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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세월    
글쓴이 : 김기수    23-08-07 12:25    조회 : 2,535

가는 세월

 김기수(金基秀)

 나는 종종 흘러간 가수 서유석의 가는 세월을 노래한다. 친구들이나 동료들 그리고 제자들과 여흥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래방을 찾을 때마다 부르는 노래다. ‘가는 세월1977년 발표곡으로 MBC 인기가요에서 장장 14주 동안 1위에 올랐던 곡이다. 당시 이 노래는 국민들의 애창곡이 됐을 정도였다. 어느 날 나도 이 노래를 배우고 따라 불렀다. 따라 부르기가 쉬웠고 노랫말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 노래를 청년 시절부터 즐겨 부르고 70을 넘고 80향해 달리는 요즘까지도 애창곡이 되었다. 삶의 철학을 느꼈기 때문이랄까. 프랑스 사상가 모리스 리즐링이 말했듯이 결국 인생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려

 세월을 잡을 수 없고 자연을 거역할 수 없는 인생을 바라본다. 인생이라는 바다가 흐르고 변하고 하는 모습을 느꼈던 청년은 이제 삶이라는 굴레를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기 전에는 가는 세월을 가볍게 노랫말이 좋아서 그리고 따라 부르기 좋아 그냥저냥 부르곤 했다. 노래에 담긴 의미를 철학적이거나 명상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맹목적이었다. 한심할 정도로 남들이 하니까 나도 그렇게 했던 따라쟁이었다.

 문득 가는 세월가사에 젖어 지난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고 삶의 의미와 실존이라는 깊은 깨달음 앞에 섰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직분과 사명을 다하고 있는 나는 참교사인가?’ 지식만 전달하는 참고서 교사인가?

 젊은 시절 교사의 삶을 살며 이율배반적 행위, 이중적 자아의 발견, 삶에 대한 회의 등으로 늘 고민했다. 자괴감에 빠져 독한 술에 젖어 여자에게 손을 내밀기도 하고, 말초적 탐미 추구로 이성을 잃고 방황도 하는 청춘을 보냈다. 이성이 감성을 보듬었을 때 쾌락적 추구만이 인간의 존재를 결코 행복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고, 감각과 쾌락만을 좇는 삶의 결과는 결국 권태와 절망뿐이라는 회한에 빠졌다. 잠시나마 바르고 선하고 합당한 참자기됨을 추구하기도 했다.

 중년의 나이 넘어도 윤리 도덕적 행위만으로는 인간의 삶이 만족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고독을 느끼고 방황하곤 했다. 세상의 보편이라고 이야기하는 윤리 의식으로 살아간다는 인간도 결국 언젠가는 세상과 결별하고 말 것이라는 '불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리라. 더 나아가 인간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머물며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의미도 생각했다.

 결국에는 인간의 실존을 그리스도인의 실존으로 바라본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에 심취하기도 했다. 오직 신 앞에 단독자로 설 때만 자기 자신의 참된 자기됨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 종교적 실존의 단계에. 나도 지금까지의 삶을 합리화시키며 종교적 삶의 단계를 천천히 밟아 가고 있다. 서유석의 노래가 이어진다.

 ‘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

  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산천초목 다 바뀌어도

  이 내 몸이 흙이 돼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철모르게 뛰어놀고 함께 지내던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하고 있음을 깨닫는 인생. 그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 친구들과 동료들을 그리워하며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과 손주들 생각에 그리움만 쌓이는 안타까움. 이 세상에는 변치 않는 게 없고,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없고, 지금 가진 것을 영원히 누릴 수도 없지 않은가? 흙이 돼도 내 마음은 과연 영원할까? 세월과 자연 모든 것이 바뀌고 변해도 내 마음은 과연 사랑으로 영원할까?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라는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며 여러 궁금증만 갖게 되는 노년의 시절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제 흘러가는 세월에 노인이라는 이름을 얻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찾으려 했나?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 세상모르고 자아도취에 빠져 살았던 지나간 날들, 깊은 삶의 회한에 빠지고 인생은 무상한 것인가?’ 하는 의문에 밤잠을 뒤척이곤 한다. 젊음의 방황을 거치고도 노인이라는 이름에 아직도 방황의 여정에 있다. 삶을 갈무리해야 하는 인생의 단계를 살면서 신의 부르심에 침묵과 순종으로 응답하는 삶으로 나아가려 한다.

 가는 세월에 오늘도 마음을 내려놓고 기도한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 하나님. 새날 허락하시고 일상을 행할 수 있도록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주님! 모든 생활 내 뜻대로 주장하게 마옵시고 주 뜻대로 주관하옵소서.’ 

- 2023-8 262 '수필과 비평'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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