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위한 아트
이기식
매일 자주 들여다보는 채팅방에는 노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제일 많다. 노인끼리 채팅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건강, 경제, 예절에 관한 이야기에다가 손자, 손녀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대부분, 기분은 그렇지 않은데 벌써 이런 나이가 되었나 하는 허탈감이 스며들어있다. 도전적인 내용도 가끔 보인다. 처음으로 청춘이 왔을 때 우리 모두 울렁거리지 않았던가. 노년도 인생의 통과점에 불과하다. 도전하여야 할 미지의 세계가 아니냐고.
상당한 기간을 백수로 지내면서도 아직도 평일에 집 안에 있으면 좀 불안하다. 토 일요일은 그런대로 마음이 편하다. 특히 월요일 아침이면 심기가 더 불편하다. 50여 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의 흔적이다. 요즈음 물가도 하루가 다르게 오르니 더욱 그렇다. 대응할 방법이 없다. 상실감, 무력감이 커진다.
소외감도 그렇다. 우리보다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이 좀 불편하다. 예전 같으면, 노인으로서의 관록도 인정되었고, 나이 든 사람들의 경험이 젊은이에게 도움이 되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아날로그 문화인 데 반하여, MZ 및 알파(1980~2020) 세대는 디지털 문화다. 태블릿·무선 인터넷·스마트 폰·인공지능·로봇 등, 디지털 기술로 중무장하고 있는 디지털 원주민이다. 노인의 지식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소외된 노인들은 그저 섭섭하기만 하다.
고령화사회가 되어 노인으로 사는 시간이 의외로 길어졌다. 주어진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가 문제다. 준비가 안된 노년기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이 '늙음의 시간'이 있기에 '자기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중한 시간도 생긴다. 허심탄회하고 솔직하게 자기를 마주 보면서, 미력하나마 주위에 무언가 남기고 갈만한 것을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노년기도 청년기처럼, 도전하여야 할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자 새로운 미지의 세계다. 우리의 설 자리를 준비해야 한다. 이때야말로 늙어가기 위한 기술, 즉 아트가 절실히 필요할 때다. 아트는 원래 의학용어로, 의술醫術을 의미했다고 하나, '기술이나 솜씨'를 의미할 때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싸우는 기술(art of war), 화술(art of speech) 등이 좋은 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므로 나름의 아트도 준비할 필요도 있다.
나이가 들면 건망증이 생겨 좀 당혹스럽다. 기억력, 계산력 같은 학습 때문에 얻어지는 지능은 저하된다. 반면, 경험이나 지식의 축적으로 생기는 지능은 머리를 쓸수록 오히려 늘어난다. 판단력, 발상력, 혹은 통솔력과 같은 고도의 지력을 말한다. 결정성 지능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지능으로 후배들이 필요로 할 때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존경받을 만한 아트 중의 하나이다.
휴일보다 평일이 더 불안하고 두려운 이유도 알고 보면 간단하다. 사회의 현장에서 늘 어려운 일을 결정하여야만 하는 상황에 늘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제 결정할 일들은 대부분이 규모도 작고 가정적인 일이다. 의사 결정권을 과감하게 집사람에게 넘기면 된다. 식사 메뉴가 한층 좋아지는 아이러니도 경험할 좋은 기회다. 윈-윈 전략이고 노인의 지혜다.
다행인지 요즈음은 책을 천천히 읽으니까 예전보다 행간이 더 잘 읽힌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읽고 싶은 책이 많아지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나름대로 자기 인생의 경험을 성실히 기록하여, 존재감이나 성취감을 맛보는 것도 좋은 아트의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가 고문헌을 뒤지는 것처럼 우리 후손들도 아날로그 경험을 알고 싶을 때가 있다고 본다. 미래의 누군가와 소통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면 글을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부한 이야기 중의 하나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좋은 전시회나 음악회도 자주 가고, 친한 친구들과 야구나 축구 같은 경기를 함께 가는 것이다. 젊은이들과 함께 승리의 순간에 소리치고 눈물도 흘려보자. 말없이도 소통하는 방법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도 젊은이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자주 보면 건강에 좋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인은, 젊은 시절에는 직접 스포츠에 참여하고, 나이 든 시민들은 경기장에 부지런히 가는 스포츠 문화였다고 한다.
몇 번 들어도 좋은 이야기가 있다. 20세기, 그러니까 지난 세기 최고의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살스의 이야기다. 95세가 되어서도 하루에 6시간씩 첼로 연습을 하는 그를 보고 이웃 아주머니가 물었다.
"연세도 있으신데, 아직도 그렇게 연습을 열심히 하십니까?"
"요새,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것 같아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하는 젊은 노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2023/02/16]
『한국산문 2023.2/vol.202』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