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문학의 허와 실
이기식
요즈음은 디지털이나 사이버라는 용어가 접두어로 자주 쓰인다. 컴퓨터 때문에 편리해졌든지, 아니면 이제부터 더욱 발전하리라는 기대감으로 쓰일 때도 있다. 최근에는, 기계화라든가 자동화하고는 쉽게 연관시키기 힘들었던 문학 분야에까지 이 용어를 사용한다. 컴퓨터 때문에 문학의 본질이 바뀐다는 소린지, 아니면 문학작품도 공장에서처럼 자동으로 생산하겠다는 의민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반갑다. 컴퓨터 경험만 있으면 글도 잘 쓸 수 있다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의술도 발달하고 영양도 좋아서인지 확실히 고령화 시대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주체 못 하는 우리 또래의 영감들이 많다. 오랫동안 월급쟁이로 길든 몸이라 새로 사업을 할 엄두도 못 낸다. 친구의 권유에 따라 수필강의실 문을 두드렸다. 왜 그리 글 잘 쓰는 사람들은 많은지... 요즈음 약들도 좋아졌는데, 혹시 글이 술술 잘 써지는 영양제나 비타민이 있지 않을까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던 차에 '디지털 문학'이라는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컴퓨터와 통신 관련 일에 종사한 지가 50여 년이 넘다 보니, 이 분야에서는 내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옹고집이 생겼다. 나에게도 드디어 '퀀텀 점프'의 기회가 왔다.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디지털 문학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관련 잡지의 기사들을 부지런히 읽어보았다. 인공지능AI 사회, 스마트 사회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문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견하고 있다. 글쓰기도 스마트폰으로 쉽고 빠르게 글쓰기가 가능하고, 로봇이 창작하는 시대가 오기 때문에 디지털 변신은 피치 못할 물결이라고 한다. 반면, 디지털시대의 문학은 Z·알파 세대(1990~2020 출생)가 좋아하는 웹툰, 웹 소설과 웹 드라마가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문학이 점차로 짧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소위 말하는 스낵 컬처snack culture로 변질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물론 대세는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여러 가지 용어들, 예를 들어, '메타버스·가상현실·증강현실'과 같은 용어는 사이버 공간에, '빅 데이터·머신 러닝'은 인공지능에 대한 시각 혹은 관점이 다른 표현이다. 장래의 문학에 영향을 줄 가능성 있는 디지털 기술인 것은 틀림없으나, 이들 각각이 마치 새로운 문학적 장르를 일으킬 것처럼 과장해서 말하는 것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컴퓨터 용어가 난무亂舞하고 있다. 작가와 독자의 입장이 정리되어있지 않고, 전체적으로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내용 위주들이 많았다. 어찌 보면 아직 과도기이기 때문에 세세한 방법론을 논의하기에는 아직 이를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서 글을 쉽게 쓸 수 있어서, 글쓰기를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혹시 글을 쓸 때 이모티콘(ㅠㅠ ^ㅇ^)을 사용한다는 뜻인가 하는 단순한 생각도 보았다. SNS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는 기호들이다. 그러나 아직 표준 워드의 문자표(수식·기호 모음)에 등록되지 않고 있는 상형문자일 뿐이다. 신속성에 도움을 주는 또 한 가지 기능, '문장 자동완성' 기능도 있다. 바쁠 때 사용하다 보면, 내 생각은 어느새, 그 기능이 유도하는 대로 따라가고 있다. 내 발상이나 생각이 기계의 지배하에 놓인 착각이 든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기능들이 디지털 문학의 선두 주자 역할을 하리라고 주장하나, 오히려 문학의 하향평준화가 되는 지름길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서핑만 잘하면 세계의 모든 데이터베이스를 순식간에 뒤져 원하는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외국어도 번역까지 해주니, 신속성이나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컴퓨터 사용의 초창기에 경구처럼 회자하던 용어가 있다. GIGOGarbage In, Garbage Out, 즉,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뜻이다. 노출된 텍스트를 마구잡이로 조합하다 보면 글의 내용이 질이나 깊이가 제각기다. 디지털 시대에서 정보의 확산이 빠르다는 것이 오히려 글쓰기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비중이나 신뢰도가 얕은 텍스트들이 홍수처럼 범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홍수 때, 오히려 마실 물을 걱정하여야 한다. 상호보완이 아닌, 상호파괴 효과를 가져온다.
세계적인 문학계에서 요즈음 거론되는, 컴퓨터와 관련된 더 중요한 주제가 있다. 이 시대의 문학 혹은 글쓰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하이퍼텍스트hypertext 다. '파생 혹은 초월 텍스트'라고도 한다. 독자는 글 쓴 사람이 제공하는 링크link 를 따라 선택적으로 독서를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작품을 각기 다르게 읽게 된다. 기존의 책처럼 작가가 정해놓은 순서를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작가는 독자를 위한 충분한 하이퍼텍스트를 준비해야 한다. 컴퓨터 도구의 도움이 있어야만 본격적인 작품을 쓸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 개념의 시발점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1941년에 쓴 쓴 『갈림길의 정원』이 시초라고 한다. 영국,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도 지속적해서 작품이 발표되고 있고, 국내에서도 많은 작품이 선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정착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우리에게는 하이퍼텍스트 방법에 따른 글 작성에 관한 집중적인 연구가 바람직할지 모른다.
현대에 들어와서 문학 이론이 '탈 구축', 포스트 구조주의'로 바뀌면서 작가와 독자의 새로운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디지털 사고법에 적합한 자유스러운 '읽기'의 가능성을 제공하려고 하기 때문에, 링크를 이용한 자기의 주관적인 하이퍼텍스트를 만드는 소프트웨어의 연구가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인공지능에 의한 '인간의 감성과 창조성'을 구현하여 스스로 글의 발상에서부터 문장구성, 문장작성까지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도구가 있으면 좋은 하이퍼텍스트 작품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지금 일각에서 말하고 있는 디지털 문학에 주장은 글쓰기나 문학에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어떠한 확신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된다. 중세에 구리로 금을 만들겠다는 황당한 연금술이 한때 이목을 끌었으나 결국은 꿈으로 끝났다. 그러나 폭발적인 연금술의 연구는 화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는 부산물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디지털, 혹은 컴퓨터는 글쓰기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문학성이나 창조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디지털과 문학의 공통인수에 대하여 여러모로 의견을 교환하여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가져올 기회는 있다고 본다.
은근히 바랬던 글쓰기에 대한 좋은 방법론은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붓에서 펜으로, 펜에서 만년필 그리고 타자기로 바뀌어도 작가의 위치는 항상 그대로이다. 도구만 바뀔 뿐이다. 디지털시대는 문방사우가, 금속냄새가 짙은 컴퓨터화면, 키보드, 마우스와 프린터로 바뀌었을 뿐이다. 묵향 속에서 글을 쓰는 수염 난 작가의 모습은 이제 로망이 되었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 글쓰기의 왕도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2023/02/14]
『수필과 비평 2023.1/vol.255』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