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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슈문학기행문    
글쓴이 : 손동숙    12-05-18 10:07    조회 : 5,616
             
       
         
 
                 
                                    규슈(九州) 문학기행문
 
 
       규슈(九州) 문학기행은 화산폭발로 염려가 많았지만 인천공항을 출발하자 약 1시간 20분 만에 후쿠오카공항에 도착하면서 즐겁게 시작됐다. ‘행복의 언덕‘이라는 뜻의 후쿠오카(福岡), 그곳에서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의 마나기 미키코(馬男木美喜子)대표 안내로 윤동주시인의 옥사 현장과 생애를 더듬으며 시낭송과 묵념으로 추모행사를 했다.
      규슈 산업대학 시라카와 유타카(白川豊)교수의 염상섭, 장혁주, 김사량에 대한 강의와 후쿠오카대학 구마키 츠도무(熊木勉)교수의 윤동주, 정지용에 대한 세미나로 첫날 일정을 마쳤다.
 
      아기가 태어나면 신사(神社)에 가서 건강과 미래를 빌고 결혼 할 때에는 성당이나 교회에서 현대식으로 치루며 장례식은 사후세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불교식으로 한다는 일본은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면서 옛 운치를 간직하고 있었다.
      규슈(九州)는 후쿠오카(福岡), 오이타(大分), 나가사키(長崎), 사가(佐賀)와 구마모토(熊本)를 기타큐슈(北九州)라 하는데 그 관문인 후쿠오카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일본에서 8번째로 큰 도시이며, 연평균 기온이 약 16.3°C로 1년 내내 따뜻하다. 헤이안(平安)시대 부터 무역항으로 발달한 규슈의 가장 현대적 도시로 하카타오리(博多織)같은 실크제품이나 하카타(博多)인형과 같은 전통 민속품도 유명하다.
     
       다음 날 나카츠(中津)로 가서 일만 엔에 등장하는 인물인 후쿠자와 유키치(福?諭吉)기념관을 둘러보고 문화관광마을 유후인(由布院)에 도착, 긴린호수(金鱗湖)를 산책하는데 마크 샤갈 미술관이 눈에 들어왔다. 민예촌 거리를 걸으며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들을 기웃거리다 전용버스를 타니 회원 한분이 그곳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금상 고로케를 먹어 보라며 권한다. 바삭한 맛이 일품으로 속에 고구마가 들어있었다. 아소(阿蘇) 팜빌리지에 도착하여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우주선 같은 집 한 채씩을 배정받아 숙소로 끌고 가는 여행가방 소리는 음악처럼 들렸다.
      셋째 날 쾌청한 날씨는 한껏 기분을 고조시켜 주었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고메즈카(米塚) 쌀더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1984-2004년까지 발행된 지폐 천 엔에 초상화로 등장하는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는<<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풀베개>>를 쓴 소설가로 본명은 나츠메 긴노스케(金之助), 그의 다섯 번째 집이었던 우치츠보이큐쿄(內坪井?居)를 견학했다.
       페리를 이용하여 '시마바라(島原)'로 이동 중 빵을 잘라 갈매기를 유혹했다. 괴성을 지르며 모여드는 그 녀석들을 배부르게(?) 먹이며 모두 어린애마냥 즐거워했다.
넷째 날 찾은 운젠(雲仙) 국립공원은 화산의 열기와 유황가스로 식물이 자라지 않아 이곳을 지옥계곡이라 부르는데 그 열기로 찐 달걀은 명물 중 하나다.
       
      나가사키는 규슈의 가장 서쪽에 있는 아름다운 항구로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된 아픔을 갖고 있다. 원폭자료관과 평화공원으로 가는 도중 나가이 다카시(永井隆, 1908~1951)의 산문 ’묵주알’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자료관에서 그 묵주알을 보며 잠시 숙연해졌다. 나가이 다카시는 자신도 원폭 피해로 심한 부상을 입고 집에 와 보니 부엌이 있던 자리에 남아있는 검은 덩어리들, 타 버리고 남은 아내의 골반과 요추, 그 곁에 십자가가 달린 로사리오의 사슬(묵주)이 있었다. 그 후 폐허가 된 집터에 여기당(如己堂)이라는 움막을 짓고 아이와 함께 생활했는데, 여기당이란 남을 자기처럼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불편한 몸으로 집필에 전념하여 5년 반 남짓한 기간에 무려 14권의 책을 썼고 <<로사리오의 쇠사슬>>, <<만리무영>>, <<이 자식을 남겨 놓고>>등 인간애 넘치는 작품을 남겼다.
     전시관을 돌아보는 중 교복을 입은 초등학생 두 명이 엎드려 원자폭탄 ‘팻맨(fat man)’의 단면을 그리며 설명을 열심히 옮겨 쓰는 모습이 눈에 띤다. 그들이 강국의 대열에 설 수 있는 것도 철저한 교육에서 나옴을 알 수 있었다. 피폭 후 조성된 평화공원은 북쪽지역 관광의 핵심이고 평화를 기원하며 종이학을 접어서 엮어 만든 종이학 탑도 인상적이었다. 나가사키는 비록 작은 도시지만 일본 근현대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최초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개항도시로 서양의 다양한 문화가 들어왔고 그리스도교가 전해져 뿌리를 내렸다. 오오우라 천주당(大浦 天主堂)의 정식 명칭은 ‘일본 26성(聖) 순교자당’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이곳을 지나 옆으로 들어가면 나가사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고풍스런 유럽식 건물이 여러 채 모여 있다. 바로 글로버정원(구라바엔)이다. 이 주변은 개항 당시 외국인들이 살던 지역으로 글로버저택을 비롯해 9동의 서양식 건물을 옮겨 모아 놓은 것이다.
      토머스 글로버는 서양 문화를 전파했고 기린맥주의 전신을 만들었으며 일본 최초의 철도를 놓는 등 많은 일을 했다. 스물한 살 때 나가사키에 건너와 무역업으로 큰 부자가 되어 이 집을 지었는데 서양식 건축물과 일본 특유의 느낌이 살아 있어 이국적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거실, 침실, 응접실 등을 당시 분위기에 맞게 재현해 놓았고 글로버정원 한 귀퉁이에 푸치니의 동상과 오페라 '나비부인'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한 일등 공신인 성악가 미우라 타마키(三浦環)의 동상도 있다.
      미국인 작가 존 루터 롱(John Luther Long)이 이곳에 머물며 소설 <<나비부인>>을 썼고 푸치니는 이 소설을 오페라로 작곡 <<나비부인>>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구라바엔에선 <<나비부인>>의 대표곡인 <어느 갠 날>을 자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푸치니의 3대 오페라중 하나인 <<나비부인>>은 미국인 장교와 결혼한 게이샤의 슬픈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이곳을 배경으로 한다. 아사히 맥주, 삿포로 맥주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기린맥주의 로고는 용과 말이 합쳐진 기린(중국의 전설상 생물)으로 글로버 저택 온실 옆 기린의 석상이 기린맥주 로고의 모델이다. 기린은 자애심이 가득하고 덕망이 높은 생물이라서 살아있는 것은 동물은 물론 식물도 먹지 않고 벌레와 풀을 밟지 않고 걷는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무역선이 나가사키 항구에 처음 닻을 내린 것은 1571년이었다. 상인들이 드나들며 그리스도교가 전해지고 포르투갈에 이어 영국, 네덜란드와도 교역을 시작했다. 그리스도교를 금지하면서 포교활동을 하던 포르투갈, 영국과의 무역은 일시 중지되었으나 네덜란드는 계속 교역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가사키에는 다른 나라보다 네덜란드 관련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5일째 되는 날은 1634년 에도 바쿠후의 쇄국정책 때 천주교 포교금지 목적으로 네델란드 상인을 격리, 거주시키기 위해 조성된 부채꼴 모양의 인공섬인 데지마(出島)를 견학했다. 1996년 축소판으로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지금도 한창 복구 중에 있었다.
     세계의 도자기에 영향을 준 아리타야키(有田燒)의 고장으로 아리타와 유럽의 도자기를 전시한 포세린 파크와 18세기 초 바로크 양식의 독일 궁전을 충실히 재현한 쯔빙거 궁전을 돌아보는 날은 가을하늘처럼 푸르고 맑았다.
마지막 날 야나가와(柳川)에서 일본의 김소월이라 불리며 시집 <<사종문(邪宗門)>>, <<추억>>, <<수묵집(水墨集)>>과 동요, 민요 등 다양한 작품으로 국민시인이란 평가를 받는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생가를 돌아보았다.
     야나가와 뱃놀이를 두 팀으로 나누어 타며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낸 후 후쿠오카 최대 복합 쇼핑몰인 캐널 시티에 오니 벽면에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최대 복합 쇼핑몰이라고는 했으나 우리 일행은 별로 살 것도 없고, 사고 싶지도 않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헤어질 시간을 아쉬워했다.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했고 공해가 적어 거리와 건물들은 방금 샤워한 듯 어느 곳이나 말끔했으며 절약과 절제는 어디서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매화와 동백꽃이 피어 여름으로 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일본문학기행을 마치고 어렵게 생각했던 일본의 문화를 어렴풋이 느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가족적이었던 이번 여행은 우리 모두에게 행복함을 안겨주었고 다음 문학기행을 꿈꾸게 했다.
 
 
                  2011, 7월호 한국산문 '지구촌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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