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내성이 생기지 않았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가슴은 넝마가 되어갔다. 사별만 겪어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하늘 아래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하면 세월이 흘러도 잊기는커녕 비 맞은 이끼처럼 슬픔이 일어났다. 그리움이 바래기도 전에 맞이해야 했던 사무친 이별들.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이별의 슬픔은 고니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니, 나보다 한술 더 떴다. 고니를 만난 것은 가을 문학기행에서였다. 나는 예술대학원에서 소설을 전공하고 있는 만학도이다. 학교에서 안성으로 문학기행을 갔다. 정진규 시인 생가 방문을 마치고 안성캠퍼스에 들렀을 때였다. 교수님께서 교정을 둘러보는 우리에게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자연을 만나면 빠지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단체여행을 가면 꼴찌로 따라다니기 일쑤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일행을 따라잡았을 때 다들 호숫가에서 고니 한 마리를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교수님의 설명은 이미 끝난 뒤라 사연은 알 수 없었지만, 고니의 처절한 울음소리에 바람도 숨을 죽였다.
내 삶이 평탄하지 않았던 탓이었으리라. 농사는 물론 자식들까지 팽개치고 술독에 빠져 살았던 아버지. 원망과 미움이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마지막 길 앞에서야 아버지 마음을 알고 있었다고 눈물로 고백하며 용서를 빌었다. 내 손을 쥐여 주던 장마철 흙담 같던 손, 그 힘없던 아버지의 손을 잊을 수가 없다.
평생 자식들 말을 눈으로 듣고, 연필이 되어버린 손으로 허공에 문장을 쓰던 청각장애가 있던 엄마. 불효에 몸부림치며 통곡했지만, 엄마는 내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몽당연필이 된 손을 들어 잘살라는 마지막 문장도 쓰지 못하고 가셨다.
임종도 못 하고 졸지에 보낸 남편. 한동안 번뇌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기둥이 되어준 자식들을 붙잡고 일어섰다.
어린 자식들을 두고 갈 수 없다는 듯 눈을 감지 못하고 떠나던 쉰네 살의 동생. 내 가슴에 피멍을 남기고 떠난 사람들이다.
고니는 아주 섧게 울었다. 호수를 빙 둘러 쳐놓은 울타리 옆의 길 쪽만 보면서. 애가 끊어질 듯 우는 고니를 보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 저렇게 울까요?”
“교수님께서 그러시는데 원래 두 마리가 있었대요. 어느 날 누가 잡아갔는지 한 마리가 감쪽같이 없어지고 나서 저렇게 운대요.”
내 물음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고니의 사진을 찍고 있는 사이에 일행은 출발했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안타까워 울타리에 바싹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하자 부리로 쪼려고 덤볐다. 자기 짝을 데려간 인간들은 다 싫은 모양이었다. 동영상까지 찍고 나서 자리를 떴다.
고니의 울음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교수님께 점심시간에 고니의 사연을 여쭈어봤다. 학교에 고니 한 쌍이 선물로 들어왔다고 한다. 고니들은 2년 동안 호수에서 사이좋게 살았는데, 어느 날 한 마리가 사라졌다. 그때부터 운다고 했다. 5년 동안이나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운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아마 한 마리를 훔쳐 간 사람이 고니가 보면서 우는 길 쪽으로 달아난 듯했다.
교수님은 방학에도 고니의 안부가 궁금해 출근할 때도 있고, 외국에 나가서도 고니 안부를 전화로 묻는다고 한다. 그러고도 남을 분이다. 교수님은 할 수만 있다면 고니에게도 시를 쓰게 했을 것이다. 상처 입은 영혼들이 시로 치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분이니까. 고니의 새로운 짝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면 진작 구해줬으리라.
이별을 겪을 때마다 심한 불면에 시달렸다.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마나 많이 울었던가. 특히 남편을 보내고는 삶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속세를 떠날 요량으로 알아보기도 했다. 그때 알았다. 모든 인연을 끊고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도 나이 제한이 있다는 것을. 결국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을 사랑하는 길을 택했다. 삶에 치이고 남편과 아이들에 치여 한 번도 가슴 속 아우성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들을수록 아우성은 고통의 신음으로 변했고 울부짖음으로 변했다. 나를 찾아 길을 떠났다.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오직 참고 참으면서 살아온 긴 세월은 두꺼운 가면이 되어 얼굴을 덮고 있다.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고니를 찍은 동영상을 보다가 귀를 의심했다. 고니가 울음을 그친 중간에 많이 울고 났을 때처럼 서러움에 겨워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환청인 줄 알았다. 소리에만 집중하고 여러 번 반복해서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는 내 목소리 같기도 해서 속울음이 녹음됐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식들에게 들어보라고 단체 카톡에 올렸는데 못 들은 듯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들어봐도 분명히 들리니 불가사의한 일이다.
동물도 사람과 똑같이 감정을 느낀다는 걸 딸네 강아지를 보고 알았다. 가끔 딸이 바쁘거나 여행을 갈 때면 나한테 강아지를 맡긴다. 강아지와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아이를 키우는 것 같다. 그만큼 사람 말을 잘 알아듣고 감정을 느낀다는 뜻이다. 고니가 생이별했는지 사별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얼마나 큰 이별의 고통을 느끼는지 울음소리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고니를 만나고 온 지도 벌써 넉 달이 지났다. 지금쯤 슬픔의 무게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고니의 안부가 궁금하다.
<문학나무> 2020년 여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