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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나는 세상    
글쓴이 : 김창수_방랑수필    23-05-23 13:01    조회 : 2,030
눈물나는 세상


평생 말로써 말을 만들고 가르쳤던 대학 은사가 어느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은 곧 생명이고 진리이며, 교수의 생활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퇴직후에도 노인 대학 강의 등 왕성한 활동으로 청춘을 구가하던 파우스트 교수님.

코로나가 확산 되기 전에 수화기 너머로 우렁차게 들렸던 그 목소리.

사는 곳이 내 사무실과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2달 전에 들르셨다. 손짓, 몸짓으로 표현하여 처음에는 매우 놀랐다.

며칠 전  "시간 되시면 차 한잔하러 오십시요" 문자를  보냈다. 건강이 호전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그동안 좀 호전되기를 기대했는데 별 차도가 없으신 듯하다.

갑자기 큰 충격 등으로 오는 실어증과는 다른 아주 가는 쇠소리같은 힘겨운 목소리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목 입구에서 말문을 막아버린 듯하다.

쇠창살 감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죄수처럼 교수는 "말을 많이 해서 죽을 운명의 당신을 하느님이 살리신 거다. 앞으로 말은 못해서 강의는 못하지만, 뒤로 글을 쓴다"라며 현실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이라며 되레 감사하다고 했다.

말문은 지금 막혀있지만 감옥에도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가늘지만 분명 한 줄기, 말 줄기는 보였다.

은사는 손짓, 몸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손바닥에 보이지 않은 글자를 순식간에 적었다. 순간적으로 메모지와 볼펜을 꺼낼 겨를이 없었다.

말문이 닫힌 후 최근 어느 문학에 등단했다. 등단 글이 실린 책 한권을 가져왔다.

차도 드시지 않고 식사도 하시지 않는다하여 고객용 기념품 수건을 드렸다.

학창 시절에는 제자와 스승은 하늘과 땅처럼 거리가 멀었지만, 제자도 직장을 마칠 무렵이 되니 스승이 먼저 노년을 같이 화이팅! 하며 격식을 허물어버렸다.

전국민의 3분의 2가 코로나 확진. 이제 코로나가 소멸하는 시기라며 마스크 의무 착용도 없어졌다.

은사는 코로나 백신 3차 접종후 말이 안나온다고 했다. 말도 안되는 얘기같지만, 다른데는 이상 없고 백신 후유증으로 본다.

코로나와 백신 후유증은 개인별로 천차만별이다.

은사는 나중에 문자를 보냈다. 노년에 뭐니 해도 건강이 첫째라 했다. 눈, 치아, 무릎 등 노화를 최대한 늦추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욕심은 줄이고 순리에 따르자는 것이다.

인생 육십에 접어든 나와 칠십 대의 은사는 이제 같이 늙어간다.

수명이 늘어나도 개인차는 있겠지만 육신의 노화는 그동안 닳고 닳아 육십부터 빠르게 쇠퇴하는 느낌이다.
 
아버지도 89세. 인명은 재천이라지만 그저 건강이 더 악화되지 않고 장수하시길 바랄뿐이다.

세월의 더께와 더불어 자신과 가까운 사람중에 제일 걱정되고 궁금한 것은 역시 건강이다.  

지난 주말에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대구 시내에 대규모 축제가 열렸다. 서성로 네거리에서 공평네거리까지 차없는 거리를 만들었다. 그 길 위에서 시민 자율로 거리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춤과 노래 경연 축제도 열렸다.

각 직능단체, 군악대, 외국인 풍물, 고산농악 등 오랜만에 보는 거리 축제 퍼레이드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코로나가 가져온 슬픔 뒤에는 평소  소소한 일상의 기쁨과 감사, 고마움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공해에 찌든 도회를 탈출하여 가끔  바다로 간다. '찰나의 바다'로 가지만 바다로 가는 시골길에는 개구리 소리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귀가 따갑도록 들은 개구리 소리를 도회에서는 들을 수 없다.
보리가 익어가고 보리깜부기도 떠오른다. 정겨운 새소리가 들린다.

이제 대구에서 기차 하나로 바다로 바로 갈 수 있는, 참으로 교통이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오월의 영덕 장사 바다는 짙은 녹음처럼 깊고 검푸르다.

시원한 짬뽕 국물맛이 일품인 장사 어느 중국집. 노부부와 나이든 딸이 정겹게 식사하고 있었다.

나와 한 테이블 건너 노부부 가족 손님 3명. 면소재지 한적한 어촌 중국집이다. 혼자서 일하는 중국집 주인도 노인이다. 벽걸이 tv에는 트롯트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 옆에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낡은 가족 사진이 붙어있다.

노인은 연신 가래가 섞인 듯한 둔탁한 기침으로 힘겹게 음식을 먹고 있다. 노인에게 음식맛을 돋구려는 듯 "맛있다"라며 표현을 하는 아내와 딸. "고맙습니다"라며 답하는 중국집 주인.

"아부지 더 드시지 않고... 우리가 빨리 먹어서 그만 자신 거예요..." 노인 등 뒤로 딸의 목소리가 눈물나도록 애틋하게 들려왔다.

잠시 쉬어가는 길 위에서 말하고, 듣고, 쓰고, 보고, 먹는 일상의 소소한 것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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