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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꽃이 되는 시간    
글쓴이 : 진연후    23-07-20 14:17    조회 : 2,480

모두 꽃이 되는 시간

 

진연후

 

 

연정이 엄마가 반을 옮겨달란다. 연정이와 선생이 안 맞는 것 같다고, 선생이 세아만 특별히 예뻐한다고, 그렇게 차별하는 선생에게서 배우고 싶지 않다고. 내가 차별을 했다고? 언제? 어떻게? 내가 세아만 예뻐하고 연정이는 안 예뻐했나? ? 왜 그랬지?

세아는 참 예쁘다. 우선 자세가 반듯하다. 80분 수업 시간 내내 반듯한 자세로 앉아 흐트러짐이 없다. 딴짓을 하는 적이 없고, 선생 말을 경청한다. 과제를 완벽하게 해 오는 것은 기본이고 항상 수업 시간 5-10분 전에 도착하여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이런 건 지키지 않은 학생에게 한마디를 하는 거지 지킨다고 특별한 대우를 할 건 없다.

연정이도 물론 예쁘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해서 발표 시간이면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기본적으로 과제도 잘해 오고 수업 참여도 적극적이다. 깜찍한 모습에 자신감 있는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예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 내가 세아를 예뻐한 건 어떤 부분인가? 얼굴이 예쁘다는 말은 매우 조심하는 부분이다. 여학생이 한 명만 따로 있을 땐 간혹 예쁘다는 말이 나올 때가 있지만, 두 명 이상일 땐 누구 한 명만 예쁘다고 하지 않는다. 세아는 예쁜 얼굴만큼이나 글씨를 예쁘게 쓴다.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리가 된 공책을 보면서 어쩜 글씨를 이렇게 예쁘게 쓰느냐고 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연정이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자기주장이 분명해 다른 사람 의견과 부딪치기도 하지만 그건 토론수업 특성상 오히려 필요한 역할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연정이를 안 예뻐해서가 아니라 세아를 예뻐한 것에 있다. 글씨를 잘 쓴다고 세아만을 칭찬한 것이 차별이고 차별하는 선생한테서 배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릴 적 옆집 살던 희정이는 참 예뻤다. 계란형 얼굴에 피부가 시골아이답지 않게 뽀얗고 긴 생머리를 한 희정이와 까무잡잡한 피부에 곱슬머리인 나는 비교가 되곤 했다. 엄마의 손길로 나도 시골아이치곤 꽤 단정하고 깔끔하게 하고 다녔지만 타고난 뽀얀 피부는 따라갈 수 없었다. 어느 날 둘이 명란이네 집에 놀러 갔고, 명란이 언니가 희정이를 보며 예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던 모양이다. 나는 집에 와서 엄마에게 그 말을 전했고, 내 기분까지 얹어 들은 엄마는 속이 많이 상하셨단다. 예쁘고 안 예쁘고를 떠나 엄마 딸이 비교당해서 시무룩한 것이 속상하셨을 거다.

명란이 언니가 잘못한 건 없다. 희정이 얼굴이 예쁘니 예쁘다고 한 것밖에는. 그런데 그 후로 나는 누가 내게 예쁘다고 하는 말에 진정성을 의심하는 습관과 함께 나 또한 두 사람을 상대로 어느 한 사람을 예뻐하는 말을 안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누굴 칭찬하거나 좋아하는 티를 내는 것에 어색한 부작용이 생기기도 할 정도였는데.

돌이켜보니 연정이의 장점을 크게 드러내어 말하지 않은 것 같다. 세아를 칭찬할 때 옆에 있는 연정이를 배려하지 못한 건 차별이라 느끼게 할 수 있는 불찰이다. 어떤 한 사람을 특별히 좋아하게 될 때 그 사람을 띄우는 말들이 옆에 있는 이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놓쳤다. 나를 봐주지 않는 상대에게 갖는 감정, 반응을 받아들여야 한다.

불쾌할 일도 억울할 일도 아니다. 한 사람을 특별히 좋아하고 예뻐하는 티를 내는 건 아이들을 대하는 직업상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을 대하는 예의에서도 벗어나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도 비교 대상이 되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데 하물며 어린 나이에 옆 친구와 다른 눈길을 받는 것이 얼마나 속상했을까. 모든 순간 모두가 주연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 무대에서만큼은 모두를 주인공으로 꽃피도록 해야 했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잘 티 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속을 알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 반대로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사람도 있다. 오래전 한 동료가 내게 속이 다 보인다고 한 적이 있다. 좋은 거 싫은 거 얼굴에 다 쓰여 있다고. 물론 좋은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다. 누구를 예뻐한다는 것이 다른 누군가를 슬프게 할 수 있다는 걸 다시 배운다.

모든 존재를 그대로 존중하는 어른이 되기를 꿈꾸어왔다. 나이가 들어가면 좋고 싫음을 내색하는 표정도, 좋다 싫다에 흔들리는 표정도 무뎌지는 줄 알았다. 상처 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나이 들면서 모나지 않게 둥글게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일까?

누군가의 기억에 따스한 눈길로 자신을 알아봐 주었던 이로 기억되기를, 부디 연정이 기억에 내가 오래 머물지 않기를.

 

 

 

 

리더스 에세이 2023년 봄호 통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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