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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온다    
글쓴이 : 박지니    24-07-04 12:54    조회 : 3,341

비 온다

 

비가 내린다. 몇 시간째 퍼붓고 있다. - 내리는 소리에 씻기면 좋겠다. 뭔지 모르겠지만, 뭐든 간에 씻겨서 사라지면 좋겠다.

, 투둑, . 웅덩이에 고인 물 위로 빗방울이 튕기는 소리가 경쾌하다.

더운 여름날 나그네에게 휴식을 줬을 법한 바위는 제 살 깎이는 줄 모르고 내리는 비를 받아낸다. 울퉁불퉁한 바위의 표면이 매끄러워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처음엔 튕겨 흩어지던 빗방울이 바위 위에 쉴 곳 마련한 건 언제부터일까. 머리 위에 홈이 생긴 걸 알았을 때엔 바위는 이미 원래 모습을 잃은 뒤였을 것이다. 이제는 움푹 파인 모양새가 원래 모습인 양 묵묵히 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처음부터 그 자리는 아니었을 터. 고개를 들어 빌딩 숲 너머 보일 리 없는 산으로 시선을 돌려 본다. 저 산 어디쯤일까? 물어도 답해주지 않을 테지, 산의 봉우리였는지. 어쩌면 산비탈의 모난 돌이었을지도. 어찌 생긴 틈 사이로 바람이 물어 온 씨앗을 품기로 한 것은 변덕이었을 것이다. 움튼 씨앗이 자라나 뿌리를 뻗어낼 때마다 균열도 뻗어나가는 걸, 바위는 느꼈을 테다.

달구비 쏟아지던 어느 날 하늘이 움직였다. 땅이 보이더니 강한 충격에 고통이 밀려왔다가 다시 허공에 떴다. 빙글빙글, 세상이 돌고 있었다. 아니,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건 자신이었다.

처음엔 낯선 곳에 떨어져 당황했을 것이다. 변변찮은 바람막이 하나 없이, 비에 젖고 바람에 맞는 것이 서럽고 화도 났겠지. 사락사락, 풀 소리에 흠칫하고 귀뚜라미 우는 소리에 마음 졸이며 지새운 밤들. 볕 좋은 날 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정겨워지기까지 몇 번의 봄을 지나쳤을까. 잡초 뜯던 남정네가 걸터앉아 꾸벅꾸벅 졸며 코 고는 소리, 빨래 널던 아낙네의 넋두리를 벗 삼게 되기까지 몇 번의 겨울을 보냈을까.

철마다 잔디는 색을 달리하고 해 바뀔 때마다 다양한 들꽃이 피고 지건만, 바위는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송충이가 떨어져 제 위에서 숨을 골라도 바위는 눈길 주는 법이 없다. 세월이 흘러 거칠었던 표면이 부드러워졌어도 원래 그랬다는 듯이 제자리에 서 있다. 쏟아지는 비에 문지방을 넘지 못한 두 발도 제자리다. 문밖으로 손을 뻗어본다.

, . 외따로이 선 곳에서 처음 비를 맞으면서 바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 . 빗방울이 고이기 시작했을 때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빗물이 고여 넘치게 되기까지, 바위는…. 빗방울이 손바닥 위에서 흩어진다.

저 자리에 서기까지 바위는 이곳저곳 많이도 깨지고 깎였을 것이다. 사람 사는 것도 비바람에 맡기면 되나? 시간이 약이겠거니 믿으며 견디다 보면 둥글둥글해지려나? 아니, 그럴 수는 없겠지. 사람이 조각난 채로 살 수 있나, 두려움이나 고통에 맞서야 하는 때가 있는걸. 마주하기 불편하다고 회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당장엔 어찌할 바를 몰라 묻어뒀더라도 너무 늦어지기 전에 끄집어내야 한다. 하지만 그 적당한 때를 맞추는 게 쉽지 않다. 아직 때가 아니었는지 괜히 헤집었다가 덧나기 일쑤이다. 혹은 혼자서는 안 될 일이었는지도.

별거 아닌 일에 화내고는 돌아서서 후회하는 게 못나 보여 헛웃음을 짓는다. 아옹다옹 다투고 싸우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에 이제부터는 일희일비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러다가도 문득, 내가 침묵하는 게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여기기 때문인지, 아니면 상황을 모면하고자 도망치려고 하기 때문인지 의구심이 피어난다. 자중이 지나친 나머지 모든 것에 무뎌질까 두려워진다. 자연이 주는 소소한 가르침을 놓치고 사람 속에서 따스함이나 정다움을 찾지 못할까 봐. 갓난쟁이의 사랑스러움에조차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역시 지지고 볶는 게 사람 사는 맛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건 감내하고 어떤 건 극복하면서 사람은 성장하고 단단해진다지만, 덮어둘 것과 마주할 것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직은 시끌시끌한가 보다. 그때가 오기까지, 아직은….

손이 시리다. 두 손 모아 받아낸 빗물은 손만 적시고 흩어져 버렸다.

비 온다. 비가 내린다. - 시원하게도 쏟아진다. , 투둑, . 제 위에 웅덩이를 만들며 고여도 바위는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 마음은 빗방울 튕기는 소리에 갈팡질팡한다. 비가 그칠 즈음엔 이 바보스런 고민도 사라질까. 바위의 묵연함을 닮는 건 훨씬 나중의 일이 될 것 같다.

 

한국산문, 20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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