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힘이 세잖아!
조 헌
평소와는 달리 출근 전에 영어 학원을 다닌다며 수선을 피우고, 퇴근해선 헬스클럽을 간다고 부지런을 떠는 사람, 어쩌면 그는 한 삼년쯤 사귀어오던 애인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고 실연에 가슴 태우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모임이란 모임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워낙 너울가지가 좋아 잘 어울리며, 노래방이라도 갈라치면 맛깔난 솜씨로 주변을 압도하는 사람, 어쩌면 그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깜깜한 빈집에 혼자 열쇠를 따고 들어가 외롭게 밤을 지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딸이 사준 옷이라고 자랑을 입에 달고 다니며, 효자 아들 덕에 호강을 도둑개 매 맞듯 한다고 으스대는 사람, 어쩌면 그는 망나니 아들과 시집가 어렵게 사는 딸 때문에 가슴이 까맣게 타버린 사람인지도 모른다.
몇 해 만에 참석한 동창회에서 경기(景氣)는 어려워도 자기는 그럭저럭 쏠쏠하다며 애써 부산을 떨던 사람, 어쩌면 그는 하던 사업을 접고 쓸쓸히 공원이나 배회하며 하루를 힘겹게 보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우린 모두 새색시 속살 감추듯 남에게 숨기고 싶은 사연 하나쯤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행여 그 숨긴 보따리가 남의 눈에 띌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은 아닌지.
내게는 30년 넘게 한 직장에서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있다. 두 사람 모두 말수가 적어 살갑게 굴진 않아도 오랜 시간을 같이 있다 보니 표정만 봐도 서로의 속뜻을 알 수 있는 둘도 없는 친구다. 유달리 가정적인 그는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특히 아들은 그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서울의 유수한 의과대학 졸업반으로 착실한 성품에다 인물마저 출중해 남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다.
하지만 하늘도 시기(猜忌)를 한다고 했던가. 지난 해 2월, 친구들과 설악산을 다녀오던 그 아들의 차가 그만 대형트럭과 충돌하는 바람에 타고 있던 사람이 모두 사망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정말 안타깝고 허망한 참극이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난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친구를 걱정하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 부부의 정황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혼절과 오열을 반복하던 그의 아내는 결국 병실로 떠메어 올라갔고, 핏기 잃은 얼굴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영안실 밖 의자에 앉아 있던 친구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넋이 나간 듯 멍하니 그 의자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장례식이 치러지는 삼일 내내 그곳에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의 곁에 있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당한 슬픔을 속으로 삭이며 앙버티는 그에게 위로해 줄 어떤 말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장례절차에 따라 그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며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끝내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은 채 석상(石像)처럼 앉아 있던 그의 모습이었다.
아들을 잃은 충격에 그가 보인 반응은 남달랐다. 이레 만에 출근한 그는 주변사람들이 보내는 애달픈 진심에도 결코 눈물을 보이거나 슬픈 표정을 짓지 않았고, 흔히 가질 법한 원망이나 분노의 감정도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자신을 어디에다 냅다 집어던져버린 듯 오히려 덤덤했다. 다만 전에 없이 혼자 있으려 애를 쓰고 어금니를 꽉 깨문 굳은 얼굴로 평소 보다 훨씬 더 업무에 매달렸다. 나를 비롯한 누구와의 술자리도 수락하지 않았고 어떤 동행요청도 한마디로 거절했다. 마치 충분하다고 느낄 때까지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을 가혹하고도 철저히 자신에게 가하는 듯 느껴졌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火焰)속에서도 시간은 가는가 보다. 그가 아들을 앞세운 지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당신 집 앞이야! 얼굴 좀 볼까 싶어 왔는데.” 나는 화급히 집을 나섰고 얼마 후 조용한 술집에 마주 앉았다. 많이 수척해진 그의 얼굴을 모처럼 똑바로 쳐다보자, 그는 슬그머니 내 눈을 피하며 고개를 떨궜다. 그리곤 느닷없이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우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 줄 몰랐어. 그동안은 울 수조차 없을 만큼 뼈가 녹듯 아팠어! 목을 놓아 울고 싶어도 기가 넘으니 울어지질 않더군.” 그는 점점 더 고개를 숙이며 온몸으로 오열했다. 나는 그대로 두었다. 실컷 울어볼 수 있도록 그의 옆에서 한참을 그냥 앉아있었다.
“죽을 만큼 슬픈 사람에게 주변의 과장된 공감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절감했어. 살기위해 죽을힘을 다해서 잊고 있는데 뜬금없이 던지는 위로의 말이 얼마나 예리한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히던지.” 벌겋게 충혈 된 그의 눈에선 쉼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멀찍이 서서 ‘네가 거기 있음을 알고 있어. 그리고 너를 항상 지켜보고 있을게’라고 말하는 당신의 눈빛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아무도 모를 걸세.” 코끝이 싸해진 나도 그만 눈물이 번져 흘렀다.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그 긴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버둥거렸을 친구의 모습이 한없이 가여워보였다.
인간은 누구나 저만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있다. 아무리 남에게 하소연을 해본들 절대로 나눠 질 수 없는 각자의 짐들을 등에 메고 버겁게 걷는 게 인생이 아닐까.
‘아프다’와 ‘아플 거야’는 다르고, ‘배고프다’와 ‘배고플 거야’도 같지 않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며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남을 얼마나 이해하며 사는 것일까? 아프고 배고픈 사람 곁에 있다고 그 아픔이나 배고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삶은 오롯이 자신만이 견디며 가야할 외로운 길이 아닐지.
우리가 헤어질 무렵엔 날이 많이 어두웠다. 악수를 하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세월은 힘이 세잖아! 아마 너의 아픔도 기억 속에서 꼭 몰아내 줄 거야!’라고 그를 위해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엔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별 몇 개가 스스로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