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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브런치 책과인생 22.07호    
글쓴이 : 박경임    23-02-27 15:05    조회 : 2,570

빛나는 브런치

 

                                                                                                       박경임

 

 가끔 잠들기 어려운 밤이 있다.

육체를 갉아 먹으며 쌓이는 시간은 영혼을 말갛게 희석시켰다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데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티브이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대사하나가 마음에 꽂혀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평소 열 시 반이면 잠드는 습성 탓에 늦은 시간의 프로그램은 보기가 힘든데 다음 회가 마지막 회라는 자막을 보니 결과가 궁금해졌다.

 네가 열 번 아파할 때 내가 다섯 번쯤이라도 아파줄 수 있으면 좋겠어.”

젊은 나이에 암으로 진통을 겪는 친구를 바라보며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젖어 있었다.

정말일까? 그런 마음을 가진 친구가 있을까.? 부모도 아니고 아무리 중학교 때부터 만나 서로를 형제처럼 여기며 살던 친구라 하더라도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생각은 나로서는 의외여서 계속 보게 되었다.

 나에게도 드라마 속 여자와 같은 나이인 마흔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었다.

그녀를 위로한답시고 몇 번 병원을 가보기는 했지만, 마지막이 다가올 무렵 근육은 다 사라지고 피부가 뼈에 붙어 까만 눈동자만 살아있던 그녀의 모습에서 무서움마저 느끼며 병원을 나선 생각이 난다. 나는 친구의 곁에서 단 하루도 같이 있어 주지 못했다. 그녀가 죽고,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 친구에게 신문 한 면도 읽어주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후회스러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오래 앓지는 않았지만 나 좀 죽여달라며 폐암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던 아버지가 6월의 햇빛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을 때, 그 고요한 얼굴이 오히려 평온해 보여서였다.

 드라마 속의 아픈 그녀는 혼자 죽음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혼자 납골당을 계약하고, 영정사진을 찍고, 자신의 저축액의 남은 돈으로 부모님이 운영하는 낡은 가게를 수리해 주었다. 병원에 있을 때는 장례식장을 가보고 자신의 장례식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 자신의 마무리를 준비하면서 마지막 부고 리스트를 작성해서 친구에게 건네준다

친구는 이 리스트에 있는 사람을 고른 기준이 뭐냐.?”고 물었고 그녀는 전화 오면 밥 한번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같이 밥을 먹고 싶은 사람.?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가족을 식구(食口)라고도 한다. 같이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 그만큼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나치며 어쩔 수 없이 같이 먹게 되는 밥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밥을 같이 먹으면, 그 시간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무엇보다 크다.

 부고 리스트를 받은 친구는 그녀가 살아있을 때 그 사람들과 밥 한 끼를 같이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부고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을 브런치에 초대했다. 모두 아픈 그녀의 근황을 알고 달려와 주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애인이 끄는 대로 식당에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가 그녀는 보고 싶던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한 사람씩 애정이 담긴 포옹을 나누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가 얼마 남지 않은 생의 한순간에 보고 싶던 사람들과 나눈 브런치는 빛나는 시간이었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마음에 습기를 담았을 것이다.

 잠든 순간에 친구가 잘못될까 봐 핸드폰을 쥐고 전등을 끄지 못하는 친구의 보살핌을 받으며, 그녀는 한 계절을 더 살다가 갔다. 견디기 힘든 진통이 그녀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행복하고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살면서 친구 한 사람만 건져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도 있다. 얼마 전 타계한 석학인 이어령 교수도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마음 털어놓을 친구가 없어서 실패한 인생이며 외로웠다고 말했다. 그렇듯 친구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전편을 보지 못해서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죽음을 앞둔 그녀에게 혼인신고를 종용하는 애인이 곁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절반쯤의 고통을 나누고 싶다는 친구가 있고. 표현은 서툴지만 절대 딸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부모가 있어서 그녀가 말한 대로 단지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일 뿐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좋은 사람들을 두고 가야 하는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녀를 보내고 일상에서 그녀를 그리워하는 남은 사람들이 안쓰러웠다. 일 년 후에, 죽은 친구가 미리 녹화해놓은 영상편지를 받아 읽으며 오열하는 친구를 보며, 텔레비전을 끄고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나는 어떤 식으로 나의 마지막을 정리해야 할까그녀처럼 아프게 된다면, 내 곁을 지켜 줄 사람은 누구일까.? 내 가족들은 나를 얼마나 오래 그리워할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엮였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나도 그 브런치를 따라 하고 싶었다. 언젠가 뉴스에서 생전 장례식을 치른 사람의 기사를 본 일이 있다. 죽어서 장례식장에 와서 영정사진 한번 올려다보고 돌아가는 그런 장례식보다 살아있을 때, 보고 싶은 사람 모아놓고 한번 웃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근사한 드레스도 입고 싶다. 그들에게 내가 얼마나 열심히 아름답게 살았는지 자랑도 한번 해보고 드라마 속 그녀처럼 한 사람씩 포옹도 해보고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 반드시 다가올 죽음에 대해 좀 더 아름다운 준비를 알게 해 준 드라마였다밥 한번 먹자고 초대할 사람들 리스트를 떠올려 보았다. 앞으로 사는 동안 더욱 많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같이 밥 먹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도 기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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