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노정애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poposun65@hanmail.net
* 홈페이지 :
  아버지의 산    
글쓴이 : 노정애    24-08-19 08:23    조회 : 6,423

                                            아버지의 산

                                                                                                 노정애

 

 이른 아침 서울에서 출발했다. 평일이라 고속도로에 차는 많지 않았다. 매년 재산세를 낼 때면 한번 가봅시다.” 말만 하고 15년이 지났다. 몇 주 전 이장이 전화로 산 아래 도로를 놓는다며 허가를 요했다. 운전하던 남편이 장인어른 덕분에 고흥을 다 가보네하며 살짝 웃었다. “그러게요. 나도 사진으로만 그 땅을 봤지. 도로를 어디에 낸다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부모님은 부산 광안리에서 블록공장을 했다. 공장은 1,000평 정도의 땅을 빌려서 사용했는데 매년 12월이면 임대료를 올리기 위해 땅주인이 왔다. 단신에 오뚝이마냥 동글동글한 체구의 중년 아주머니였다. 풍채 좋고 잘 웃는 호탕한 아버지가 그분 앞에서는 허리를 숙여 키를 낮추고 말수도 줄었다. 부모님은 월세를 조금만 올려 달라 사정했고 못 내겠으면 나가라로 돌아왔다. 그분이 가고나면 어머니의 시름 가득한 한숨만 들리는 침묵의 집이 되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건설경기가 호황을 이루자 공장은 활기로 넘쳤다. 블록을 만들기도 전에 서로 사겠다고 건축업자들이 줄을 섰다. 1970년에 공장을 시작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여윳돈이 생기자 제일 먼저 땅을 샀다. 그날 이제 우리도 땅이 생겼다.”며 식구들 앞에 사진 두 장을 자랑스럽게 펼쳐 놓았다. 해변이 있는 바닷가 산과 유자나무가 심긴 야트막한 동산이었다. 내일이라도 가보자는 어머니에게 전남 고흥이라 당장은 힘들다며 우리 땅이니 언제든 갈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한가한 오후 시간이면 친구가 하는 부동산에 놀러갔다. 그곳에서 내기 장기를 두거나 화투놀이를 즐겼다. 그날은 매물 부동산을 보겠다고 온 손님들이 싼 임야가 있다며 사진을 보여 주었다. 친구들과 두 장씩 골랐는데 당신께 최고였단다. 사진 한 장에 천만 원, 9급 공무원 2년 연봉보다 많은 돈이었다. 이천만 원을 주고 도장을 찍었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아버지. 땅에 대한 서러움을 다 보상받은 듯 보였다. 힘든 날이나 거나하게 술에 취한 날이면 사진을 봤다. 바다가 보이는 산에 집을 짓고 유자 농사를 하는 노년을 꿈꿨다.  

 부모님은 몇 해 뒤에야 그곳에 갔다. 전남 고흥군 표두면 작은 마을에 들어서자 유자 동산이 양지바른 곳에 있어 한 바퀴 둘러보며 눈도장만 찍고, 해변을 앞에 둔 산은 바다로 가는 길에 철조망이 있어 가보지도 못했단다. 그렇게 딱 한 번 자신의 산을 봤다. 멀리 있어 이사는 어렵지만 땅이 있어 든든하다며 자주 사진을 꺼냈다. 그 뒤 노후를 위한 준비를 마치자 20년 넘게 했던 블록 공장을 접었다.

 몇 해 편히 지내다가 내가 결혼한 직후에 농기계 대리점을 열었다. 회사에서 고가의 농기계를 가져와 농민들에게 할부로 팔았는데 농사가 잘 되어야 기계 값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작황이 안 좋으면 떼이기 일쑤였다. 결국 5년을 못 넘기고 부도가 났다. 노후를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 헐값에 팔리고 아파트도 경매로 넘어갔다. 농기계 회사에서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그 임야 두 개를 일억에 근저당을 설정해 남은 채무를 명확히 했다.  

 아버지는 건강까지 잃었다. 8년을 투병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장례를 끝낸 뒤 어머니와 형제들은 상속 포기각서에 도장을 찍었다. 나는 찍지 못하고 망설였다. 사진을 보며 행복하게 웃던 당신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고민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남편이 상속 한정 승인을 신청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상속은 받지만 채무는 상속받은 재산에 한해서 책임지는 것이다. 3만평 가까이 되지만 공시지가는 이천만 원도 되지 않는 임야. 그렇게 아버지의 산이 내게로 왔다. 일억에 묶여있지만 재산세를 낼 때면 행복해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좋았다. 그사이 고흥에 나로 우주센터가 생겼다. 가끔 저녁방송에서 근처 항구들이 소개되었다. 겨울 초입 마트에서 고흥 유자나 차를 보면 사진 속 유자 밭이 생각났다. 공시지가가 낮아 처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회사에서는 15년째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한 번 가보자고 남편에게 채근했지만 먼 거리라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다. 도로를 어떻게 놓는다는 것인지 확인이 필요해 함께 나섰다. 드디어 보다니! 마음이 들떠 가는 길도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을에 들어서자 유자 동산이 보였다. 다 왔구나 싶어 내렸는데 핸드폰 지도가 더 깊숙한 곳으로 가란다. 다랑이 논을 지나 좁은 농로를 10여 분 걸어가서 도착한 곳. 나무는 울창하고 쉽게 오르지도 못하는 깎아지른 듯 높은 산. 몇 번을 확인해도 목적지였다. 멍하니 산만 올려다보는 내게 남편은 이건 정말 맹진데. 이 길에 도로를 놓겠다는 거네. 경운기 다니기는 편하겠다.” 나는 속으로 그럴 리가 없는데만 외쳤다. 그는 이곳이 정확하다며 다른 지번의 임야에 가자고 서둘러 돌아섰다. 나는 내려오면서 자꾸 뒤돌아 그 산을 봤다.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바닷가 임야가 근거리에 있는 줄 알았는데 좀 멀었다. 논과 밭, 마을을 지나 산길을 빠져 나오니 작은 저수지 주변에 넓은 논이 그림처럼 펼쳐져있고 멀리 바다가 보였다. 차에서 내려 해변으로 갔다. 철조망은 없었다. 크고 작은 조약돌이 깔린 해변에서 차르륵 차르륵 파도 소리가 났다. 이쯤인가 하는데 핸드폰 지도가 전혀 다른 곳을 가리켰다. 잘 다듬어진 다랑이 논 옆에 있는 높은 산이었다. 산 정상에 오르면 바다를 볼 수 있을까? “이것도 맹지네.” 남편의 말에 잠시 아찔했다.    

 우리가 봤던 사진 속 임야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근처에 있는 경치 좋은 사진을 보여주고 맹지의 임야를 파는 부동산 사기꾼들에게 걸려든 것이다. 직접 현장을 찾아서 확인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복잡한 선들과 숫자가 적힌 지적도를 처음 보는 아버지였다. 친구들과 경쟁하듯 선택한 좋은 풍경사진에 마음이 빼앗겨버렸다. 그들은 모든 걸 알고 계획했으리라. 이장은 그곳의 임야 80%가 외지인들 소유란다. 단단히 계획된 사기에 많은 사람이 걸려들었나 보다. 남의 땅인지도 모르고 그저 행복해 하셨던 아버지. 사기 당한 줄 모르고 떠나셔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근저당을 풀었다. 20년을 넘게 묶어두어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는지 도로보상비에 웃돈을 올려주고 합의했다. 맹지여서 내게 온 것이리라.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게 웃는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어 든든하고 좋다. 그것이면 되었다.  

 

                                                                                <동리목월> 2023년 겨울호



 
   

노정애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84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92578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94786
69 함께 길을 잃자 - 지브리 뮤지엄 노정애 06-19 3028
68 재미난 사진관 노정애 06-18 2444
67 술 뿌리는 남자 노정애 06-18 2435
66 쉼표 노정애 06-16 2842
65 전시공감 - 매그넘 인 파리 노정애 06-16 2701
64 해맞이 노정애 06-09 3061
63 수박 노정애 06-09 3021
62 따뜻한 말 한마디 노정애 07-03 6502
61 생활 정보지 노정애 02-13 6730
60 공연공감-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노정애 01-09 6964
59 심플하지 않은 그림 노정애 12-20 7382
58 공연공감 - 연극 <두여자> 노정애 09-05 8473
57 치앙마이-북방의 장미를 만나다 노정애 09-05 6957
56 정유정씨 고마워요 노정애 09-05 6493
55 목련화 노정애 09-05 6379
 
 1  2  3  4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