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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세, 그는 남자다    
글쓴이 : 신성순    12-05-20 04:13    조회 : 4,059
 
61세, 그는 남자다

신성순
 

"**엄마, 별일 없지? 나 일 열심히 하고 있어. 심심하더라도 조금만 참아. 일 빨리 끝내고 갈게."
안전모를 쓴 남자가 일손을 멈추고 누군가에게 한 말이다. 취재기자가 누구에게 전화 한 거냐고 묻는다.
 
"아내에게 했어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할까봐 전화해주는 거예요."
 
 
그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는 매일 전화해요."
"그런 잉꼬부부 없어요."
"그보다 더 다정한 부부는 없을 거예요."
 
 
도대체 얼마나 사이가 좋은 부부이기에 모두들 잉꼬 타령인가.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하고 계속 지켜보았다. 그 다음 화면은 기자가 주인공인 61세 남자의 집엘 같이 방문한 장면부터 나온다.
 
"**엄마, 나 왔어. 심심했지?"
 
그는 드르륵 문을 열면서 그녀에게 자신이 왔음을 알린다. 이상했다. 방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침대위에 커다란 액자가 이불에 반쯤 가려진 채로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액자를 꺼내어 벽에 비스듬히 세워둔다. 그리고 뭔가를 계속 그 사진을 향해서 말한다. 나 오늘 이랬어. 저랬어. 나 없는 동안 심심했지? 뭐 좀 먹었어?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내가 곧 상을 차릴게. 등등 그는 입을 한시도 다물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동안 내내 남자의 표정은 없었다.
 
 
이 부분을 보는 순간, 내 시선은 멈칫했다. 전혀 예상 밖이었다. 처음 내용이 소개될 때 까지만 해도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는 어느 노부부의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겠거니 하는 짐작으로 모니터를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그 사연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그와 아내는 같은 장소로 출근을 하는 맞벌이 부부였다. 박봉으로 근근이 살아가고는 있지만 부부는 행복했다. 그는 보잘 것 없는 자신에게 어여쁜 아내가 시집와준 것이 너무나 고마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사랑을 시샘을 한 것일까?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하는데 불행하게도 교통사고가 났고, 그 자리에서 아내를 잃었다고 한다.
 
 
그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출근할 땐 아내가 심심할까봐 텔레비전을 켜놓고 나가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내의 사진을 벽에 기대어 놓고 행여 아내가 추울까봐 전기난로도 사진을 향해 켜놓는단다. 상을 차리면 꼭 아내의 밥과 국도 같이 놓고 액자와 겸상을 한다.
 
 
그리고 말한다.
"배고팠지? 많이 먹어."
그리고 한 술 떠서 아내의 사진 앞에 내민다.
"왜 안 먹고 나만 바라보고 있어?"
삼키고 있던 오열을 토해낸다. 소리 내어 운다. 여전히 아내는 말이 없다.
 
 

그는 자기 전에 일기를 쓴다.
'사랑하는 여보. 잘 지내시는지요? 나도 당신이 하늘나라에서 우리 가족을 보살펴주는 덕분에 이렇게 잘 지내고 있오. 그런데 당신. 몸은 갔으면서 왜 정신은 가져가지 않고 기에 남겨 두었오? 내가 너무 힘드오.‘
 
 
그걸 보고 있는 내 가슴이 오히려 먹먹해졌다. 그의 곁엔 아직도 아내가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너무 힘들면서도 그는 느껴지는 아내에게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시집와준 것이 고마웠고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아내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면서 이제 조금 잘 해줄 수 있는 형편이 되었는데 먼저 갔다면서 눈물을 삼켰다.
 
 
텔레비전에선 특별한 결론 없이 취재의 막을 내린다. 고인이 된 아내에게 여전히 변함없는 마음을 전하는 한 사내의 순애보를 말하려는 것이었을까? 딱히 이렇다 할 메시지가 없다는 것은 보는 이들에게 이런 저런 생각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리라.
 
 
61세, 그 남자. 아내의 죽음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지 되어 있다. 현실 밖에 있는 푸른 섬에서 그를 온통 에워싸고 있는 아내와 함께 외롭게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존재 이유이며 그녀에게 말하고 자랑하고 챙겨주는 것이 그를 숨 쉬게 하고 걷게 하고.
 
 
그는 외딴 섬에 외롭게 유배되었다. 고립된 그의 정신이 아프다. 레테의 강을 사이에 두고 결코 해후할 수 없는 현실에서 끈을 놓지 못하고 세상 밖과 안에서 두 영혼이 울고 있다. 이건 미담도 순애보도 아니다. 고문 같은 그의 삶이 나와는 무관하긴 하나 슬프게 다가와 내 가슴에 아프게 머문다.
표정 없는 얼굴, 축 늘어진 어깨, 길고 긴 하루, 빼앗긴 정신. 왜 벗어나지 못할까. 끝내 호강시켜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 그를 옥죄이고 있는 건 아닌지. 붙잡고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진데.
 
 
그의 일기장에 적힌 '그런데 당신. 몸은 갔으면서 왜 정신은 가져가지 않고 여기에 남겨 두었오? 내가 너무 힘드오.' 이 구절이 내게 긴 여운으로 남아 이제라도 그만 그를 놓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의 텔레비전 시청 후기를 마감하려 한다.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기자가 그 이후의 모습을 취재하러 간다. 그는 여전히 같은 일터에서 열심히 작업을 한다. 땀은 흘리고 있으되 표정은 밝다. 질문을 하는 기자에게 활짝 웃으면서 대답을 한다. "아내는 편안하게 잘 있다오. 나는 가끔 생각날 때만 아내에게 가곤 하지요. 그리고 일기를 써요. 나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까 당신, 염려하지 말아요."라고. 그리고 그의 환한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 업 된다는 61세, 남자의 남은 생이 행복하기를 염원하는 나의 가상 시나리오./誠舜
 
월간 <<책과 인생>> 2002년 10월호에 발표. 수필 등단작이기도 함. 


자책(등단소감)

'소리 내어 읽어봐도 까닭 없이 애절한 기분이 솟는다.' 글을 읽다가 한 구절 마른가지 꺾듯이 뚝 떼어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뱁새처럼 허황(虛荒)이 조급증을 불러일으키고 나는 초라하게 황새를 좇고 있다. 내 가진 그릇 간장종지만한데 그곳에 담긴 감성(感性) 넘친다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딴엔 심혈(心血)을 기울였다 했겠다? 포장된 모양새에 내 자신조차도 깜빡 속아 슬그머니 교만기가 올라갈 채비를 하고 태연하게 숨을 할딱이고 있다. 영문 모를 허기(虛氣)에 땀 삐질 흘리며 무릎 꿇었다.
 
 
차가운 가슴, 바삭거리며 뒹구는 건조한 단어들을 한웅큼 꺼내어 휘이 던져놓듯 휘갈기는 저급한 글빨. 그것은 폐허(廢墟)에 쌓여있는 거무튀튀한 낙엽들처럼 서글픈 팽개쳐짐과 흡사한 초라함이었다. 내 그걸 모를 리 없건만 시치미를 떼고 태연자약(泰然自若)함이 가증스럽다.
 
 
신열(身熱)로 달구어진 가슴, 빨라진 맥박, 요동치는 심장, 마른침, 솟구치는 오기(傲氣)! 이를 악물고 주먹 불끈 쥐고 사막의 하이에나처럼 오늘도 나는 나를 사정없이 채찍으로 휘갈길만한 굵직한 먹이감을 찾아 소리 내어 읽어봐도 까닭 없이 애절한 기분을 솟게 하는 글 사냥을 하기위해 구두끈을 질끈 묶는다.
 
 
좋은 글 앞에서면 어디 까닭 없이 애절한 느낌뿐이랴! 외롭고 쓸쓸한 짝사랑의 출발부터 돌아서기 아쉬워 그 글 앞에 오랫동안 서성이게 하고 가다가 다시 멈추어 되돌아가게 만드는 끌리는 마력 앞에. 아, 이것이야말로 까닭 없이 즐거운, 그런 행복함을 솟아나게 하는 무형의 툴(tool)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마음은 극과 극으로 치닫는다.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배불러 포만감에 젖어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지독한 열등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가하면 이글거리는 질투심으로 자해(自害)를 한다. 차라리 몸부림이라 하겠다.
 
 
붓끝이 가는 데로 서글서글하게 쓰여 지는 것을 수필이라 함을 강력한 무기로 여물지 않은 단어들로 어설프게 여백을 할퀴어 상처(scratch)나게 해놓고 것도 글이랍시고 버젓이 내 이름자를 새겨놓는 철판.
 
 
그러나, 나의 이런 반복되는 구시렁거림이 그저 가치 없는 푸념으로 허공에 뿌리고 싶지는 않다. 자책함으로 처절하게 넘어지는 절망이 아니라 딛고 일어서려는 굳은 의지의 출발처럼 여기고 싶다. 진보하려는 몸짓으로 나를 바라보고 싶다.
 
 
오늘도 난 글을 구속하려한다. 숨막히게 치루어내는 섹스처럼 거칠게 호흡하며 저 깊은 속에서 끌어내는 오르가즘을 체험할 수 있을 만큼 진하게 글과 사랑을 할 것이다. 나의 만족이며 나의 행복한 족쇄이므로./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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