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K를 쫓아다니는 이유는 그가 수필을 무척 사랑하기 때문이다. 물론 수필에 대한 애정 하나만으로 그와 가깝게 지내는 건 아니다. 그 외에도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연결고리가 있기에 우리는 다섯 살 터울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너’라고 부르는 친구로 지낸다.
보통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의 대상은 시나 소설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부터 시와 소설을 좋아했고 시인과 소설가를 동경했다. 물론 여러 에세이가 삶의 궤도를 돌다 맥이 빠져버린 내게 위로와 즐거움을 주었지만, 시나 소설처럼 내면을 흔드는 어떤 풍경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리고 내가 읽은 대부분의 에세이는 소설가나 시인이 쓴 것이었다. 즉 그들의 본업이 아니었다.
어쩌다 수필로 등단을 했고 주변의 많은 수필가와 어울려 지내고 있지만, 그들 중 ‘수필’이 꿈이었다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는 수필을 쓰고 있고 어느 정도 수필을 향한 열정도 있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어느 정도’일 뿐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문학이 취미인 사람들 속에서 나의 글쓰기 역시 취미의 영역을 못 넘고 있었다. 그때 K를 만났다. 그는 내가 본 수필가들과 달랐다. 진심이었다. 그의 열정은 ‘어느 정도’를 뛰어넘고 있었다. 분명 온 힘을 다해 수필을 쓰는 사람들은 더 있을 거다. 아쉽게도 나는 그들과의 접점이 없어 그저 어렴풋이 존재감만 느낄 뿐이다. 내게는 K가 처음이었다. 그는 매일 읽고 쓴다.
친구 사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슬럼프에 빠져있던(슬럼프에서 벗어나 본 적이 있던가?) 내가 그에게 어떻게 영감을 잡는지 물어봤다. 그는 “고기를 열심히 먹으면 된다”라고 했다. K는 이런 식의 유머를 즐겼다. 유머인 것을 알았지만 자꾸만 나는 그것을 무언가의 은유로 해석하려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나는 K와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의 평론 수업을 듣고 있었고 웹상에 수업 후기를 올리는 일을 맡고 있었다. 수업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 강의실과 강의 후 회식 분위기를 스케치해서 올리는 일이었다. 2017년 여름 어느 날의 후기 내용 중 일부를 여기에 인용해보겠다.
‘남에게 참견 잘하고 캐묻기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시기심이 강하다’라고 베이컨이 말했습니다. 평소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슬로건을 표방하며 생활해온 A님은 K님의(본인이 꼭 K라는 이니셜로 불리기를 원하심) 필력을 질투하여 그 비결을 캐물었으니, K님은 ‘필력’이라는 단어에 몹시 쑥스러워하며, 일회용 종이컵을 덮는 플라스틱 뚜껑을 번쩍 들어 테이블 위에 탁 놓았습니다.
“여기 컵 뚜껑이 있습니다.”
그리고 K님은 피나는 노력으로 컵 뚜껑이 글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백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된 웅녀의 노력에 견줄 만한 것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K님의 영업비밀이라 밝히지 않겠습니다.
재미있게 쓰려고 다소 과장되게 묘사하며 그의 글쓰기 과정을 ‘영업비밀’이라 했지만, 내 기억으로 컵 뚜껑이 글이 되는 과정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집요함이었다. 그는 운전 중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차를 세우고 메모를 한다고 했다. 즉, 그의 공간과 시간은 온통 수필로 물들어 있었다. 그런 그의 시공간에 나의 왼발을 슬쩍 넣어보고 싶어졌다. 발바닥부터 야금야금 나도 물들어지고 싶었다.
이렇게 친구 K를 추켜세우는 듯한 글을 쓰게 된 것은(본인은 말도 안 되는 칭찬이라며 오글거린다 싫어하겠지) 이 시 때문이다. 이병률의 〈시를 어떨 때 쓰느냐 물으시면〉.
시는 어느 좋은 먼 데를 보려다/ 과거에 넋을 놓고/ 그러던 도중 그만 하늘빛에 눈이 찔리고 말아/ 둥그스름하게 부어오른 눈언저리를 터뜨려야/ 겨우 쏟아지는지도/ 쓰지 않으려 할 때도 시는 걷잡을 수 없이 방향을 잡지
쓰지 않으려 할 때도 걷잡을 수 없이 방향을 잡는 것. 그건 역설적으로 시인의 시간이 대부분 ‘오로지 시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수필을 떠올렸다. 수필가에겐 왜 이런 치열함이 없을까? 수필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떠나 수필가의 태도를 말하는 거다. 정확히는 수필을 쓰고 있는 나의 태도를.
그러다 K가 떠올랐다.
자, 다시 첫 문장으로 되돌아가겠다. 내가 수필가 K를 쫓아다니는 이유는 그가 수필을 무척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와의 대화에서는 수필 이야기가 빠진 적이 없다. 수필에 대해 심드렁해져 무기력과 게으름으로 허우적거릴 때면 그에게 전화를 건다. 그의 열정이 조금이라도 내게 흘러오기를 기대하면서. 휴대폰 전파를 타고 전달되는 그의 에너지로 흐물흐물 퍼져 있는 수필가로서의 자아를 바짝 세우기 위해. 그리하여 나도 ‘쓰지 않으려 할 때도 수필이 걷잡을 수 없이 방향을 잡는’ 그 순간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에세이문학⟫ 2023년 여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