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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남자들    
글쓴이 : 오길순    23-11-11 13:44    조회 : 3,084

                                           아름다운 남자들

                                                                              

  전생에 얼마나 공덕을 많이 쌓았으면 엉덩이에 부채질해주는 남자를 만났을까?

추석 전날, 뒷산에 오른 것은 심신을 충전하고 싶어서였다. 상큼한 몸과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고 싶었다. 그런데 숲속에서 웬 소음이지? 좁은 산길과 정자까지 샅샅이 쓸고 있는 전동청소기 소리였다. 요즘 유행인 맨발로 걷는 이들에게는 누군가 보내는 사랑의 기도로 들릴 터였다. 깨끗해진 산길을 지나노라니 전동청소기로 청소하는 아저씨에게 절로 인사가 나왔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내 큰 목소리에 저 만큼에서 돌아보는 그의 미소가 온화했다.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 수행자인 양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더불어 나뭇가지 새로 섬광을 받은 내 운동화도 눈이 부셨다. 도란도란 산길을 떠나는 이들의 맨발들도 산향기 속에서 더욱 가벼워 보였다.

 미국의 전기기술자 클린트 오버와 심장 전문의 스티븐 시나트라 박사는 맨발 걷기를 연구했다. 어싱(earthing), 땅과의 접촉이 치유한다라는 논문이다. 2의 심장이라는 발바닥에 대자연을 접지 접촉하면 지구의 음이온이 건강을 복원한다는 이치이다. 전문가들은 파상풍 등 감염에 유의하라고도 한다.

마침 맨발로 앞서 걷는 노 부부가 남달랐다. 여왕벌처럼 우아하게 걸어가는 아내 엉덩이에 바짝 따라가며 부채질하는 남편이 일벌처럼 보였다. 아내의 운동화가 선녀의 날개 옷이라도 되는 양 고이 받쳐 들고는 분주히 따라가는 사나이가 숲 속의 나무꾼을 연상시켰다. 그 풍경이 곱고도 재미있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아내가 그렇게 예쁘세요?“

노 부부는 멈칫 돌아보았다. 풍경이 고와서였는데, 놀라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했다.

산에 모기가 많아서요.”

그의 주름진 얼굴에서 착.. ... 이렇게 읽혔다. 전생에 얼마나 공덕을 쌓았기에 엉덩이에 모기 물릴까 부채질해주는 나무꾼을 만났을까? 아내도 선녀였겠지? 그러고 보니 여인의 맨발이 유난히 뽀얗고도 예쁘다.

저 작은 맨발이 선녀의 원천이었을지도 몰라. 아내가 예쁘면 처가 말뚝에도 절을 한다지. 속살은 더욱 박꽃 같을지도. 어쩌면 평생 그렇게 사랑으로 부채질해주었겠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앉아서 쉬고 있는데, 한참 후 되돌아오는 노부부, 여전히 부채질 그대로이다.

저 엄마, 전생에 남자 엉덩이에 무한 부채질했겠지? 그래서 저런 남편을 만난 거겠지? 이승은 전생에서 뿌린 걸 거두는 거라쟎아? 부부도 공짜 없다쟎아?”

 빙긋이 웃기만 하는 내 남편에게 곱씹고 있는데 멀리 친구 전화가 왔다. 그도 차례 준비하러 시장가는 길이라고 했다. 바쁜 중에 전화라니, 친구의 다정이 더욱 고마웠다.

 “그런데 얘! 우리 시동생은 제사 때마다 제수비랑 선물을 보내. 조상님과 부모님 제사를 평생 지켜준 형수님 존경한다고. 손아래 동서랑 와서 비싼 밥도 사주곤 해. 그래선지 제사가 힘들어도 견딜만 해.”

세상에! 그런 멋진 시동생이 다 있어? 네가 착하게 사니까 시동생들도 착하신가 보다.”

, 다들 착하셔. 오래전에는 시동생 한 분이 자기 산을 울 아들에게 등기해 줬지 뭐니?”

어머나! 정말 어머나!. 그런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가 어딨어? 네가 얼마나 공덕을 쌓았으면 그런 아름다운 시동생을 두었겠어?”

울 남편이 첫째인 셈이거든. 시동생들은 자기들 일을 내가 대신 한다고 생각하나 봐. 늘 형수를 존경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

열다섯 살 중학생 소녀들이 어느새 상할매되었다며 친구의 시동생 이야기 재미있게 하는 중인데, 카톡으로 부고가 왔다. 또 다른 친구의 남편. 천국 길 아직 이른 분, 애석하기 짝이 없다. 신혼여행 떠나는 그 친구를 배웅한 게 엊그제 같은 데 반세기가 찰나처럼 스쳤다. 삼십 여 킬로. 부지런히 차를 몰고 장례식장에 갔다. 그동안 남편 간병에 애썼을 친구와 한바탕 눈물 바람을 하노라니 인생이 연기처럼 부질없게 여겨졌다.

울 남편 일 년 삼백육십오일, 거의 날마다 나를 마사지해 주었어. 젊을 때부터 죽어가던 내 몸이 이날까지 살아남은 건 순전히 남편 덕분이여. ‘!’ 소리만 나도 자다가 어루만져서 낫게 해 주었어. 그러고는 저렇게 자기가 먼저 떠났어...“

세상에! 그런 애처가가 어딨어? 네가 전생에 복을 많이도 지었나 보다.”

남편 이야기는 흉도 자랑이라는데, 슬픔 중에도 진구의 남편 자랑이 듣기 좋았다. 가신 이가 남긴 추억들은 친구의 빈자리를 늘 따뜻하게 채워줄 것만 같았다.

어떤 수필가 남편은 평생 아내에게 한정식을 차려준다. 그야말로 끼니마다 걸상이란다. 아내를 왕비처럼 섬기는 그 남편을 우리는 아름다운 남자라고 불렀다. 마사지? 왕비에게는 기본이라니 이 무슨 호강이람? 우리는 듣도 보도 못한 그의 이야기에 늘 박장대소한다. 전생에 얼마나 복을 지었으면 그리 아름다운 남자를 만났겠느냐고 함께 행복해한다. 언제 찜질방에라도 가서 그의 끝없는 남편 자랑 더 듣자고 약속했는데 아직 미완이다.

하긴 아내에게 밥해주는 대통령 후보도 있었지. 그의 달걀부침 실력은 몇십 년 주부도 흉내 내기 어려웠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데 아름답게 사는 인생 그게 곧 예술 아닐까?

아내 엉덩이에 부채질하는 남자, 밤마다 마사지해주는 서방님, 한정식 차려주는 남편...언감생심, 나는 남편 엉덩이에 부채질하는 편이 차라리 빠르겠다.

 

                                


          에세이스트112. 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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