동기 몇은 “그 사람인가봐”했을 것이다. 결혼 전 남편에게 난소가 하나뿐이라 아이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내막과 내 아킬레스건이 된 소문의 비밀(?)도 털어놓았다. 그가 한참을 웃더니 아이는 없어도 된다면서 그 소문 덕분에 자기한테 까지 차례가 돌아왔다며 ‘천리 간 나쁜 소문이 아니라 안방 못 넘긴 좋은 소문 즉 호사불문출 악사행천리(好事不門出 惡事行千里)’라고 말해 그제야 가슴의 A글자를 힘껏 뜯어낸 것 같았다.
속 좁은 난 지금까지도 대학동기들과는 잘 연락하지 않고 지낸다. 멀리 있다는 핑계를 대지만 사람 잘못 봤다는 괘씸함이 먼저인 것 같다. 아랫배에 생긴 흉터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깊게 남았나 보다. 가끔은 말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난 아이 둘이나 낳고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